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가적 주체(Stateless Subject) 2장 요약&정리 1
Women and Martial Arts
Couching Tiger, Hidden Dragon’s Marital, Martial, and Marxian Problems
-기존의 페미니즘 비평은 무협소설을 가부장제의 표현으로 보았다. 허나 안리 감독의 와호장룡(2000)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무협 내 여성 재현을 여러 시각에서 논하기 시작했다. 특히 탈식민 비평가들은 와호장룡이 기존 무협소설과 다르게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냈다며 주목했다. 이 점에서, 와호장룡의 젠더적 분석은 서구에 대한 중국의 식민적-탈식민적 관계와 불가분하게 얽혀있다.
와호장룡은 대만 감독이 미국 시나리오 라이터와 함께, 이상화된 중국(강호)에 대해 촬영한 것이다. 여기서 기존 비평가들은 중국-대만의 식민적 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와호장룡에 대해서는 흔히 안리 감독의 “중국 콤플렉스”가 많이 논의되는데, 이는 와호장룡의 정치지리학적 기원 문제와 연관된다.
일단, 영화의 역사적 기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와호장룡은 1930년대 중국 무협소설가 왕두루(1909~1977)의 원작에 기반한 것이다. 고로 와호장룡을 현대 중국의 “래디컬”한 여성 재현으로 읽는 것은 오류다. 대신, 와호장룡은 “5.4 신문학의 페미니즘”에 대한 역사적 응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협(女俠)의 형상은 1930년대 이미 무협소설계에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부터 미국의 와호장룡 비평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와호장룡은 아카데미상이나 골든 글로브 상 여럿을 수상하고, 매우 높은 (미국) 박스오피스 실적을 올렸다. 이 때문에 몇몇 비평가들은 와호장룡의 새로운 여성성이, 이전 중화권 영화와 질적으로 달랐으며, 그 때문에 이런 높은 실적을 올렸을 것이라 추측goT다.
일례로 페미니즘 비평은, 와호장룡의 페미니즘적인 면모란 서구적 다원성과 페미니즘이 중국 버전으로 나타난 것이라 주장했다. (중국에는 원래 페미니즘이 없었는데, 해당 영화가 서구 페미니즘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와호장룡이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고 예상하며, 중국 여성이 전통 관습에 영웅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라 읽어낸다.
-헌데 중국에서 와호장룡은 상업적으로 실패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박스 오피스도 낮다.) 중국인 영화 비평가들이 보기에, 안리의 무협영화는 서극이나 왕가위에 비해 투박해 보였다. / 그리고 중국이 좋게 생각하는 무협영화는 할리우드에 입성하지 못했으나. 와호장룡은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
-일단, 와호장룡에서 페미니즘적 새로움을 읽어내는 일은 인종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리사 슈왈즈바움(Lisa Schwarzbaum) 같은 비평가는, 와호장룡이 중국의 억압이나 전통에 대항하여, 미국적인 페미니즘 가치를 비준한다고 보았다. 허나 이는 국제적인 관객들이 (혹은 그저 미국 관객들이) 중국 관객에 비해 우월감을 느끼려는 행위이다.
-게다가 와호장룡이 재현하려드는 국가가 무엇인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타이완? 미국? 시상식에서는 대만영화로 분류되지만, 무협영화라는 이유만으로 홍콩영화가 되거나, 미국에서 찍었기에 디아스포라 영화로 이야기 되는 일도 있다. 특히 몇몇 비평가들은 “왜 대만인 감독이 중국을 영광스럽게 하는 영화를 찍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와호장룡에 대해 서구 비평가들은 페미니즘과 국제주의(globalization)를 주된 패러다임으로 삼았다. 요컨대, 와호장룡을 20세기 페미니즘의 산물로 가정하며, 이것이 실제로 페미니즘적인지 수 있는지 논하려 한 것이다. 허나 이 가정 모두 ‘원작’이나 ‘중국 영화사’에 대한 문제를 잊고 있다.
-여기서 중국영화 비평가들을 볼 필요가 있다.
신슈메이(Shin Shu-mei)는 장예모가 와호장룡의 국제적 성공을 보고 영웅(2002)과 연인(2004) 등 무협 장르에 손을 대었음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페미니스트 트랜스내셔널리티”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장예모는 자신이 이미 안리 이전에 무협영화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폈고, 오히려 대만인들에게 “무협영화란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런 대만-중국의 대립은, 자신이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주장하도록 강요한다. 요컨대 식민적 관계가 인종주의적 변색주의(allochronism)를 강요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더 기원에 가깝다는 오리엔탈리즘적 주장을 펼치게 한다.)
중국 영화사학자 장전은, 와호장룡의 여주인공이 엄연히 협녀라는 중국적 전통 아래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나무 숲 싸움씬은 호금전 작 협녀(1971)의 오마주이다. 이처럼 와호장룡은 여성 무협의 오랜 전통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와호장룡의 원작은 1930년대의 왕두루 작 소설이다. 이 “여성전사”의 형상은 1930~40년대 국민당의 반식민 레토릭에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이 형상은 중국에 오랜 기간 존재해온 기존 이야기를 시대에 맞춘 것이다.
와호장룡은 민국시기 문학장 안에서, ‘5.4 신문학 페미니즘’의 우여곡절과 관련되어 있다. 요컨대, 민국시기 문학장에서 “여성”은 5.4 페미니즘에 따라 반식민-민족주의의 정치적 주체로 배치되나, 와호장룡은 여기서 그 담론을 벗어나는 지점을 드러낸다.
원작의 간섭전략은 욕망의 서사를 드러내는 것 그 자체로, 5.4 페미니즘이 공허한 정치적 배치로 억압했던 섹슈얼리티를 대피시킨 것이었다. 원작은 여성을 국가건설에 동원하는 5.4 페미니즘에 집어넣지 않고, “영웅적인 것과 에로틱한 것”을 달성하여 그 대안적인 길을 제시하였다.
와호장룡을 역사화하기
-협녀는 전통적인 소재이다. 협녀의 형상은 당나라 시기 전기소설에서부터 이어져와, 민국 시기 여주인공 무협소설로 퍼졌다. 왕두루 말고도 궈밍다오의 황강여협(1928)이나, 후즈첸의 소설 등이 있다. // 특히 민국시기에는 뮬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관련 근대극이 여럿 나오기도 했다. 또한 셰빙잉의 국민혁명군 종군기록 여병전기(1936)가 있는데, 조혼을 피해 군에 입대한 ‘신여성’의 이야기이다.
‘신여성’은 민국시기에 있어 애국주의 및 저항의 상징이었다. 와호장룡 또한 이 신여성 담론과 관련되어 있다. 소설의 여주인공이 ‘신여성’처럼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점을 이 관련성을 드러낸다. / 요컨대, 왕두루의 와호장룡은 당시 유행하던 5.4 페미니즘 담론 (교육, 조혼 페지, 반식민 활동 참여)에 대한 참여이자 반응이다. 왕두루는 여성 문제를 다루면서도, 남성 엘리트가 주도하는 민족운동에서만 의의를 얻도록 환수되는 것을 막는다. 왕두루는 젠더에 대해 생산적이고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1938년 중일전쟁에서 칭다오가 일본에 함락될 때쯤, 왕두루(王度廬)는 청도신민보에서 와호장룡을 연재했다. 5부작 소설 시리즈 중 첫 편으로, 4세대에 걸친 무술인들의 이야기였다. 주로 자유연애와 전통 관습 사이의 딜레마를 그렸다.
-원작과 영화 모두, 주인공은 만주인 고위 가문의 딸 위장롱(玉娇龙)이다. 그녀는 아버지 몰래, 하녀이자 위장한 범죄자인 푸른 여우(Jade Fox, 碧眼狐狸)에게서 무공을 배웠다. 주인공이 배운 무당파 무공은, 본디 남자에게만 허가된 것이었다.
스토리가 진행되며 위장롱은 수련(俞秀莲)을 만난다. 수련은 강호를 떠도는 명성 있는 여협이다. 주인공은 질투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는 척한다. 주인공은 전설의 검을 훔치려 들다 정체가 탄로나는데, 이후 회개하여 검을 돌려 놓는다.
(강요된) 결혼 날, 위장롱은 검을 다시 전설의 검을 훔쳐 도망간다. 이후 이야기를 보면, 그녀는 타이거(Tiger, 罗小虎)라는, 일전 서부사막에서 만난 한 도적을 이미 사랑함이 드러난다. 그뒤 위장롱은 남장을 한 채 강호를 떠돌며 다른 무술가들과 대련한다.
소설에서 위장롱은 친우와 적을 오가는 모호한 캐릭터이다. 스스로의 진짜 자아를 찾을 수 없자, 본질주의와 자기기만 사이에서, 그녀는 수련의 연인 리무바이와 복잡한 관계를 쌓아간다.
리무바이(李慕白)는 전설의 검의 이전 주인으로, 무당파의 상속자이다. -다시 말해, 그는 무당파라는 가부장적 질서의 체화다.- 리무바이와 주인공은 검을 두고 다투지만, 결국 리무바이가 승리하며 무당의 가부장제를 지켜낸다. / 영화는 이 부분을 바꿨는데, 리무바이는 주인공에게 첫 여성 무당파 제자의 지위를 선사한다. 그녀는 거부하지만 말이다.
-주인공과 수련은 모두 정혼 제도의 억압된 희생자다. 허나 둘은 서로 상반된 길을 갔다. 본래 수련은 정혼자가 있었고, 그 정혼자는 리무바이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죽자, 수련과 리무바이는 서로 사랑함에도 경의의 뜻으로 플라토닉한 사랑만을 이어나갔다. 둘은 스스로가 유교 관습의 희생자이기에, 전통에 대한 저항으로 주인공이 타이거와 이어지기를 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자살을 위장해 사회를 탈출하고자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영화는 이 부분을 모호하게 그렸다.)
-와호장룡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은 자유연애와 전통에 대한 중국의 역사-제도적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자유연애’는 20세기 초 중국 정치 담론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1928년 신청년에 인형의 집이 실렸고, 중국에서 노라는 신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서 루쉰은 베이징 사범대학 연설을 통해, “노라가 집을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를 논하며, 여성들이 생산적인 시민이 될 때에야 중국이 근대화 될 수 있음을 논했다. 루쉰은 페미니즘을 정혼제도 폐지로 해석한 것이다.
특히 루쉰은 다른 단편소설에서, 신여성이 생활고로 파산하고, 사랑을 잃으며, 죽는 비극을 –중국 사회의 불관용성을 강조하며- 그려냈다. 루쉰은 여성을 통해, 중국이 충분히 모던하지 못함을 스케치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는 결혼제도 개혁을 중국 근대성이나 자유 인권과 등치시켰다.
이처럼 5.4 신문학자들은 결혼제도로부터의 여성해방을 근대화 담론의 일부로 생각했다. 민족주의 지식인에게 “신여성”은 대중 동원을 위한 수단이었다. 사실 이렇게 페미니즘을 정혼과 자유연애의 문제로 축소한 것은 이성애 중심적인 형식으로, 자손 생산의 한 양식에 페미니즘 정치를 묶어둔 것이다.
5.4 페미니즘은 여러 역사적 페미니즘 형식 중 하나이다. 자유연애는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연애는 혼전 성교, 여러 인원, 신체 주체성과 생산 문제, 강제적인 이성애 등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요컨대, 자유연애는 이성애 상태에서 남편을 찾을 자유만을 보장한다.
-왕두루는, 5.4 페미니즘에 기반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겉보기에 두 페미니즘은 여성을 부차적으로 두는 데서 비슷해 보인다. (경제적 필요나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2차적인 위치에 두어지는 것.) 허나 왕두루는 여성이라는 범주를 긴장적이면서도 억압적인 사회적 범주로 표현한다. 젠더를 인간 생산활동이라는 더 큰 영역으로부터 젠더화된 신체를 추상화하기 어려움을 드러낸다.
와호장룡에서 왕두루는 젠더를 정체성이 아닌 ‘차이’로 드러낸다. 무협소설에서 무술은 젠더에 따른 차별이 없다. 그 대신, 무협소설은 무공이 있는 준-초인의 무인과, 그 이외의 평범한 사람들로 나눈다. 평범한 사람들은 직업으로 나뉘지만, 협객은 문파로 사회적 위치가 결정된다. 왕두루는 이런 이분법을 사용해 젠더의 외부(모습)와 내부(본질)를, 혹은 여성됨의 형식과 내용을 시험한다.
-일단, 와호장룡이라는 제목 자체가 ‘가짜 모양새 밑에 숨겨진 진짜 재능’을 의미한다. (제갈공명의 와룡에서 나온 것이다.) 왕두루는 여성적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무림의 일원이 되어가는, 트랜스젠더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겉과 리얼리티의 분열을 다룬다. ‘장룡(藏龙)’이라는 제목의 일부는, 여주인공 이름 장롱(嬌龍)과 연결되어있다. 그녀는 ‘겉으로’ 우아하고 학식 있는 여성이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무술 재능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시작부분은 주인공, 위장롱의 여성성을 강조한다. 달에서 내려온 듯하다, 피어오르는 모란 같다 등의 수식어를 통해 그녀의 아름다움이 묘사된다. 이때 주인공은 3인칭 전지점 시점을 통해, 욕망의 수동적인 대상이자 서사의 수동적인 대상으로 서술된다. / 특히 그녀는 도끼 휘두르는 무술을 보고는, 하녀 뒤에 숨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적절히 여성적인’ 행위는, 남녀 간의 사회적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반해 강호를 떠도는 여성협객 수련은 남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여성다움이랄 게 없었다.” 초반부의 서술은 그녀에 대한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위장롱과 기호적으로 대비된다.
허나 이 대비에도 불구하고 두 캐릭터는 젠더의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불협화음을 가지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내면은 독자가 읽을 수 없게 되어있고, 수련의 외양 또한 “소문”의 측면에서 서술되어 있다. 수련의 외양이 직접적으로 서술된 게 아니라, 조연의 입을 통해 말해졌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요컨대, 이 두 여성의 상반된 면모는 제 3자를 통해 말해진 것이다.
물론 이 서술들이 소설 내에서 틀린 것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무술에 대한 두려움을 다소 가지고 있고, 수련은 실제로 남성적인 면이 짙다. 허나 두 캐릭터는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젠더적인 문제를 다루게 되고, 이는 무술로 판가름나곤 한다.
강호를 떠도는 남성적이며 성공적인 여협객(수련)의 ‘행동’은, 그런 지식이 없으며 스스로를 가장하는 자(위장롱)의 ‘행동’과 대비된다. 이런 대비는 위장롱의 “아름다움”과 수련의 “후회”에 이르러 더 나아간다.
번역자: Petrus Liu의 무협연구서 일부입니다. ...솔직히 좀 난해한데, 추후에 좀 다듬어 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