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22일 (화) 마약일기 (1)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휴일이구나. 휴일인데도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아니, 사실상 징계의 수위를 결정하려는게 아니라, 해고를 하기 위한 회의다. 신문에 버젓이 나를 해고하겠다고 먼저 발표한 상황에서 과연 오늘 징계위원회가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소명할건 소명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아침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회사 인사팀 관계자다. “죄송한데 이은의 변호사는 동석할 수 없습니다. 허재현씨만 징계위에 출석하세요.” 아니 뭐 이런게 다 있나. 인사팀은 애초부터 태도가 이딴 식이었다. 대체 징계위원회 출석에 법률대리인의 동행을 금지하는 규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난 도저히 혼자서는 참석하기 어렵다. 심장이 뛰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거 같다.
“제가 지금 심리 상태가 정상이 아니에요. 이은의 변호사는 아무 말도 안할 거예요. 그냥 제 옆에 앉아있게만 하면 안되냐고 징계위원들에게 물어봐주세요.” 20여분 뒤 전화가 왔다. 이은의 변호사 참석을 허락한단다. 산넘어 산인데, 마치 산속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느낌이다.
오전 10시부터 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회사 앞 건물에서 이전에 큰 친분이 없었던 어떤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아득했다. 1초였다. 그러나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그 1초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 같다. 제발 들어가는 길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길 바랐는데. 결국, 누군가를 마주치다니. 하늘도 무심하다. 일단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 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오늘 징계위원회 출석 때문에’ 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선배는 내 인사를 받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사라졌다. 난 투명인간이 되었다.
속상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 선배도 나를 어떻게 대할지 당황해서 그런 것 아닐까. 선배의 무표정은 나에 대한 안쓰러움일까 나에 대한 원망일까 나에 대한 황당함일까. ‘저 자식 저거 무슨 낯짝으로 징계위원회까지 출석하는 거지? 양심이 있다면 알아서 사표내고 떠날 것이지’라고 생각하셨겠지. 부끄러움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수치심과 절망감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징계위원회 출석전 대기실로 사용될 회사 5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또다른 선배가 나를 보고 인사해주었다. 이 선배는 나와 안면이 깊은 분이다. 선배는 얼마전 페이스북에 ‘허재현이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후배였다’고 한마디 썼다고 한다. 그러자 회사에서 전화가 와 그글을 내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나는 인간적으로도 쓰레기이고, 저지른 죄도 쓰레기이고, 모든 인간쓰레기의 집합체인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그렇게 표현할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회사가 내가 마녀사냥 당하는 것에 동참하다니. 회사가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는구나. 설사 마약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마음만은 따뜻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왜 그런 글도 못쓰게 하는가.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8층 대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일원중 박용현 편집국장이 보인다. 박 국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사고'에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고려해, 허씨라는 성만 빼주시면 안되냐고 애원했지만 박 국장은 지금껏 어떤 응답도 안했었다. 박 국장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 되레 고개를 든건 나였다. 그러나 그는 징계위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가 약을 하게 된 계기,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왔던 속사정을 위원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평생 기사 안써도 좋으니 회사 쓰레기통이라도 치울수 있게 제발 한겨레신문의 직원으로 남아 있게 해달라고. 그렇다. 난 한겨레신문을 떠날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 염치없게도 이들이 나를 용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징계위원들 앞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다음편에 계속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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