“몇살이야 너..?”
어느새 김이 올라오는 햄 에그 파니니를 올린 하얀 네모 접시를 들고 서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였다.
“.....네????”
.
.
.
“왕따.”
나는 당당하게 나름 날카롭게 그 아이의 눈을 쳐다보았다.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눈 흰자의 얇은 핏줄까지도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함을 나는 뜨거운 두 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눈은 무슨 의미지. 왜 이 말을 들으니까 내가 우스워 보이나’
“예전에.”
구지 한마디 더 붙이는 나였다.
“그래서 사람이 싫어”
그래 나는 너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쿵
온몸의 힘이 쫙 빠져나갔다. 암울한 정적이 내 두 어깨를 지긋이 눌렀다.
내 검은 눈동자는 분명 흔들렸으리라. 분명 그 아이의 말이 내 심장을 관통했으리라.
힘이 빠진 턱은 아랫입술을 밑으로 당겼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딸랑
“저기…”
아이 옆의 손님의 정적을 깨는 한마디.
“아 ! 죄송합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이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등을 돌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위이잉----
오늘 따라 무한한 칼날들에 갈리는 원두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칼날들의 기계음이 귀 속을 가득 채웠다.
위이잉-----위잉-----
원두향이 코 끝에 느껴질 때쯤, 한 가지 의문이 문득 들었다.
‘왜, 저 아이한테 쫀 거지. 참내’
정체불명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은 찜찜한 기분만을 안겨줬을 뿐이었다.
칼날들에 갈려 나온 원두들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기분 좋은 부드러운 원두들의 감촉이 오늘따라 낯설기만 한 나였다.
“여기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메리카노를 받는 손님 어깨 너머로 베이지색 2인용 소파에 앉아 노트북 뚜껑을 열며 가나슈 타르트를 먹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못 먹었다고 했었나?’
밑에 있는 냉동실을 열어보니, 오늘 아침에 재료 정리할 때 넣어둔 아직 뜯지 않은 브레드가 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봉지를 열고 위생장갑을 꼈다. 브레드 위에 덮여 있는 봉지를 제거할 때쯤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왜 늘 내 행동들이 참 이해가 안가는 거지.’
나는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순덩어리임을 생각하며 9등분된 브레드를 오븐에 넣고, 그릇 위에 시럽을 뿌렸다.
‘ 몇 살일까? 내 동생이랑 비슷해 보이던데’
띠링
부드러운 빵 냄새와 함께 오븐에서 소리가 울렸다.
.
.
.
“.....네????”
“몇살이냐고”
“아… 저..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요!!”
당황한 듯 붉어지는 볼이 귀엽다.
“낭랑 18세 !”
언제 쑥스러웠냐는 듯 다시 당당해지는 모습도 귀엽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순수한가.
“내 동생이랑 동갑이네. 여기 자리 있니?”
“아 아니요 아니요 없어요!!!! 앉으셔두 되요!! 앉으세요!!”
앉으면서 햄 에그 파니니를 건넸다.
“밥 못 먹었다길래”
“허ㅜㅜㅜㅜ 괜히 저때문에..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해요ㅠㅠㅠ”
“....”
나도 내가 왜 여기 왜 앉아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이 아이에게 뭔가 솔직히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내가 누군가에게 거짓말이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든다. 나는 이 아이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야”
어느새 내 생각은 멈췄고, 입은 또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생각하면 나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야...”
목소리가 작아진다. 고개를 숙인다. 나는 내 자그만 엄지 손톱을 바라본다. 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미묘한 기분이 나를 에워쌌다.
“당연하죠. 그게 얼마나 큰 일인데… 그게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잖아요”
고개를 든다. 울고 싶다.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 작은 아이 앞에서 나는 아이보다 더 작아지는 기분이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ㅎ.. 이름이 뭐니?”
“오오 이제 제 이름이 궁금해지셨나봐요? 저는 비에요. 비!!! 단비!!!”
“음!! 단비. 잘 어울리네.”
“헤헤”
“그럼 맛있게 먹다가 조심히 가!! 다음에 또 놀러오고. 이건 내가 살게”
“허어!!! 정말요??? ㅠㅠㅠㅠ 매우매우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나는 너무너무 감사해하는 아이를 뒤로한채 카운터로 향했다.
“언니!!! 사랑해요~~~!!”
피식- 내 등뒤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저 아이는 분명 귀여운 아이 같다.
.
.
.
띠--
운 좋게도 버스에는 한칸짜리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오랜만에 잡힌 오후 7시 약속을 위해서 속눈썹까지 붙인 나였다.
카톡
[은혜: 야. 단톡 확인했냐? 조정환 선배도 온데;; 선배들 걍 다 온다는데?]
유은혜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 정신적 지주이다.
[아ㅏ 미친. 그럼 우리 식당 바꿔야되는 거ㅓ????]
‘아니… 시험 끝나고 오랜만에 잡힌 동기 회식이었는 데;’
조정환 선배는 우리 과선배 중 제일 대선배시다. 소주를 사랑하시는 그 선배가 출현할 때마다 우리는 식당을 고기집으로 바꿔야만 했다.
[은혜: 아 오랜만에 치맥 땡겼었는 데;; 이 새끼는 낄낄빠빠를 몰라]
[하ㅏ.. 그래서 우리 식당 정해진거야ㅑ?]
[은혜: 넌 단톡 확인 좀 해! 우리 국가대표에서 만나기로 했다. 결국 또 삼.겹.살; 돼지새끼 진짜]
[아니 16학번들이 젤 문제야ㅑ;;]
[은혜: 인정 아 제발 자리…조정환 주변에 앉으면 나 진짜 자살할거야]
[야ㅑㅑㅑㅑ 우리 걍 좀 늦게 갈래?]
[은혜: 아 걍 그럴래?]
[엉ㅇㅇ 우리 앞 카페에 앉아 있다가 16기들 다 들어가고 들어가자ㅋㅋㅋ]
[은혜: 오키오키. 도착하면 전화해. 나 여기 후문에 있을 게]
[엉야ㅑ]
하.. 휴대폰 화면으로 확인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03분이었다. 오늘 동아리 과제까지 다 끝내고 나오는 길인데, 회식 덕분에 하루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속눈썹까지 붙였는데… 졸라 아깝네;’
휴우-
버스 창문에서 들어오는 저녁 바람이 내 얼굴을 식혀준다. 노랑...주황…. 하늘에는 이미 구름마저 노을로 물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이젠 정말 솔직해져야만 했다. 그 아이처럼… 나는 내 자신도 속이고 있었던 걸까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
목에 힘이 들어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저녁 바람은 나를 위로라도 하듯이 내 얼굴을 식혀줬다. 참 고마웠다.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YT뮤직에 들어가 추천에 뜨는 아무 노래나 눌렀다. 부드러운 기타 소리가 심장을 때렸다.
‘... 헐?!! 이 노래…..’
17초 동안 나는 열어서는 안될 상자를 열어 본 아이마냥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노래를 정지시키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written by witz-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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