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연구 제2장 해설 (下)
1. 태극권의 민족주의
무술과 민족주의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 Frank는 이렇게 주장했다. “태극권은 중화 민족주의의 대표적 상징이다.” (2006, 186p) 허나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이들은, 태극권이 중국의 근대민족국가보다 먼저 존재했는데, 어떻게 태극권이 민족주의의 상징일 수 있는지 묻는다. 다시 말해, 현재의 가치관을 과거의 대상에 무작정 투사(projection)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Frank의 대답은 명확하다. 태극권이 말하는 과거 고대 중국은 근대에 재형성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국가는 스스로 고대에서부터 기원했다지만, 사실은 근대적인 창조물이다. 민족국가는 “인쇄-자본주의”를 통해 태어난 것으로, 민족어-국가적인 구어언어-로 된 텍스트가 교회 라틴어로 쓰인 세계를 해체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Frank는 앤더슨의 “인쇄-자본주의” 개념을 확장시켜, 태극권 또한 운동을 통해 국가적인 구어언어를 확산시켰음을 주장한다. 요컨대 중국은 태극권을, 그리고 태극권의 특정한 형식을 표준어로 지정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국가가 지정한 48식은 다른 여러 전통적인 유파들과 긴장 관계에 있다. 국가-스승, 도교-사회주의, 가문의 역사-국가의 역사가 몸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Frank는 태극권이 ‘중국적인 상징’임을 지적한다. 이는 1920년대 국민당이 민족 신체를 구성하기 위해 만든 담론의 결과물이자, 공산당이 세계로 퍼트린 ‘중국적 상징’이며, 아직도 어떤 면에서는 “진행 중”에 있는 무언가다.
데리다는 “Polticis of Friendship”에서 우리가 오래된 것을 존중하는 논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실비아 총은 앞서 역사-혹은 시간-이 여러 이유로 조작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때문에 담론에 있어, 새로운 것이 가치가 있다면 새로운 척 재포장 할 것이며, 오래된 것이 가치 있다면 장삼봉이나 보리달마를 끌어들여서라도 오래된 척 재포장 할 것이다.
이런 포장의 결과 중국 태극권은 실천 뿐 아니라 경기, 관광, 연구 등 매 층위마다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태극권은 느린 동작을 통해 과거를 재생하며, ‘중국인 됨’에 대한 감각을 생산해낸다.
2. 민족 감각의 고향
여기서 폴 바우만은 묻는다.
“헌데 이런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태극권은 민족주의적인데, 이 민족적 감각이 어디서 유래하느냐는 질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됨에 대한 감각이 이전 시스템-왕국이나 제국 등-에서 자각되어 나왔음을 지적했다.
청 제국을 해체하는데 참여했던 혁명가들은, 대개 해외에서 교육 받으며 ‘중국인’이라는 민족적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지역 군벌들은 ‘산서성 사람’이나 ‘동북 사람’ 같은 지역성 및 지역 관념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중국인’이라는 감각은 이 지역관념을 대체하였다. 혁명가들은 민족주의를 통해 중국인을 사로잡았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했다.(Frank, 161~2p)
이 과정에서 민족 감각이 건설되려면, 세대 단위로 자부심이 건설될 필요가 있다. 이런 올림픽은 스포츠, 특히 그 중에서도 올림픽을 통해 건설되었다. 신중국의 관료들이 태극권 같은 “민족전통체육”을 올림픽에 넣어, 즉각 금메달을 따려고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게다가 일본의 유도 등, 이런 사례는 이미 있었다.)
이상을 통해 Frank는 태극권 담론의 민족주의와 그 연원에 대해 지적했다. 여기서 폴 바우만은 민족주의가 가진 ‘고대성’이나 ‘본질적인 중국성’을 좀 더 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레이 초우가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 개념을 통해 보여주었듯, 무술에서 흔히 보이는 ‘과거로 돌아가는’ 어떤 감각은 근대 담론 및 사회-정치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Frank의 저작을 보아보자.
3. 무술 민족주의의 실제 작동 –태극권을 예시로-
Frank에 따르면, 중국 근대시기 관료들은 민족적 분노를 이용하고자, 민중들이 열강의 조계지 등을 공격하는 걸 방관했다. 이는 민족주의 논리 또한 일종의 국내 정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는 스포츠를 통해 재생산되기도 했는데, 태극권의 역사 또한 국내정치-그중 특히 민족주의-와 맞물려 있다.
태극권의 경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등록되었었다. 다만 이 시기의 어떤 민족주의적 기획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진행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유명한 무술가 몇이 도망치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1949년 국공내전이 끝나자, 신중국을 건립한 공산당은 무술을 선양하고 태극권의 대중화를 진행했다. 이는 국민당의 무술 지원을 잇는 것이자, 1942년 옌안 문예회담에서 마오쩌둥이 지시한 정책을 잇는 것이었다. 태극권과 다른 무술들은 민족전통체육의 분류로 들어갔다. (Frank, 168p)
197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무술을 봉건적인 것으로 지목하였고, 때문에 수많은 무술단체가 붕괴되었다. 허나 1980년대 개혁개방과 함께 공산당은 다시 여러 중요 무술기관들을 지원했고, 스포츠적인 측면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때 경기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각 무술단체들은 해외 조직과 교류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례로 정저우에서 이뤄진 ‘국제소림축제’는 지역 (관광)이익과 국가 문화정책의 혼합을 보여준다. 이때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와 결합한다. “국제소림축제 스타디움의 배너는 중국과 영국의 연대를 드러낸다. 한 쪽에는 영어로, 다른 쪽에는 중국어로 쓴 문구가 나란히 걸려 있다. 축제에는 12개국이 참여한다.”
물론 국제소림축제는 하나의 사업으로 시장 논리에 따른다. 이 사업은 “개인 개발로서의 도교라는 대중적인 인지”가 “무술과는 별 관련 없어 보이나 중국을 처음 온 무술 여행자의 꿈을 채워주기에는 적당한 기념품” 파는 것과 기묘하게 연결되어있다. 국제소림축제라는 무술 투어리즘은 그 자체로 국제화된 것이다. 또한 이 국제화된 상품이야 말로 무술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구어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무술을 통한 민족주의 프로젝트를 가동함에 있어, 소림사와 태극권을 구분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 무술을 영화와 TV의 이미지와도 구분하지 않는다. 때문에 투어리즘에는 온갖게 뒤섞여 나오며, 그 결과 민족 이미지는 무술의 이미지와 불가분하게 엮여 있다. (Frank, 182~3p)
결과적으로, 무술은 민족주의적인 것이면서 국제적이며, 경제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꼭 거짓이라기보다는, 무술이 가진 이중적 정체정을 드러내고 있다. “독실한 신앙과 상업적 열정이 맞닿아 있고, 국제적인 연결은 민족주의적인 이유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무엇도 무술에 있어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들은 관계들과 정체성들을 구성하는 담론적 힘과 관계들이다.”
4. 무술가를 가리다: 무술 계보도 너머의 무술사
태양을 보려면 태양의 및을 가릴 필요가 있다. 빛을 내뿜기에 오히려 그 중앙을 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철학자들은 패러다임이나 ‘보는 방법’의 은유로 사용했다. “눈은 보지만 스스로 보아낼 수 없다. 칼을 베지만 스스로를 벨 수는 없다.” 이 점에서, 무술을 보려면 무술가를 가릴 필요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태양과 같은 ‘1차적인 대상’을 보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대상을 보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 대상이 다른 문체에 주는 효과를 보려고 하는가? 이런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는 담론작용에 가정된 위계를 뒤바꾸고, 그 대상의 존재와 힘을 포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술가를 가리는 것을 통해, 무술 담론이 무술에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많은 무술관련 연구들이 무술가-혹은 그들의 계보-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무술연구는 개인들이나 집단들에 관한 게 되어서는 안 된다. 무술이 무술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술의 확산과 발전을 보려면 이 부분을 오히려 가릴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대개 많은 연구들이, 무술의 확산이나 발전을 특정 중요 인물의 이민이나 이동, 행동 등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허나 그 중요 인물(key people)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무술 확산 발전을 이해하는 열쇠(key)다.
5. 무술가를 가리다: 이소룡 신화와 중국무술의 서구전파
1960~70년대, 동양 무술이 영화나 미디어에 힘입어 서구에 전파된 점에 대해 논해보자. 분명 1960년대 이전에는 아시아무술을 수련하는 비아시아인이 드물었다. 이 점에 대해 일반적으로, 1960년대 서구로 이민해온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 무술붐을 만들었다고 서술하지만, 사실 무술의 전파는 이 이민과 다소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일례로, 1980~90년대 영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무술이었던 태권도는, 한국인 이민자가 퍼트렸다기보다는 특정 무술 조직이 퍼져 나간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이소룡 이전까지는 어떤 중국인도 백인이나 흑인인 서구권 출신자에게 무술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웡 잭 맨(Wong Jack Man) 같은 이에게 비중국인 학생들이 교습을 받고 있었다. (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소룡과 싸웠는데, 이때의 싸움을 토대로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을 재점검했다.)
가장 인기 있는 전설에 따르면, 이소룡은 비중국인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중국인 커뮤니티에서 도전 받았다. 하지만 웡에 의하면, 이소룡과의 결투는 단지 그가 여러 무술 유파들을 이길 수 있다고 도전의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소룡은 웡을 이겨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비중국인 학생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 이소룡의 도전 때문에 싸운 것이라는 점이다. 이소룡에 대한 할리우드 성인전은 그를, 백인 미국인 사회와 중국인 사회에 널리 퍼진 인종주의에 포위되었다고 서술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소룡이 중요한 이유는 비중국인에게 무술을 가르쳤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 사람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또한 백인이나 흑인이 무술을 배우지 못한 것은, 중국인 사회의 인종주의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시아 무술이 스크린에게 나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무술을 배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몇몇 미국인들이 일본이나 한국을 다녀와서 그곳의 무술을 익히고 있긴 했었지만, 광범위한 욕망은 영화와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서구의 무술 수요에 따라 중국인 무술가들이 이민 왔던 것이다.
이렇게 무술의 이동과 무술가의 이동은 상당히 구별해야 할 문제다. 두 문제가 겹쳐지기는 하지만 그 시간성과 논리는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프리드리히 니체나 주디스 버틀러 등이 언급한 ‘춤과 댄서’, ‘ 연기와 연기자’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 따르면 ‘연기’ 밖에 연기자가 미리 존재한다는 생각은 존재론적 오류이다. 연기자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술가는 무술을 체화하지만, 무술의 전파는 무술가의 계보마냥 가지런하게 뻗어나가는 현상이 아니다. 모든 소통은 –무술의 이동을 포함하여- 불연속과 파열을 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후계자란 전대를 단순 반복하기보다는 다소 간의 변형을 가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는 무술 소통을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이소룡의 ‘운동 이미지’는 욕망을 불러왔고, 수많은 모방작을 불러왔다.
또한 이소룡의 동작-이미지는 무술의 관계망을 바꾸었다. 던지기나 치기를 중시한 고전 가라테는, 화려한 발차기의 이소룡에 의해 다소 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이소룡만큼 발차기가 화려한 태권도는, 영화의 스펙타클한 욕망을 타고 흥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발차기의 욕망은 영화와 태권도 협회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소룡으로 대표되는 무술영화는 어떤 효과를 낳았는가? 어떤 이는 정식적인 무술 도장을 운영하려 했고, 몇몇은 그들의 손으로 무술을 만들려 했다. (이런 태도는 이소룡의 반체제적인 절권도에 부응한다.)
“기술과 동작은 영화에서 따와졌고, 무기는 집에서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은 어디서도 나온 바 없는 검은띠를 차기 시작했으며, 훈련 영상이 인터넷에 돌고…… 이제 당신이 어떤 식으로 무술을 소비하든, DVD나 유튜브에 의한 것이다.”
무술은 신체에서 신체로 바이러스처럼 이주했다. 어떤 무술은 그리스의 판크라티온처럼 세계 2차 대전 후 재건축 되어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또한 판데믹마냥 무술이 널리 번지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일어난 첫 판데믹은 1970년대로, 이때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Everybody was Kung Fu fighting”
6. 무술가를 가리다 : UFC의 이데올로기
배트맨 비긴즈(2005)는 KFM(Keysi Fighting Method) 스타일이라는, 근래 유행하는 새로운 무술 스타일을 도입했다. KFM의 창시자들은 훈련 영상과 등급제도를 만들고, 자신들이 실전적인 길거리 싸움에 알맞은 ‘리얼’함을 가졌다고 선전한다.
이런 ‘리얼’함에 대한 2000년대적 현상은, 1990년대 초의 UFC를 떠오르게 한다. UFC는 ‘룰이 없다’ ‘최종적이다’ ‘진실하다’ 등을 내세우며, ‘리얼리티’의 이름으로 유파들을 해체시켰다. 하지만 UFC 또한 결국에는 TV 미디어의 스펙타클을 위해 발전된 것이다. (광고를 위해) 경기장의 길이를 고쳤고,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기 위해) 스펙타클한 기술들에 집중하였으며, (프로그램 스케쥴을 위해) 싸움 시간을 정했다.
사실 UFC가 주장하는 해체는, 오히려 UFC에 알맞는 유파를 생산해냈다. MMA(mixed martial arts)가 그것이다. 초기에는 그라시에(Gracie)가 만든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주도권을 잡았는데, 사실 UFC 자체가 그라시에 가문의 발명품이라는 점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UFC가 유행하자,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세계적으로 주요한 무술 중 하나가 되었다.
리얼함, 리얼리티, 길거리, 실전적 등의 표현은 사실 미디어 시대의 포스트모던적 문화 산물이다. 때문에 무술에 있어 문화는 –운동을 다시 쓰는 것들은- 대개 2차적으로 취급되지만, 사실은 1차적인 것이다. 문화는 무술을 이루며, 퍼지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무술가야말로 미디어-이미지에 있어 2차적일 수 있다.
7. 무술가를 가리다 : 무술가의 문화
이상을 통해, 무술에 있어 문화가 1차적이며, 무술가가 미디어-이미지에 의해 구성되는 문화에 있어 2차적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런 사고 아래 무술가를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되는가?
롤랑 바르트가 지적했듯, 무술가는 ‘중심’에 놓인 어떤 기원이나 기초가 아니라, 단지 ‘분별해내기 어려운 무늬(a figure in the carpet)’이다. 데리다적인 감각으로 보자면, 무술가란 ‘중심(centre)’ 자체가 일종의 현존-효과라는 말이며. 푸코적으로 말하자면, 무술가란 중심 형상은 권력/지식의 관계가 빚어낸 효과이다. 요컨대, 무술가란 중심형상은 시뮬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번역자: 어떤 추상적인 모델-문화-이 무술가를 통해 구체화되었다는 말이다.)
요컨대 무술은 신체를 통해서 전이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크린과 같은 정신에서 신체로 –문화를 통해-전이되기도 하며, 이 전이는 허구적이면서도 진실된 ‘실체’이다.
이제 폴 바우만은 키아누스 리브스의 감독 데뷔작 맨 오브 타이치(Man of Tai Chi)(2013)를 예시로, 민족이라는 문화(담론)이 무술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보고자 한다. 먼저 민족 담론을 정교하게 논한 레이 초우에서 시작해보자.
8. 원시적 열정과 중국무술영화
레이 초우는 1995년 쓴 원시적 열정(primitive passions)에서, “원시적 열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중국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과 민족에 관한 담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지적했다.
원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문화적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다. 문화적 위기의 순간이란, 여기서 하고 있는 논의의 용어를 사용하면, 의미를 생성하는 테크놀로지가 엄청나게 변화하는 가운데 문어(文語) 같은 전통적 문화기호가 그 우위성을 빼앗기는 때를 말한다.
우세한 전통문화의 기호가 의미작용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면서, 요컨대 민주화가 강요되면서 기원에 대한 환상이 생겨난다. 이 환상은 어떤 속성을 가진 관련 영역을 통해서 펼쳐진다. 전형적으로는 동물, 야만인, 시골, 토착민, 인민 등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것들은 잃어버린 ‘기원’과 관련된 어떤 것을 대신한다.
기원은 이제 ‘민주적으로’ (재)구성되고 공유장소와 상식, 즉 공유지식이면서 참조점이 되지만,이것은 우리의 현존재에 앞서서 존재했던 것이 된다. 회복 불가능한 공유/장소(common/place)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원시적인 것은, 이처럼 언제나 사후(事後)의 발명이다. 말하자면 포스트(post, 以後)의 시기에 프리(pre, 以前)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된 원시적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 가능케 한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란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룰 만큼 보편적이고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보이는 동시에 시간과 언어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원시적인 것은 이처럼 상상의 공간에만 자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환영(幻影) 같고 문자 그대로 이국적이다. 어떤 특정한 속성을 지님과 동시에 상식적으로 공통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이국취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관행과 같은 여러 문화에 걸쳐서 쓰는 경우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어떤 하나의 문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서술의 특징이기도하다.
20세기 중국 같은 ‘제1세계’ 제국주의와 ‘제3세계’ 내셔널리즘 사이에 끼여있는 문화에서는, 원시적인 것은 정확한 역설, 즉 ‘문화’와 ‘자연’이라는 두 의미작용 양식의 합금이다. 서양에 비하면 중국문화는 ‘후진적’이라는 경멸적인 의미에서 ‘원시적’ (‘문화’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자연’에 가까운) 일지도 모르지만, 태곳적의 문화라는 긍정적 의미에서 ‘원시적’(서양제국보다 훨씬 오래된)이다. 근원적이고 전원적인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강력한 감각은 이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중국의 시원성(始原性)에 대한 확신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국가 중국은 영광스러운 문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으뜸가는 근대국가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신념을 낳는다. 중국을 희생자인 동시에 제국으로 간주하는 원시주의의 역설이, 근대의 중국지식인을 이른바 중국 강박관념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 자체는 –이것이 원시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제한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하더라도, 이 ‘감성의 구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 영화라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바이다. (번역서 45~46p에서 인용)
‘위기의 순간 원시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원시적 열정은 훌륭하게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90년대 초 영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사실, 2010년대인 지금에 이르러 ‘현대’, ‘중국’, ‘영화’라는 개념은 모두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초우의 이론이 유효한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초우의 지적 하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초우는 원시주의가 문화적 위기를 조건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위기는 산업화된 근대성이 생산해낸 문화적 위기와 연결 지을 수 있다. (근대성의 결과이자 부수효과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원시주의는 근대성의 위기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서양이든, 동양이든, 현대 무술영화를 통해서.
폴 바우만이 보기에 중화권 무술영화는 ‘근대성’과 그 외 여러 ‘위기’들에 징후적으로 대답한다. 이소룡의 1972년작 정무문(Fist of Fury)은 20세기 초 상하이에서 정무체육회와 그를 탄압하는 일본인의 이야기로 꾸려져 있다. 해당 영화에서, 정무체육회는 명백히 ‘위기에 빠진’ 중국을 나타낸다. -국외 세력에 의해 포위되고, 분열되며, 추방되고, 억압되며, 그리고 저항하는 형세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위기’의 시간과 상황에 대한 주제는, 왕기위의 일대종사(The Grandmaster)(2013)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다시 말해, 홍콩, 타이완, 중국의 무술영화는 어떤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이 위기의 원인이 일본, 러시아, 서구제국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 혹은 산업 근대화의 진행이던 말이다. 여기서 레이 초우에 따르면, 무술영화에서 드러나는 판타지들은, “동물, 야만, 국경, 토착, 혹은 인민과 관계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문화의 이전 단계’를 옹호하는 것을 통해 구축된다.
허나 저자 폴 바우만은 ‘“문화”의 이전 단계’가 “자연”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레이 초우의 주장에 망설인다. 왜냐하면 무술영화에서 가치 있는 것은, 제도, 분과, 전통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조직되어 달성된 문화”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바우만은, “문화의 이전 단계”가 ‘자연’에 가깝다기보다는, ‘중국적 자연’ 판타지에 가깝다고 본다. “중국적 자연은 문화다.”
저자는 초우의 지적을 변형하여 다른 방식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중국무술영화에 있어, 위기는 보통 싸우는 순간, 그리고 그 유산, 전통, 그리고 제도적인 상속물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달려든다.” 데리다적으로 말해, 무술영화는 다음의 문제를 탐색한다. “외부적 힘의 방해, 교란, 전복 및 변태에 직면하여, 스승에게서 제자/후계자로 고정되고 안정적이며 완전한 지식을 부드럽게 소크라테스적/플라톤적 전달하는 것을 보증하는 방법.”
무술영화에서 원시적 열정은 단순히 문화와 대치하는 자연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무술영화는 제도를 유지하는 문제에 대해 논한다. (이는 가끔 문화와 자연을 대비시킨다.) 요컨대 대개 제도와 제도의 대립이 무술영화에 드러난다. 이것이 무술영화의 제도들에 든 경향이라면, 우리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무술영과의 다른 문화권과 제도들은 어떻게 되지?”
9. 동방과 서방의 원시적 열정
사실 원시주의는 ‘서구’ 무술담론- 및 할리우드 영화-에서 더욱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담론의 정점은 UFC다. 해당 장르는 스스로 가장 리얼하며 최종적인(ultimate)인, 무규칙(no rules)적인 것이라고 인식한다. 이렇게 규칙과 제약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들을 생산하는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데 모순적이게도 UFC는 초기에 다양한 유파들을 마주하게 하여 우열을 가르려했고, 이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동물성의 치세’이다.
UFC의 첫 산물은 MMA로, 유파, 분과,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지위를 지우면서도 그 지위를 새로이 유지하는 컴뱃 스포츠이다. 동시에, MMA의 수사와 담론은 순수한 원시적 동물성을 판타지화시킨다.
이렇게 전통, 규칙, 관습을 넘어, 또 다른 ‘원시적 자연’을 추구하게 하는 충동은, 파이트 클럽(1999)에서 영화적으로 형상화되었다. MMA와 파이트 클럽의 원시주의적 판타지는 동일하다. “억압되었던 원시주의적 ‘진실’을 다시 발견하는 것.” 파이트 클럽과 MMA는 소비사회에 있어 남성성의 위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다수의 중국 및 홍콩 무협영화에 나오는 ‘원시적 열정’은 자연 상태를 욕망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외부 조정의 위기를 마주해, 무술이란 제도를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달하는 문제가 주로 제기된다. 다시 말해, 무술영화의 원시적 열정은 이상화된 제도적 상태로, 단순한 ‘자연 상태’가 아니다.
물론 동양에서 서양을, 중국에서 미국을 도식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두 지역은 영화적으로 오래 교류해왔다. 원화평(Yuen Woo Ping)과 그 이외 수많은 이들은 할리우드를 비롯해 홍콩, 타이베이, 베이징 등에 자리 잡았다. 다만 저자는 여기서 ‘중국 영화(Chinese cinema)’를 문제적으로 재고하기 위해 다소간의 도식을 감수한다.
10. 예시: 맨 오브 타이치
키아누스 리브스의 감독 데뷔작 맨 오브 타이치(2013)는 베이징과 홍콩을, 영어와 중국어를 오가는 영화이다. 영화는 부산한 베이징에서 덜 모던한 내륙지역으로, 그리고 백만장자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관료주의적인 따분함으로 나아간다. 하얀 머리의 태극 고수가 있는 황폐한 절도 더해서 말이다. 이 절은 당연히 중국 문화유산이고, 머리 하얀 사부는 중국 문화-혹은 ‘중국성’-의 어느 정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잔여물이다.
태극 유파의 유일한 학생인 타이거 첸(Tiger Chen)은, 마지막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다. 허나 그의 사부가 말하기를, 타이거는 자신의 기(氣)를 정확히 제어하지 못한다고 한다. -요컨대, 기에 휘말린다.- 게다가 타이거는 태극의 원리인 부드러움이나 감각성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폭력과 어두움에 어느 정도 손을 대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서, 그는 아침 5시에 기공을 연습하고, 차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문장을 따라한다.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 영화의 주제이다.
사부는 타이거가 싸움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허나 타이거는 텔레비전에 나와 상대를 두들겨 팬다. 백만장자 도나카 마크(Donaka Mark, 키아누스 리브스 역)는 상대방을 죽이길 거부한 파이터를 살해하는 캐릭터로, 타이거를 TV에서 보고는 기쁘게 주장한다. “결백해(innocent)!” 도나카는 타이거로 하여금 자신의 불법적인 매치에 참여하게 한다.
타이거는 도나카가 제공하는 돈이 명예를 훼손한다고 생각해 거부한다. 하지만 그의 사부가 절이 재개발 때문에 헐릴 것을 염려해 타이거를 퇴출시키자, 타이거는 절을 보수할 돈을 위해 도나카 밑에서 일하기로 한다. 타이거는 비밀경기장과 TV쇼를 오간다. 그는 잔혹함 때문에, “경쟁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TV 쇼의 결승전에 오를 기회를 박탈당한다. 허나 타이거는 이미 잔혹한 동물성에 맛을 들인 뒤였다.
타이거의 동물성은 도나카의 경기장에서 빛을 발한다. 허나 더 근본적으로, 도나카와 그의 심복들은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걸 좋아해!” 다르게 말해, 그의 안에 있던 원시적인 피의 욕망이 타오르기 시작하며, 사부가 말한 “그 자신의 기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에 들어간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그는 성숙하지 못했고, 준비되지 않았다. 그는 갈림길에 서있고, 정해야만 한다. 옳은 일을 할지, 틀린 일을 할지.”
결승전 전, 타이거는 자신에 대한 영화를 관객들이 보는 걸 목격한다. 도나카가 몰래 자신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목소리는 ‘결백하고 순수한 태극 수련자를’ 살인자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전달했다. 그 영화에서 도나카는 말한다. “이건 죽음에 이르는 불법 파이트에 대한 게 아니라, 결백한 이가 살인자로 변화해나가는 것에 대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 영화의 원시적 열정을 고려해보자면, 맨 오브 타이치는 무엇을 이야기해주는가? 주제적으로, 이 영화는 ‘중국’ 무술영화보다는 서구의 몇몇 영화를 재조직한 면이 크다. -에디 머피의 영화 대역전(1983)을, 트루먼 쇼(1998) 및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1983)와 섞었다.-
시각적으로 영화는 매트릭스(1999)처럼 보이는 걸 피하려고 했던 듯하다. 몇몇 장면은 매트릭스에서 원화평이 키아누스 리브스를 위해 안무를 짜준 걸 상기시키지만 말이다. 사실, 영화 발매전에 나온 정보에 따르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키아누스 리브스가 타이거 첸을 영화 매트릭스 싸움 씬을 위해 훈련시킬 때 태어났다.” 둘은 친구가 되었고,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투자를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따. “이건 중국 영화인가?” 이런 인종적이고 민족적 질문은 영화연구에 대한 지역적 접근에 흐르는 원시적 열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맨 오브 타이치는 할리우드적 전통과 연결될지라도, 다른 이들은 내가 모르는 아시아적 선례들을 보아낼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여러 형식, 장치가 번역되고 조정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폴 바우만이 이 영화에 집중하는 것은, 서구의 원시적 열정을 전적으로 동양적 상황에 돌렸다는 점 때문이다.
원시적 잔혹성은, 파이트 클럽 (과 서구 MMA)에 있어 “문화로부터의 해방”이나 “트랜스 문화석 진실”로 채색된다. 타이거가 치명적 일격을 가하자, 키아누스 리브스 역의 도나카 마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게 네 안에 있는 줄 알고 있어.”
허나 이 영화는 파이트 클럽이 아니다. 도나카 마크를 죽인 건 타이거의 원시적 증오가 아니라 기쁨이다. 요컨대 그를 죽인 건 문화적으로 가장 높은 상태의 판타지 중 판타지로, 죽은 것은 개인주의에 대한 원시적 열정이다.
다음 장면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관료들은 허연 수염 휘날리는 태극권 사부 앞에서 문화와 발전에 대한 연설을 듣는다. 그리고 사부는 전통적인 도장으로 서류에 날인하고, 우리는 절이 어떤 공원으로 발전될 것임을 알게 된다.
이는 중국의 가장 유명한 테마 파크인 소림사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문화는 복제품으로 ‘보존’될 것이며, 우리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밀레니엄적인 복제품보다도 더 완벽할 것이다.
여기서 레이 초우는 말한다. “이러한 기원은 공통 공간과 이상적인 일로 (재)구축되며, 우리 존재보다 앞선 공통 지식과 대상이 된다. 원시적인 것은, 공통/공간의 돌이킬 수 없는 형상으로, 항상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적으로 ‘이후’에 일어난, ‘이전’이란 허구-”
따라서, 맨 오브 타이치는 지속적으로 ‘중국’을 해체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며, 현대세계에서 ‘민족적’ 실천에 대한 무술연구의 접근에 시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번역자: 난삽하긴 하지만... 일단 했으니까 올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