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문인협객몽 4장 1절
#무협
一
청나라 시기 협의소설 중에는 작가들이 독립적으로 창작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아녀영웅전(儿女英雄传)>이 있겠다.)
허나 적지 않은 수는 문인들이 설서예인의 저본을 가공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는 20세기 무협소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삼협오의(三侠五义)>의 경우 문죽주인(问竹主人)이 “낡은 것을 뒤집고 새로운 것을 드러내, 장점을 보태고 단점을 보완”한 것이자, 또한 미도인(迷道人)이 “다시 교열하고, 따로 베껴 편집한” 것이다.
원래 저본인 <용도이록(龙图耳录)>은 석옥곤(石玉崑)의 설창기록에 근거하여 정리된 것이다. (최소한 노래는 삭제했다)
또 설창 형식의 “안단초매(按段抄卖)”의 “석파서(石派书)”를 보존한다 해도, 석옥곤의 강담이 지닌 그 운치가 사라진다고 할 수는 없다.
<삼협오의>는 석옥곤의 설창과는 다르다. 또한 그가 <용도공안(龙图公案)>을 설창할 때에도 옛사람의 자료를 적지 않게 답습하였기에, 이는 모두 후세의 “저작관념”과는 다른 것이다.
간행본 <삼협오의>가 나오자마자 “석옥곤 씀”이라 한 것은 “작가 석옥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 <소오의(小五义)>, <영경승평(永庆昇平)> 등 또한 설서 저본에 의거하여 정리된 것이다. 단지 원본 기록과 비교할만한 것이 없어, 우리는 구체적인 정리 과정과 정리자의 공헌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청나라 시기 협의소설은 분명히 민간문학적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루쉰이 “구비문학의 악습이 깊이 있다”거나 “송나라 화본의 맥을 잇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대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비록 문인이 홀로 창작한 것이라 해도, 원캉(文康)의 말과 같을 것이다. “설서를 익히 듣고, 그 말투를 흉내냈다.” 그렇기에 작품은 “마침내 독특한 ”연설(演说)”의 유풍을 갖추었다.”
20세기의 중국무협소설은 설서의 말투를 계속 차용했으나 민간전설과 옛사람의 필기(笔记)를 빌려 쓰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작가가 홀로 창작한 “통속예술”이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민간예술과 통속예술을 분석한 것에 따르면, 전자는 향촌에 사는 사람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삼으며,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가 흐릿하다.
후자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도시 대중의 오락적 수요를 위해 창작된 것으로, 소비자는 완전히 피동적인 지위에 있게 되며, 생산자는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이다.
예술의 성격으로 말하자면, “민간예술은 형식이 비교적 단순하여, 저속하고 고풍스럽다. 통속예술은 비록 내용이 졸렬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발전된 것이라, 매일 새로이 나온다. 다만 점점 더 좋아지긴 어렵다.”
이런 분석은 대체로 청나라 시기 협의소설과 20세기 소설을 구별할 때 잘 들어맞는다. 이 구별의 형성을 탐구하자면, 각각 다른 생산방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세기 초 신소설이 흥기하자 소설시장도 나날이 확대되었다. 소설을 팔면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따라서 소설을 창작하고 번역하는 건 문인들의 생계수단이 되었다. 이는 무협소설의 발전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석옥곤, 합보원(哈辅源)의 설서는 당연히 경제적 이윤을 추구한 것이다.
궈광루이(郭广瑞)는 우쭐 거리듯 오직 충의를 위한 것으로 “부당한 이득을 구하지 않”으려 들 었다고 말했지만(<영경승평(永庆昇平)>의 서문), 문인들이 소설을 창작하거나 정리할 때는 어디까지나 모두 그것들을 직접적인 상품 생산으로 간주한 것이다.
만약 안 했다면, 그건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 간행된 소설이 꼭 이윤을 얻을 수 있던 것도 아니며, 작가가 꼭 생계를 의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무협소설 창작에 있어 소설시장과 상품경제의 결정적 역할은 적나라하다. 소설의 상품화와 무협작가의 상업화는 이 시기 무협소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매 소설이 모두 직접적인 소비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독자가 널리 소비하는 작품만이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직업작가는 자신의 내면적 창작 충동보다는 시장의 수요를 더 많이 고려해야했다.
무엇을 쓰는가와 어떻게 쓰는가하는 것은 서적상으로 대표되는 독자의 입맛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독자수의 급증과 작가의 경제적 이익은 직결되어 있기에, 소설 상업화의 정도는 이에 비례한다.
요컨대 작가가 써낸 다음에야 흥행하여 수익을 낸 게 아니라, 작가가 흥행과 수익을 위해 쓴 것이다.
무협소설은 이러한 소설 장르로, 중국인 특유의 협객숭배심리와 긴장감 있고 드라마틱한 플롯을 좋아하는 감상습관이 합쳐져 흥행이 가능했다.
서적상과 작가가 힙을 합쳐 대량으로 무협을 생산하자, 이는 매우 빠르게 20세기 중국의 가장 인기 있는 통속예술형식이 되었다.
일단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통속예술이 되면, 시장규율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30년대 누군가는 무협소설에는 예술적 가치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작자-독자-출판자가 모두 ‘장삿속(生意经)’의 제약을 받는다며 이 삼각형의 “순환규칙”을 제시했다. 그리고 “엄정한 비평”을 통해 이 악순환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어찌 책장사들이 실로 정이메이(郑逸梅)의 말 마냥 “무협이 아니면 받지 않고, 무협이 아니면 출판하지 않”았겠는가?
어찌 통속소설가들이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고 오리떼마냥 몰려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30년대의 적지 않은 무협소설가, 예를 들어 구밍다오(顾明道), 루스으어(陆士谔), 쑨위셩(孙玉声)은 원래 모두 언정소설(로맨스소설)과 사회소설의 명작가였으나, 시대가 바뀌자마자 전부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향규춘몽(香闺春梦)>, <시창루영(茜窗泪影)> 같이 재간 있던 리정이(李定夷)도, 뜻밖에 “규방(深闺)” 밖으로 나와 “강호(江湖)”를 떠돌았다.
그가 <승도기협(僧道奇侠)>과 <진해영웅(尘海英雄)>을 쓰니, 사람들은 시장규율의 잔혹무정과 그로 인해 문학의 기풍이 계속 바뀜을 알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제소인연(啼笑姻缘)> 같은 언정소설의 명저조차 협객 두 명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을 끌어들일 힘이 없어질 수 있으니”, 저자는 그렇게 여기지 않더라도 그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어쩌면 남의 장단에 맞추는 걸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기왕 ‘글을 팔아 생계를 이으니’, 어찌 ‘조류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당신이 만약 다른 생활의 원천이 있지 않다면, 원고를 급히 생필품으로 바꿔야 하지 않는다면, 그제야 문을 닫고는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을 것이다.
리정이(李定夷)는 일정한 직업을 구한 뒤에는 다시 소설을 쓰지 않았으며, 평강불초생도 국술관에서 직무를 받은 후 “무림을 논하는데서 물러나, 솜씨를 보이려 하지 않았다.”
바이위(白羽) 또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무협소설을 써 돈으로 바꾸는 일을 모욕으로 여겨, “가난함이 극에 달하지 않으면, 원고도 쓰지 않았다”
이 중에 몇몇은 저자가 원래부터 소설창작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우연한 원인으로 일이 잘못되어 이 기회를 빌어서라도 생계를 꾸리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직업을 바꾸는 것은 당연히 무방하다.
하지만 작가는 돈을 위해 후원하는 소설시장에 압박하자 굴욕과 분노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떤 이는 무협소설을 써 큰돈을 벌은 지라, 다시 생계를 위해 글을 팔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허나 김용처럼 창작의 절정상태에서 단호히 절필을 선언하고 또 옛 작품을 새로이 고쳐 예술적으로 완전해지게 하는 것은, 실로 봉황의 털이나 기린의 뿔마냥 진귀한 사례이다.
절대 다수의 무협소설작가들은 순순히 쓰든지 대충 쓰든지 질리도록 써야 한다.
갑작스러운 정치적 변고에 글 쓸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으면 (왕두루, 환주루주), 극소수만이 늙어서 기이하게 승리할 뿐이다. 시장수요에 지나치게 의존하기에 (그렇지 않으면 팔리지가 않는다.)
무협소설작가는 이러한 “숙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협소설은 통속예술로써 주로 도시 대중의 소비 및 오락 수요를 만족시킨다. 때문에 그 창작 핵심지는 주로 상하이, 톈진, 홍콩, 타이베이 등 상품경제가 비교적 발달한 대도시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거나, 고급 예술을 감상할 능력이 결핍된 도시대중으로 말하자면, 무협소설은 딱 구미에 맞아 떨어진다.
삶에 있어 오락이 없을 수는 없으니, 소설예술은 본래 일정한 오락성이 있어왔다. 문제는 무협소설이 소비와 오락을 예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20세기 내내 무협소설은 문인 작가와 학자들에게 배척 받아왔다. 5.4 신문학자는 이런 소설작품에 대해 모두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그 광범위한 유행에 대해서는 실로 염격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걔 중에는 “우리민족의 운명의 운명에 관계”되어 있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중국인의 협객숭배를 조롱하며 마치 “중국의 세르반테스”를 찾기도 하였다.
이런 가치관과 심미적 태도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록 80년대 김용 등의 작품이 대륙에서 유행하여 일부 학자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정통 문화인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무협소설을 청소년을 해치는 “문화쓰레기”로 여기고 있다.
무협소설을 말하기를 소시민의 “미혼탕(迷魂汤)”이라하여, “책 페이지와 스크린 위에서 ”푸줏간을 지나며 입을 씹는“ 만족을 얻었다”고 하거나, “”초인“ 같은 협객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거나, 그것으로 “자신의 희망 없는 반항 심리를 달랜다”하고, 그 사회적 효과는 “빈도에게 비선검이 있으니, 당신은 안심하고 노예가 되십시오.”라는 …… 마오둔(茅盾), 정전둬(郑振铎), 취츄바이(瞿秋白)의 비평이 있다.
대체로 적확하다.
허나 소설의 교휸적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그 오락적 색채를 완전하게 부인하니, 사상 경향 면에서 무협소설은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적절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무협소설가들은 정통문학가들의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그것의 교훈적인 창작의도를 설명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구밍다오(顾明道)는 스스로 ‘내가 무협소설 짓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험을 겸하는 것으로, 국민의 기를 북돋기 위함이다.’ (<무협소설총담(武侠小说丛谈)>)라고 말했다.
또한 원공즈(文公直)는 “충성스러운 협이 발달하기를 원하니, 쇠락한 문예를 만회하고, 민족의 위기를 구하고자 한다.”(<벽혈단심대협전(碧血丹心大侠传)> 서문)
이런 견해는 모두 억지스러워 보인다.
무협소설은 통속예술로서, 어떻게 하면 광범위한 독자에게 받아져 상품화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어떤 사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게 아니다.
작가가 청소년에게 의도적으로 해악을 끼쳤다고 비난하거나, 애국정신을 고양하였다고 찬양하는 일은, 사실 요점을 잘 모르는 것이다.
무협소설에는 당연히 사상적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흔히 사회보편적으로 인정받는 도덕규범이다.
작가들은 새로운 사상의식을 내세오는 모험을 할 수도 없고,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에 집착할 수도 없다.
길게 보면 무협소설의 협객은 청백리를 추종하다, 조정에 반항하고, 개인의 의식을 추구하였으니, 당연히 그 변화가 매우 크다.
동시대의 다른 문학이나 인문과학과 비교해보자면, 무협소설은 사상의식에 있어 전체적인 시대조류보다 대체적으로 “반 박자 느린”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전대에 위반되는 것도 아니고, 보수적인 것도 아니며, 기본적으로 “대세에 순응”하는 태도이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김용의 태도는 매우 현명하다. 비록 김용소설은 같은 장르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철학적 색채가 짙지만, 그 ‘사상성’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천연스레 시인한다. “무협소설은 비록 다소간 문학적인 맛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오락적인 읽을 거리입니다.” 김용은 심지어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칭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생생하면서도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추구할 뿐이다.” (<어느 “이야기꾼”의 고백(一个「讲故事人」的自白)>)
사실 이러한 소망은 결코 저속한 게 아니다, 그저 무협소설이라는 소설 장르의 특성에 적합한 것이다. 오직 이러한 기초 위에서, 소위 “사람의 삶과 그 생명을 묘사”하고, 모종의 “정치사상”이나 “종교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실질적인 의의를 지닌다.
요컨대 무협소설의 예술적 가치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 보다는, 가독성과 그 생산적 오락성을 강조하는 것이 무협 장르의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찍이 합당하게 지적하길, 김용의 소설은 “장편이 중편보다 더 잘 쓰였고, 중편이 단편보다 더 잘 쓰였다. 이렇게 분량이 길면 길수록 잘 쓰는 것은 작가의 창작 역량을 잘 드러낼 수 있어서이다.”
이는 김용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20세기 무협소설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당송 시기의 호협소설이나, 청나라 시기 협의 소설에 비해, 혹은 동시대의 다른 장르소설에 비해, 무협소설은 길면 길수록 잘 써졌다.
<시공안(施公案)>, <삼협오의(三侠五义)>가 과연 10번, 12번 이어 써진 것과 달리, 100만 200만자 하는 대부분의 무협소설은 모두 작가가 홀로 단숨에 써내린 것이다.
단편소설도 강호의 싸움을 그릴 수 있고, 잘 쓰면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허나 그 분량 면에서 충분히 전개하기 어려우며, 또 긴장감 있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오랜 시간 독자를 끌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독자들은 협객들이 홀연히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도 열흘이나 보름은 같이 있기를 바란다.
작가 또한 사흘이 멀다하고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무협소설은 쓰면 쓸수록 길어지게 된다.
무협소설이 추구하는 “기백(气魄)”이 비교적 긴 분량이 있어야 표현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대부분은 신문 연재 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다는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작가가 여러 신문에 여러 소설을 동시에 연재하며 쓰는 족족 발간하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없기가 어려우며, 계속 새로운 문제를 다루면서 각자 다른 예술을 구상하라는 요구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오탸오쾅(赵苕狂)이 이어 쓴 <강호기협전(江湖奇侠传)>에는 무협소설가의 작품 쓰기에 대한 묘사가 있다. 한 번 읽어볼만하다.
“사업적 관계를 띄고 있는 관계로, 출고하는 데 급급했을 뿐, 두 번 읽을 겨를도 없었다. 쓰면서 바로바로 끊어 읽으니, 한 회나 몇 페이지 원고지를 다 쓰고는 급히 돈으로 바꾸러 갔다.”
“각종 고객 특약에 의해 쓰인 장편소설이 무려 5~6 종을 넘는다. 이러한 걸로 1회 2회 써낸 뒤에는, 또 내려놓자마자 다른 걸 써야한다. 이 또한 한두 회에 불과해서, 심지어 3000자를 보내야 하기도 한다. 일단 보내면 인쇄를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읽지도 않으며, 집에 원고를 두지도 않는다.”
“매 장편소설의 이름, 지명은 수백에 이르니, 적어도 수십이다. 전부 기억에 의거하여 수천 수만 자를 쓴 뒤에는, 힘들 때마다 흐리멍텅해지곤 한다. 때문에 대충대충 한두 편으로 결말지을 작정을 하여, 머리를 조금 홀가분하게 하곤 한다.”
이 말은 비록 “소설가의 말”에 속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실”이다.
적어도 장헌쉐이(张恨水)는 일찍이 한 번에 7개의 장편소설을 연재했고, 때문에 사람들에게 “글 기계(「文字机器)”라고 조롱당했다.
만약 전선을 집중하여 한 번에 한 두 장편에만 집중했다면 상황은 나아졌을 것이다. 같은 작품을 오래 쓰다보면, 마음속에 천천히 어떤 수가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며, 빼어난 부분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성공한 무협소설 중 적지 않은 수가 처음 시작할 때는 밋밋하지만, 쓰다보면 빠져들어, 결국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각 작품마다 분량이 길어지는 것 외에도, 무협소설가들은 시리즈 장편을 구상하여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일례로 왕두루의 <학경곤륜(鹤惊崑崙)>, <옥검금채(宝剑金钗)>, <검기주광(剑气珠光)>, <와호장룡(卧虎藏龙)>, <철기은병(铁骑银瓶)>은 다섯 편의 독립적인 소설이 줄거리와 인물 면에서 서로 연결되어있는 시리즈 소설이다.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삼부작도 그 길이가 길고 기백이 웅장하다.
당연히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법. 큰 부분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줄거리가 지루해지고 중복되는 폐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환주루주의 재기 넘치는 <촉산검협전(蜀山剑侠传)>는 40년대 말 이미 55부작 400만자에 육박했는데, 만약 저자가 정치적 이변으로 집필을 중단하지 않고 원래 원했던 대로 1000만자를 채웠다면, 여전히 제대로 예술적 수준을 유지했을지 실로 걱정스럽다.
번역자 : 내용이 다소 어려워 오역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애써 번역하니 참고용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첨언으로 초반은 청말 협의소설을 다루니, 어려우면 다소 넘겨서 읽으길 바랍니다.
제가 관심있어서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글을 올려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혹시 이 <천고문인협객몽>이라는 책의 서지사항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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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핑위안(陈平原), 천고문인협객몽(千古文人侠客梦), 베이징대출판사(北京大学出版社), 2010
천핑위안(陈平原) 1991년 초판을 낸 책입니다. 베이징대 교수다보니 베이징대 출판사에서 냈고. 2002년과 2010년에 재판이 나왔습니다. 아직 한국어 번역은 없고요.
자세한 사항은 바이두 백과 첨부해드립니다.
(https://baike.baidu.com/item/%E5%8D%83%E5%8F%A4%E6%96%87%E4%BA%BA%E4%BE%A0%E5%AE%A2%E6%A2%A6/6027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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