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콘다가 뒷간에서 나온다면?
<우리 집 뒷간>
몇 년 전부터 수세식을 집 안에 설치함으로써 뒷간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다.
수세식이 없던 시절에는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익숙한 손님들이 오면 뒷간을 이용하라고 하는 것이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한전전기가 들어오기 전 겨울 밤, 그 멀고도 먼(!) 뒷간을 후레쉬만을 의존해서 간다는 것이...
그런데 그 때가 사실은 제대로 산 시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몸이 온전히 자연과 함께 순환된다는 것이 뒷간을 이용해야만 느낄 수 있다.
자연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먹거리를 내 몸을 통과해서 필요한 에너지만 갖고 나머지는 다시 자연으로 내보내어 자연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나는 받기만 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는 파렴치한 생물체가 되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늘 뒷간을 이용한다.
느린 남편이 가장 바쁘게 움직일 때가 뒷간으로 향할 때이다.
뒷간 창 밖을 내다보면서, 커피 한잔으로 아침의 큰 볼 일을 해결한다.
그러니 커피도 타야 되고 서둘러 뛰어가도 1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니 움직임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 집 뒷간은 비탈사면으로 재를 뿌리는 잿간형식이라 아래에는 통풍도 잘 되어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쾌적하게 커피를 마실 수는 있다. 쾌적하다는 말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답답함에 반하는 말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볼 일을 보다가 아무리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라도 거기에 앉아 볼 일을 보면 뭔가 죄를 짓고 있는 느낌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뒷간에 앉아서 내다보는 풍광>
우리 아이들이 뒷간에 익숙해서 수세식 좌변기에 몸을 맡기지 못할 때 익숙함의 위대함을 실감했었는데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역시 편한 것이 불편한 것을 이긴다는 단순한 진리 또한 실감케 되었다. 큰 아이에게만이라도 뒷간 이용을 적극 권했었으나, 예상했던 것처럼 가지 않았다.
그래도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쯤 말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큰아이 친구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 부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큰아이는 다양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사고가 좀 기발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꿈 이야기를 하면 참 재미있는 얘기들이 간혹 있다.
다음은 친구들에게서 들은 큰아이의 꿈 이야기이다.
"내가 우리 집 뒷간에 가서 응가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밑에서 뭔가 소리가 났는가 싶더니 거대한 아나콘다가 내 항문으로 들어와서 내 입으로 머리가 나왔어. 깜짝 놀라서 일어났는데 꿈이었어."
아들의 꿈 이야기는 친구들 입을 통해서 꽤나 재미있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 같다.
우리도 그 얘기를 듣고 어이없기도 하고 기발하기도 하고 하여간 재미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론은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뒷간으로 가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