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끝에 막걸리가 있었다

in gyeonggido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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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꿀맛이었다. 5시간이나 걸었던 탓에 막걸리 한 사발로 에너지 음료보다 더 큰 기운을 얻었다. 삼송역에서 시작, 원당 경주마목장과 서삼릉을 지나 배다리 술박물관까지 닿는 그 길에서 막걸리 맛을 절로 부르는 풍경도 함께 만났다.

 

 

걷기 좋은 서삼릉누리길

지하철 3호선 삼송역과 원당역을 잇는 서삼릉누리길은 전체 8.28㎞ 길이로 소요시간은 2시간 15분 정도. 하지만 곳곳에 위치한 스폿들을 들르면 반나절 정도 넉넉하게 여유를 둬야 한다. 두 역 중 어느 역에서 시작해도 좋지만, 트레킹을 한 뒤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코스를 선택했다. 삼송역에서 출발, 숲길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삼릉과 드넓은 초원에서 말이 뛰어다니는 원당 경주마목장을 거쳐 수역이마을 먹거리촌을 통과해 배다리 술박물관에 닿는 코스다. 지하철에서 바로 이어져 있는 길이기에 승용차보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가볍게 걷기 좋다. 무엇보다 서삼릉누리길이 마음에 들었던 건 도심 속 생각지 못한 자명한 가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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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역 5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서삼릉누리길이 시작된다. 근처에 있는 마을의 집집마다 텃밭이나 화분에 아기자기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채소들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곧바로 약 3㎞ 길이의 숲길이 등장한다. 동네 뒷산을 만난 것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다. 곳곳에 역사적인 이야기나 전설이 있는 명소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밀려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큰 바위에서 칼을 갈았다고 전해지는 숯돌고개, 북한산에 살다 돌아가지 못한 거북 이야기가 있는 거북바위 등을 만날 수 있다. 숲길 중간쯤 만나게 되는 천일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싶었지만 마침 찾아간 날은 수질 부적합 판정에 마시지 못했다. 숲을 빠져나오면 농협대학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띄엄띄엄 차가 다니기에 조심히 걸어야 한다. 이 길 위, 쭉쭉 뻗은 은행나무들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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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 수북하게 떨어진 은행잎을 정신 없이 밟았을까, 서삼릉에 닿았다. 릉으로 가는 길에는 은사시나무가 촘촘하게 심어져 있어 여름이면 그 초록이 유난히 진해질 것 같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중 한 곳인 서삼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 윤씨의 희릉과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무덤인 예릉이 있다. 이 삼릉과 함께 서울의 서쪽에 있다고 해 서삼릉이라고 한다. 삼릉 외 일제강점기 시대에 전국에 흩어져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모아 놓은 곳이기도 하다.
희릉에 묻힌 장경왕후는 중종 원년(1506)에 숙의되고 그 이듬해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1515년에 맏아들인 인종을 낳고 병을 얻어 25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유난히 그의 묘가 있는 곳의 자태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릉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서늘한 날씨였지만 포근해 보였다. 옆에 있는 예릉까지 돌아보고, 개방이 되지 않은 효릉을 건너 원당 경주마목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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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반한 막걸리가 있는 배다리 술박물관

서삼릉누리길의 마지막 코스, 술박물관에 닿았다. 고양시 주교리에 배다리 술도가가 생긴 이래 4대 째 가업을 이어온 박관원 관장과 그의 아들 박상빈 씨가 세운 전통주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술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제1전시장과 조선말기 술 빚는 과정이 재현되어 있는 제2전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의 막걸리가 유명해진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 때문이다. 1866년 여름, 골프를 치고 돌아가는 길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싶었던 박 대통령은 ‘실비옥’이란 주막에 들르게 된다. 소박한 주점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단박에 막걸리 맛에 반하게 된다. 그 후 박 대통령이 암살됐던 1979년까지 14년 동안 청와대에 배다리 술도가의 막걸리를 납품했다. 그 당시 청와대 직원이 매주 직접 양조장에 와서 2말씩 가져갔다. 대통령 막걸리가 일반 막걸리와 다른 점은 쌀과 찹쌀로 술을 빚었다는 것이다. 또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평양방문 시 김정일 위원장이 ‘박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를 맛보고 싶다’고 했고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만찬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박물관 2층에는 ‘실비옥’에서 박 대통령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재현해놨다. 나무 탁자 위 낡은 막주전자, 막걸리가 가득한 양은그릇, 안주 등이 놓여있다.

 


“대통령이 돌아가신 그 날에도 막걸리가 들어갔었지요. 근데 못 마셨던 게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들어요. 그날 막걸리를 마셨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도 듭니다.”
박 관장의 막걸리 사랑은 전시실 곳곳에 수집해 모아 논 막걸리 관련 전시품에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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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장은 여든이 넘었지만 옛 것만 고수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중시 여기는 것. 막걸리의 맛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 막걸리에도 변화를 시도해야 해요. 담기는 그릇이 중하다는 거지요. 곧 새로운 디자인의 막걸리가 나올 겁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한편에 마련된 막걸리 카페를 들렀다. 막걸리 카페에서는 배다리 막걸리들과 다양한 안주를 함께 맛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박상빈 씨가 따라주는 막걸리 한 사발이 온몸의 피로를 날려준다.

“막걸리를 마실 때는 자극이 적은 안주부터 먹어야 막걸리의 참 맛을 알 수 있어요. 개인적인 입맛으로 유통기한 지난 게 더 맛있어요. 막걸리는 병 안에서도 살아있어요. 오래될수록 제 입맛을 당기지요. 저희가 먹는 발효가 더 된 막걸리는 따로 모셔두고 있지요. 한 번 맛 보실래요?"
그와 고소한 전과 함께 막걸리 한 잔 기울이는 시간. 겨울철이 가장 맛있다는 그의 말처럼 눈 내리는 날 다시 찾아오고 싶다.

 


배다리 술박물관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 1동 470-1
전화번호 031-967-8052
글 박산하|사진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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