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in gonggan •  7 years ago  (edited)



책과 그라피티가 만들어 내는 풍경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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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경만큼이나 각양각색인 골목 안 풍경들. 그곳에는 잊혀진 기억이 남아있고 멈춰버린 듯한 시간이 존재한다. 부산의 명소이자 문화의 거리인 부산 중구 보수동1가 책방골목 역시 그렇다. 한국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헌 책을 사고팔던 시절에 형성되었다는 책방들이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점으로 시작했던 헌 책방들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의 한 페이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 빼곡하게 쌓인 책들이 풍경을 만들어내고 책과 책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마치 보물을 찾는 듯 헌 책들 사이에서 자신이 찾던 바로 그 책을 찾아내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책방 골목, 상점들의 셔터 문 위에는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책방들이 문을 닫은 후에 강렬한 색감과 인상적인 이미지의 그라피티는 빈 골목을 화려하게 채운다. 책방 골목을 찾은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라피티는 책방 골목의 또 다른 재미다. 화려한 색을 덧입으며 새롭게 태어난 골목길에서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길에도 벽화들이 가득하다. 담장의 큰 벽면에는 화사한 색감의 그림과 글들로 채워져 있다. 길을 걸으며 마치 만화책을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는 것 같은 재미가 느껴진다. 여러 색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수많은 골목들이 모여 세상을 완성한다. 좁은 골목길이 품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광대한 스토리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더 풍성한 색채를 품게 될 것이다.

 

 

도시의 역사성을 간직한 복합문화예술공간
인천 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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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해안동은 개항 이후 건립된 건축 문화재 및 1930년대 지은 건축물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888년과 1902년 지은 개항기 근대 건축물과 인근의 1930년대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창작스튜디오, 공방, 자료관,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 총 13개 동의 규모로 조성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붉은 벽돌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한 인천아트플랫폼은 대부분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세련되고 모던한 현대 건축물로 변신하며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유리와 메탈 재료를 덧대어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투영시키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낸 공간들. 그 사이로는 회랑과 오버브릿지를 설치하여 건물들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고 있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로 소통하고 순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시와의 관계에서도 소통과 순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기존 건축물을 보존하고 거리 전체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남아 역사적 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은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한 예술공간이다. 4월에는 백인태 전<로맨스: 그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4기 입주예술가 프리뷰전인 <2013 플랫폼 액세스> 등이 열리고 있다. 시민참여형 전시, 공연, 대안적인 문화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을 문화도시로 변모시켜나가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 작업실이 공존하는 철공소 거리
서울 문래동 창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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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래동에는 철공소 거리가 있다. 문래역, 영등포역, 신도림역 사이의 지점에 아파트 단지, 공원, 타임스퀘어에 둘러싸여 있는 철공소 거리는 주변 아파트촌과는 사뭇 다른 거칠고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문래동 창작촌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상상속의 멋진 예술인 마을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른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은 까닭은 처음에는 순전히 싼 임대료 때문이었다. 오래된 낡은 건물들이 대부분인 이곳의 1층은 주로 철공소가 차지하고 있는데 그런 환경 탓에 2, 3층의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홍대 앞에서 작업실을 꾸려나가던 예술가들이 싼 임대료를 찾아 문래동까지 찾아온 것이고, 철공소 거리는 이제 창작촌이라 불릴 만큼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서게 되었다.

문래동 창작촌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미술, 영화,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스스로 활발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지역주민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몸짓을 보여주며 전시공간과 카페 등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고 지역주민들과의 모임도 개최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공동체 속으로 뿌리내리려는 움직임은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공동체 모델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어우러져 있는 이곳이 주민들과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지, 또 창작촌으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열린 공간
서울 문화역서울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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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역서울284는 구 서울역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복합문화공간이다. 1925년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신축된 경성역은 당시 상당한 규모와 독특한 외관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건물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이기도 하다. 많은 추억과 애틋함을 간직한 이 건물은 1981년 사적 284호로 지정되었지만 2004년 새로운 민자역사가 신축되면서 폐쇄되기도 했었다. 이후 4년여에 걸쳐 복원이 이루어졌고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이곳에는 상설전시관, 다목적 전시실, 공연장 등이 갖춰져 있다.

문화역서울284는 사적번호인 284를 접목해 그 가치를 보존하고 역사를 계승하면서 문화와 시민을 이어나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2012년 4월 재탄생되었다. 둥근 돔, 붉은 벽돌의 외관은 물론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화로 채워진 중앙홀, 옛 느낌을 그대로 살려 바닥과 벽을 마감한 공연장 등의 내부 또한 고풍스런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는 공식출범한 이래 문화의 소통과 실험을 위한 전시와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공간 문화역서울284에는 오픈 스테이지, 오픈 스튜디오, 오픈 클래스 등의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되므로 누구나 자유롭게 신청하고 참여할 수 있다.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기능, 역사적 의미, 사회적 역할로도 중요했던 옛 공간을 복원해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교차되고 새로운 문화가 끊임없이 생성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 문화역서울284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Writer ㅣ 채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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