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06:00 화림산 후방으로 도주하였던 적은 약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으로써 영덕 북방 아 제22연대 및 제23연대 진지와 340고지의 독립 제1대대 진지에 각각 출현하였으나 아군의 반격으로 적의 공격은 저지되었고, 31일 08:00 적은 아군의 강력한 공격에 전진 기도가 좌절되어 화림산 좌우측으로 도주하였다. 동일 적 약 1개 대대가 영덕 동방 태부동 부근에 출현, 아 제23연대 제1대대는 동 부근에 진출 8월 1일 08:00 적을 기곡동 부근으로 격퇴하였다. 동일 16:00 제22연대는 대탄동, 삼계동을 연하는 선 일대에 진출, 진지를 강화하여 적에 대비하였다. 8월 2일 18:00(부도 제23 참조) 아군은 제23연대를 영덕~이동을 연하는 선 일대에, 독립 제1대대는 이동~320고지를 연하는 선 일대에 각각 진출 배치하고 방어진지를 강화하였다. 8월 3일 아 제3사단 지휘소는 강구로부터 포항으로 이동하고 동일 06:00 적 약 2개 연대 병력이 화림산과 삼화동 간을 남하하여 각 지구 아군 진지 전면에 출현하자 아군은 진전에서 적에 대한 출혈을 강요하는 소모전을 감행하였다. 한편 매일 목표를 설정하여 주간 항공지원과 포지원으로서 적을 공격하자 적은 대부분의 병력을 손실 당하고 8월 4일 17:00 제22연대와 제23연대 정면의 적이 삼화동 후방으로 도주하였다. 8월 5일 10:00 제22연대 제1대대는 138고지 일대에 진출 잔적을 추격하고 동일 12:00에는 제22연대 지휘소를 강구로부터 임리에 제23연대 지휘소를 강구로부터 소월동에 각각 이동시켜 방어 태세를 강화하였다.
8월 8일 05:00 포산동(葡山洞)에 집결 중이던 적 약 1개 사단 병력이 삼화동 부근에 도주한 병력과 합류하여 아군 정면에 공격을 가하여 와 동일 07:00 아 제22연대는 삼계동, 창포동을 연하는 선에 철수, 배치하고 측면으로부터 침입하여 오는 적의 일부 병력을 극력 저지하였다. 8월 8일 21:00를 기하여 적은 각종 신호탄을 발사하고 아군 진지 전면과 강구에 포격을 가하면서 아군 진지에 접근하여 왔으나, 아군은 현 진지를 사수 혈전하였다. 8월 9일 04:35에 이르러 적은 또다시 전차 1대를 선두로 아군 방어진지에 침입하여 옴을 계속 저지하였으므로 적은 아군 정면에서 약 1개 연대 병력으로써 견제공격을 계속하는 한편 주력을 좌우측 후방으로 우회시켜 삼면 포위 태세를 취하고 아군을 해안선으로 압박하였으므로, 아군은 회신(灰燼: 타다 남은 재와 찌꺼기)한 영덕읍을 또다시 포기하였다. 8월 10일 18:00 영덕 남방 태부동~207고지를 연하는 선에 제22연대를, 207고지~300고지를 연하는 선에 제23연대를, 300고지~265고지를 연하는 선 일대에 독립 제1대대를 각각 철수 배치하였다. 적은 점차 병력을 증원받아 각 지구 아군 방어진지에 각종 중화기의 포격을 가하면서 공격해 왔다. 아군은 중과부적으로 8월 11일 05:00를 기하여 제22연대를 남호동에, 제23연대 및 독립 제1대대를 강구 남방 82고지 동서에 각각 철수 배치하고 적에 대비하였다. 동시에 제22연대 및 제23연대 지휘소는 남호동에 이동 설치하였다. 아군은 적에 대하여 지연전을 계속하면서 진지를 확보하였으나 적의 포위 태세는 점차 축소해지고 적의 후속 병력은 이미 좌측으로 장구 남하하여 아 사단 후방 제대가 위치하고 있는 포항을 기습, 점령하려는 기세였으므로 8월 13일 06:00 아군은 전 병력을 부득이 독석으로 철수, 독석을 중심으로 배수의 삼면 방어를 실시하는 한편 동일 아 제3사단 지휘소는 포항으로부터 독석에 이동하여 직접 지휘에 임하였다. 아군은 전면의 적과 대치하여 진지를 유지하면서 육군본부에 무전으로 긴급한 상황을 보고하고 지구방어(持久防禦)를 결심하였다. 그간 적의 압력으로 아 방어선은 축차 협소해지고 연 3일 간의 혈투를 계속하던 중 17일 야간에 육군본부로부터 지원된 LST 4척에 의하여 해상 철수에 성공하여 구룡포로 전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