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한잔<대한민국 중년들을 위한 헌사1- 한쿡 조아, 싸장 나파>

in worker •  7 years ago  (edited)

"언늬, 우린 증말 열씨미 잘 살아야 훼. 원샷"

며칠 전 출근길, 회사 근처 해장국집에서 전날 숙취를 달래려고 엉덩이를 붙였다가 옆자리 두 여인의 대화에 솔깃해졌다. 주방 아줌마도 꾸벅꾸벅 조는 이른 새벽, 두 여인의 혀 꼬인 주정이 해장국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보아하니 새벽종이 울릴 때 시작한 술 자리가 아니다. 전날부터 부어라 마셔라 달렸을 터. 듣자하니 한국인 말투도 아니다. 흐물거리는 게 이방인의 서툰 발음이다. 외국 여성들이 이른 새벽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사연이 있어 저리 취했을까. 걸걸한 해장국을 즐기면서도 양쪽 귀는 옆자리 대화를 주섬주섬 챙겼다.

"한쿡… 조아… 싸장 나파… 집에 가고 시포… 엉엉… 돈 벌어… 가족 보고 시포… 엉엉… 원샷"

서툰 한국말에 술까지 취했으니 숫제 암호 투성이다.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꿰맞춰보니, 한국에는 돈 벌러 왔고 사장'놈'은 응큼하고 막돼먹어 그만두고 싶지만 가족들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이 술 한잔 털어넣고 화이팅하자, 뭐 그런 내용이다. 사연 많은 저들은 어느 나라에서 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가 우리 주변에 외국인 근로자가 늘긴 늘었구나,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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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벌겠다며 근로자를 수출했던 대한민국이 어느덧 외국인 근로자를 수입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170만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는 70만명에 달한다. 대부분 내국인이 꺼리는 3D 업종에서 일한다. 국적과 피부색,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 경제의 허드렛일을 챙기는 소중한 자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차별한다.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키가 작고 코가 뭉퉁할 수록 깔보고 조롱한다. 영어 학원 강사는 흑인보다 백인이 대접받고, 중국인에게는 아직도 '왕서방'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 흑인이 아이비리그 출신일 수도, 저 왕서방이 어마어마한 재력가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긴 우리 안의 차별이 만연한데 외국인 차별이야 오죽할까. 지역에 대한 차별, 학교에 대한 차별, 성(性)에 대한 차별, 생김새에 대한 차별…. 그래도 그날 해장국집에서는 달랐다. 해장국 여인들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다가 급기야 가게 밖에 머리를 박고 웩웩 거리자 대한민국의 선량한 모범 시민으로서 선의와 친절을 베풀고자 등을 살포시 두드려줄까, 잠시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생활의 갖은 풍파가 쏟아지는 순간 '때론 무관심이 호의'라고 생각하며 종종 걸음으로 해장국집을 빠져나왔다. 다만 저들이 앞으로 좋은 '싸장'을 만나길 고대하면서.

  • 이 글은 2016년 펴낸 <흔들릴 때마다 한잔>의 에피소드 중 하나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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