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예술가라. 몇 번을 곱씹어 읽어보았다. 왠지 직업과 예술가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편견이구나. 뒤 이어 든 생각이었다. 당연히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직업이 예술가라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이 묻어난 자기방어일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는 직업이 아니라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나를 향한 방어기제.
이렇듯 부러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같은 심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건데?
책의 저자 박희아는 아이돌을 전문으로 기사를 쓰는 아이돌 전문 기자에서 대중문화 전문 저널리스트로서의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프리랜서 기자이다. 책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고백과 자각>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작업을 사랑한다는 박희아와 26명의 예술가들의 나눈 대담의 기록이다. 배우와 음악가, 또는 배우 겸 음악가를 만나 작품이 아닌 그 사람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코로나 시국에서는 더욱더. 하지만 저자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었고 심지어 2권의 책을 완성하였다. 책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고백과 자각>은 그중 1권으로서, 예술가로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중문화에 종종 등장하는, 그래서 익숙한 이름들이 있는 반면 연극이나 뮤지컬을 주 무대로 활용하여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며 실제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아티스트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 예술과 인문학이 참 많은 부분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인문학을 전공한 나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의 고민보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 것인가의 질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덜 상처받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누가 보면 무척 허무맹랑한 꿈이지만, 나에게는 꽤 중요한 질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만히 있을 때에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예술가들의 고민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 자신을 보여주는 일. 이는 내가 나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보이는 모습 이면에 숨겨진 스스로를 발굴해내기 위한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의 질문에서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삶을 위한 용기를 내었다는 것. 책을 읽으며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나에게 얽힌 감정과 생각을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과정은 분명 나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주었겠구나. 그러자 실제 무대 위에선 그들의 용기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없었는데.
여러 인터뷰들 중 '좋아서 이 일을 한다'라는 문장이 퍽 가슴에 와닿았다.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못 버텼을 것이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무엇을 그토록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사라져버린 기분이 든다. 너무 많은 생각이 가져온 폐단인지 몰라도 내가 나 자신을 던져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아직도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그들의 용기에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갈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모두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후, 예술가라는 직업은 용기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자, 그 용기를 부지런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고까웠던 나의 마음은 결국 현실에 파묻혀사는 부끄러운 한 사람의 변명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나와 고민이 같다 해도 그 고민이 가진 생산성은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고민을 통해 더 나은 작품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반면, 나의 고민은 아직도 고민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 고민을 갈고닦아 그 고민을 가치있게 만든다는 부분에서 그 차이는 생생하게 드러난다.
누군가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맞는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일. 그런 일을 하는 그들을 어느 누가 직업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부딪치고 달리며 이어가는 예술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타협하고 타협하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느끼며 살아가다 어느 날 도달하는 경지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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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지가 저에게도 찾아온다면, 저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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