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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양조장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 구둔역을 찾았다. 세월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기엔 양평의 여느 유명한 여행지보다 적격이다. 양조장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져 있는 구둔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군이 아홉 개의 진지를 구축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구둔역은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40년, 처음으로 철도가 개통되었고 양평과 원주를 잇는 중앙선 철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새로운 구둔역이 만들어지면서 더 이상 기차가 찾지 않는 폐역이 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지난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에 철거되지 않고 역무실, 대합실, 승강장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비록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곳을 오가는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이제훈과 수지가 첫 여행을 떠난 곳으로 등장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려는 연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빛바랜 나무 벤치가 자리 잡은 시골역 대합실을 찍으려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적어 매달아 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나무를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고, 때로는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몰려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10여 분이면 다 둘러보기 충분할 정도로 작지만 이처럼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조용하고, 고요하며, 북적이지 않아서다. 이제는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시골 간이역이 정겹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 위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역을 둘러싼 작은 시골 마을의 풍경도 꽤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구둔역에서 안 하면 아쉬울 세 가지
1. 손발이 좀 오글거려도 역무실 앞의 ‘첫사랑, 흔적’ 게시판에 무언가 남겨보자.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에서 하는 것보다는 발각될 확률이 적으니.
2. 소원나무와 돌탑 앞에서 소원을 빌어보자. 휴식을 취하던 군인들도 하는 일이니 정말로 효험이 있을지도.
3. 역 앞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걸어보자. 거리는 짧지만 키 큰 은행나무가 여럿 있어 초겨울,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근처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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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리| 사진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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