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14:00 아 공병대대 제2중대는 보현산에서 불노동에 침입한 적 유격대를 추격하여 유전동 뒷산까지 격퇴하고, 20:00에 이르러 아 공병대대 1개 중대는 갈천동 부근에서 백자동에 침입한 적 유격대 230명을 추격한 바 적은 월매동 부근으로 도주하였다.
7월 30일의 정황
08:00 아 공병대대 1개 중대는 덕성동(DR964~117)에 침입한 적 유격대 30명을 추격하는 한편 11:00 아 제3대대 평창 경찰 중대는 청송군 부송동 710고지에 침입한 적 유격대 200명을 공격하여 12:30 그 적을 남방으로 격퇴하고 11:30 안덕면 문거동 및 삼자현으로부터 도평동에 침입한 적 약 500명이 양동 지서를 포위 공격해 옴을 동 부근 고지를 경비 중이던 제3대대 정선 경찰 중대가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여 적을 남방으로 격퇴시켰다.
7월 31일의 정황(부도 제19호 참조)
아 경찰 제6대대는 계속 동 대대지휘소를 구지동에 위치하고 한편 418고지 및 492고지와 682고지에 배치하고 있는 제6대대의 1개 중대를 09:00 중개리(ER097~962)에 배치하여 적의 연락로인 운주산과 보현산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16:40 아 제1유격대대는 대대지휘소를 영천에 설치, 예하 1개 분대로써 보현산 부근 적정을 수색 중 적 유격대 약 1,500명이 동 부근을 배회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예하 전 병력을 상송동 북방 능선 일대에 배치, 적을 포착 공격하였다. 19:00 적 2개 대대는 보현산으로부터 산두봉 569고지 부근에 내습하였으나, 동 고지일대에 배치하였던 아 공병대대 제2, 제3중대로부터 치열한 공격을 받아 다대한 손실을 입고 21:00 이 적은 불로동을 경유, 사촌동으로 도주하였다.
22:00 적은 사촌동에서 일단 부대를 재편하여 모계동을 경유, 569고지 아 공병대대 2개 중대 진지 후측면으로 재차 공격을 가해 왔으나 아군의 치열한 반격으로 적은 불로동과 갈천동을 경유, 보현산으로 도주하였다. 23:00 상송동 북방에 배치하고 있던 제1유격대대는 계속하여 전면의 적을 저지하며 예하 수색대로서 보현산 부근 일대의 적정을 수색하고 있었다.
8월 1일의 정황(부도 제19호 참조)
아 제1유격대대는 전일에 계속하여 적정을 수색하고 12:00 제3대대 1개 중대는 죽장지서 소재지인 입암리(ER090~010)에 적 유격대 약 70명이 침입해 왔음을 발견하고 즉시 이를 추격하자 12:30 적은 봉대봉(ER091~995)을 경유, 보현산으로 도주하였다. 또한 구암산과 월매동~구산동을 연하는 산악지대에서 아 군경은 적진을 압축하고 계속적으로 출몰하는 적을 추격하는 한편 21:00 제3대대는 적 유격대 500명이 도평동 일대에 침입하였다가 그 후 개일동(ER007~164)~문거동(ER066~140)~도평동~거성동(ER022~145)을 연하는 산악지대에 잠복하고 있음을 탐지하여 수색전을 전개하였다.
8월 2일의 정황(부도 제19호 참조)
상송동 북방에 배치되어 있던 제1유격대대는 보현산 북방 8㎞ 지점인 사촌동(DR906~040) 부근에 출현한 적 유격대 15명을 포위 섬멸하고 16:00 제1유격대대는 중대별로 분산 배치를 개시, 제1중대를 상송동(DR925~001)에, 제2중대를 요소동(DR952~999)에 각각 철수 배치하고, 제3, 제4중대는 계속하여 자천으로 철수하였다. 19:50 갈천동과 유전동 부근에서 배회하고 있던 적 1개 대대는 구산동 부근 462고지~647고지를 연하는 간격으로 침공을 가하여 왔으므로 구산동에 포진하고 있던 아 공병대대는 즉시 569고지에 배치 중인 예하 제2, 제3중대와 합류, 적 전면에 진출 적진을 일시 점령하였으나 적 약 1개 연대의 증원으로 부득이 구산동 진지에 철수하였다. 그후 적은 동 고지 부근에서 유동하다가 보현산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아 제1유격대대는 영천에서 자천으로 이동, 자천국민학교에 지휘소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