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의심했다. 능선을 넘을 때마다 그 작은 섬 안에 사하라 사막이, 마야베이 같은 비밀스러운 바다가, 하늘을 깎아지르는 절벽이 펼쳐졌다.
거짓말 같은 대청도의 풍경 속을 걸었다.
섬 여행에 대한 편견은 대체로 비슷하다. 배 멀미, 비싼 물가, 다 똑같은 바다. 게다가 북한과 지척인 대청도라니.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생처음 영화에서나 듣던 총소리를 실제로 듣고 대피소에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해경이 불을 밝혀주는 뱃길로 돌아왔으니까. 덕분에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현실은 뉴스에서 요란하게 내보내던 속보와는 달랐다. 섬은 고고히 푸르르고 주민들은 침착했다. 파도가 잔물결을 만든다고 섬이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모든 것이 그렇듯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까슬한 모래바람과 짙푸른 바다 내음과 투박한 말투에 배어있는 정은 섬에 두 발을 디뎠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푸르른 섬 대청도
서해5도 중 하나인 대청도는 인천에서 211km,북한 장산곶과는 19km 떨어져 있다. 위치가 그렇다 보니 옛날엔 중국 황태자의 유배지일만큼 중국과 지리적 접근성이 좋았다. 크고 푸른 섬이라는 뜻의 대청도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 밀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섬 가운데 솟은 해발 343m의 삼각산을 중심으로 기암괴석과 각기 매력이 다른 해변으로 둘러싸여 꼭 1박 이상을 추천하고 싶은 섬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홍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라니, 제철에 찾으면 삭힌 홍어만 알고 있던 서울 촌사람도 홍어의 새로운 맛에 눈 뜰 수 있다.
능선을 걸어 바다를 오르다
전국에 무슨 무슨 걷기길과 트레킹 코스가 난무하지만, 대청도의 삼서 트레일은 나 혼자만 알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다. 삼각산 사랑애로드는 약 3시간, 서풍받이 코스는 아주 넉넉히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다. 요즘이 두 코스를 엮은 삼서트레일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 대륙과 서해를 건너온 바람을 막아주는 서풍받이의 트레킹 코스는 광난두 정자각에서 시작해 마당바위를 기점으로 서풍받이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능선이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초보자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쉬운 코스라고 어디에나 있는 흔한 걷기길이라고 생각하면 서운하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면 ‘여기가 정말 대한민국이 맞아?’ 하는 생각이 든다. 깎아지르는 기암괴석 위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다 거대한 대자연 앞에 인간이란 정말 작은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기도 한다. 수풀 사이에서 나타난 해변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광난두 정자각에서 조금 떨어진 절벽에 있는 해넘이 전망대에서 해 질 녁의 서풍받이와 바다건너의 소청도를 조망하면 감동의 정점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사막, 옥죽동 모래사막
대청도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모래사막 때문이다. 하늘과 맞닿은 모래 언덕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이 궁금했다. 그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백사장이 조금 넓게 펼쳐진 느낌이겠구나’ 했는데 저 언덕 너머에서 사막 여우가 나올 것만 같은 모래가 나타났다. 바람이 그리는 결을 한참 바라보니 사막이라는 단어가 와 닿았다. 대청도 모래사막은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한 기후에서 생겨난 사막이 아닌 바닷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쌓여 생겨났다. 계절의 바람에 따라 여름엔 낮아지고 겨울에 높아지는 움직이는 모래산이다. 대청도에선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 장가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 전체가 모래였다. 모래가 산을 이루고 고개를 넘어 학교까지 덮쳐 학교를 옮기기까지 할 정도라 방사림을 조성해 모래바람을 막았다. 방사림 덕분에 주민들은 편해졌지만 모래사막이 줄어들어 일부분은 다시 벌목해 모래사막을 복원할 예정이다.
7가지 색의 바다
대청도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7개의 해변으로 둘러싸여있다. 모래 사막을 만들어낸 옥죽동해변과 대진동해변, 수백 그루의 적송과 백사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모래을해변, 수심이 완만해 가족단위 피서지로 좋은 지두리해변, 기암괴석과 일몰이 장관인 농여해변과 미아해변, 섬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데크길과 몽돌 소리 자글자글한 답동해변 까지 이 작은 섬안에 참 다양한 해변이 있다.
섬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조금만 부지런하면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문득 여기가 군사지역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사실 한 가지. 대청도의 해변은 일몰 이후부터 일출 전까지 출입금지다. 그 덕에 밤 사이 맥주병과 휴양의 흔적들이 백사장에 남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바다 위로 뜨고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해 뜰 무렵 답동해안으로 나가면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고깃배들이 붉은 바다로 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캠핑은 할 수 없지만 간단한 용품만 챙겨 모래와 바다가 층을 이루고 있는 농여해변과 미아해변에서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여유롭게 섬을 즐기는 방법이다.
대청도의 중심, 삼각산
삼각산은 모양이 삼각형 또는 봉우리가 3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진포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성공 제1로드, 대청초등학교 방향에서 출발하는 성공 제2로드, 동백나무 자생북한지에서 출발하는 사랑애로드가 있다. 아침 일찍 선진포선착장에서 뜨거운 일출 에너지로 충전하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삼각산 정상으로 향했다.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삼각산에서 내려와 점심식사 후 배를 타기에 딱 맞는 일정이다.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던 동백나무가 북위 38도 삼각산에서 자라고 있다. 검푸른 섬 위에 핀 붉은 동백나무 자생지는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지역으로 학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됐다. 삼각산에는 상기생, 하수오 등의 약초 100여 종도 자라고 있다. 산 능선이를 뛰어다니며 방목 사육되는 흑염소들이 약초를 먹고 자라 주인도 잡기 힘들 만큼 건강하단다.
두어 번 쉬며 숨을 돌리니 어느새 삼각산 정상이다. 널찍한 데크에서 360도로 둘러보면 대청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백령도와 소청도가 보이고 날씨가 맑을 땐 북한도 보인다. 북한 옹진 58.81km라 적힌 푯말이 애달프다. 푸른 바다를 응시하다 보면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지 모호해진다.
섬마을 산책
여행지의 속살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은 현지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다. 대청도의 다운타운인 선진포구 마을에 보건소, 파출소, 편의점과 몇 개의 식당이 모두 모여있다. 마을 앞마당이 청정바다니 작은 식당에서도 싱싱한 해산물들이 찬으로 나온다. 골목골목을 걷다 전날 저녁상을 푸지게 차려주셨던 식당 사장님을 만났다. 잠은 잘 잤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물어오신다. 묘한 사투리에 고향을 여쭤보니 이북 출신이시란다. 대청도 토박이 중에 이북 출신들이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친척 사이인 경우도 많지만 작은 섬에서 모두 도란도란 살아가다 보니 모두가 가족이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차를 세우고, 어디 가는 길인지 밥은 먹었는지 서로 안부를 묻는다. 매일 보는 사이일 텐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인 듯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1분이라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사명 인양 앞만 보고 다니지 말고 느긋하게 섬의 속도로 걸어보자. 골목을 돌다 낮은 주택사이 조용히 자리한 수줍은 붉은 지붕의 아담한 성당을 만났다. 대청도에는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주민 들이 와서 조용히기도 할 수 있는 이런 작은 공소가 네 곳 있다. 바다가 거칠어지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면 주민들은 소박한 공소에서 가족들의 안전을 기도한다.
섬에 들어가기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해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를 오간다. ‘서해5도 방문의 해’를 맞아 2014년 3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예산 소진시 까지) 1박 이상 여행하는 타 지역민을 위해 여객운임의 50%가 지원된다(7, 8월 제외). 인천시민도 신분증만 지참하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단, 기상상태나 선박점검으로 인해 결항하는 경우도 있으니 터미널이나 선박 예약 사이트에 미리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문의 island.heawoon.co.kr
섬 둘러보기
하나. 섬 특성상 대중교통이 많지 않다. 이 섬에 한 대 뿐인 버스가 하루에 3번 운행한다. 섬의 모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버스가 단돈 1,000원. 버스시간만 잘 맞춘다면 정류장이 아니어도 반갑게 손 흔들면 탑승할 수 있다. 마을 사랑방처럼 이야기가 넘치는 섬의 진짜 모습을 체험하고 싶다면 버스를 강력 추천한다.
둘. 평지가 거의 없을 만큼 역동적인 일주도로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대청도 일주 도로에 도전하는 라이더들이 많이 찾는다. 한계라고 생각할 즈음 다다른 고개를 넘으면 펼쳐지는 풍경은 그 도전을 충분히 보상한다.
셋. 여행자를 위해 미니버스나 차로 섬의 포인트들을 안내해주는 민박과 펜션들이 있다. 가장 효율적이고 편안하게 섬을 둘러볼 수 있는 방법. 푸근한 사투리와 함께 안내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섬의 속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글 조혜원|사진 김연지, 조혜원|취재협조 문화관광해설사 김옥자
Posted from my blog with SteemPress : http://231.jeju.kr/%eb%b0%94%eb%8b%a4%ec%9c%84%ec%97%90-%eb%96%a0-%ec%9e%88%eb%8a%94-%ec%82%ac%eb%a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