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다 들어줄게. 듣고 싶어. 그래야, 뭔가 같이 해나갈 수 있으니까.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방향이 성평등이니까. 나도 그러한 측면에서는 지지하고 동의해. 근데 요즘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 있잖아. 한남충, 재기해, 몰카충, 자이루 등등..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자신들을 소위 '메갈'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메갈이라는 집단을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아. 누군가들에게 미움을 받는 삶을 사는 거 그거 충분히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근데, 사회와 조화롭게 살고 도우며 산다는 전제 하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와 어우러지려고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시위가 예뻐보일 필요 없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나서는 거니까. 거기에 반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 나는 그 시위의 목적을 잘 몰랐어. 근거 없는 편파 수사를 문제로 들이밀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말이야. 그건 네가 잘 알겠지.
봐봐, 네가 쓴 글에서 남성과 여성을 뒤바꿔 놓아도 다 가능해. '나는 당했다.'라는 측면에서 세상을 보면 나도 당한 거 많거든. 네가 당하고 들었던 것들은 다 '그 사람들'한테 말해야 할 것들이야. 그 사람들이 다 '남성'이라고 해서 '니네 남자애들은 뭐했니'라고 하면 그걸 똑같이 페미니즘을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어찌보면 다 개개인의 문제인거야. 촛불 시위도 그렇잖아. '사회'라는 건 개개인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고 여자들이 참아라'라고 가르친 사람이 잘못 가르친 것이지, 남성이 잘못한 게 아니니까. 탓으로 돌려버리면 해결될 것들이 아무 것도 없어. 자신들이 당한 것들을 남성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를 담당하는 곳에 가서 항의를 하거나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같아. 홍대 몰카 피해자를 위해서 여성들이 해줘야 할 건 없어. 법원이 해줘야 하지. 경찰들이 해줘야 하지.
일베는 나쁜 거, 뭐 워마드 나쁜 거, 메갈 나쁜 거, 등등 본인들이 생각하는 나쁜 것들에 대한 항의는 본인들이 해야한다고 생각해. 그것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동참을 하겠지. 근데 그 책임을 왜 '남성'에게 돌려버리냐는 거지.. 남자도 사람인데, 여자도 사람이고.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뭐 백인들이 우월감으로 차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나는 여성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나는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지 않는 게 좋아. 그냥 사람으로써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못한 점 있으면 얻어가고 그런거지. 윗 세대가 당해서 광분할 일이냐고 묻는 게 아니었어. 그저, 그런 것들은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야.
나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나'라서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냥 그렇게 바꿔버리면 조금 더 서로 나아질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회 경험은, 내가 말하는 건 그런 뜻이 아니었고 뭐 직장에서의 일이나 우리 나이 기준으로 한 10년 후의 일들을 말하는 거였어.
네가 예전에 얼빠라고 하는 글을 봤어. 사람마다 외모의 기준이 다 다르잖아? 예를 들어 몸매를 기준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그것도 외적인 미에 속하니까) 너처럼 얼굴을 보는 사람이 있잖아. 몸매만 성적으로 보이는 게 아닌 것 같아. (나만 그렇게 느끼는 지 모르겠어도) 애초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야. 그냥 감추는 것일수도 있고 그냥 진짜 별로 그렇게 느껴지는 퍼센트가 낮은 사람은 있겠지. 그리고 특히나 좋아하는 감정이 서로 있다면.(싫은 사람을 만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만약에 '시선강간' 했다고 나는 몸은 안보고 얼굴만 본다고 누가 그러면 나는 몸매를 외적 기준으로 보니까 그냥 쳐다본 거라고 할 것 같아. 사람이 사람 얼굴만 보고 사는 인생이 있을까 싶다. '시선 강간'이라는 말은 어찌보면 너무 극단적이 아닐까 싶어. '강간'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니까.. 시선으로 임신이 되진 않잖아. 그래 뭐, 그건 그렇게 해도 만약에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봤던 여자가 나보고 시선강간했다고 그러면 정말 어이가 없을 것 같아. 여자를 쳐다볼 때나 남자를 쳐다볼 때나 얼굴도 몸도 다 보니까 왠만한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네가 말하는 그 '전애인'이 이상한 거였고, '헬스장 보이'가 이상한 거였고..'어떤 아저씨'가 쌍놈의 새끼였던 거지.
네가 느끼는 그 시선들 나도 느껴봤어. 내가 몸이 말라서 스키니진 같은 거 입으면 흔히들 여자들이 그랬어. '좆끼니진'이라고. 그리고 가끔 흰 셔츠를 입고 나간 날에는 '젖꼭지 보인다'라는 말도 들었어. 그게 나한테는 이상한 시선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근데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았어. 뭔가 튀어나오고 은밀한 부위가 노출되면 신경이 쓰이니까. 물론 그런게 신경쓰이는게 자연스럽다는 거지, 발언을 하는게 자연스럽다는 건 아니야. 어떻게 보면 난 성추행을 당한거지. 요즘 나도 그냥 티셔츠만 입고 나가면 어깨를 움츠리게 되는 건 있어. 근데 그렇게 행동하는 나를 보면서 '여자들'이 그랬다고 여성들 탓을 하진 않았어. 내가 좀 더 운동하고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했지. 그리고 그게 싫으면 내가 좀 다른 옷을 입으면 됐었어. 네가 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
'여성'을 탓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왕따 당했을 때 방관하던 애들 중 대부분이 여자였던 것도, 내 가슴과 배와 엉덩이, 그리고 귓볼을 만지며 떠들던 아이들이 여자였던 것도, 내 몸을 훑어보며 남자가 비실비실해서 되겠냐며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이 여자였던 것도.. 다 여성이 그렇다는 식으로 탓 해버릴 수 있었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힘든 일에 여군무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자군무원이 하는 것도 그렇고, 차별비용이라고 생각하기엔 내 주변 사람들이나 내가 겪는 건 내가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들을 떠맡는 기분이야.
근데 그런 기분이 들어도 어떡해. 남자와 여자는 그냥 똑같은 사람인걸.(생물학적이나 성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여자를 미워할 거리는 되지 않았어. 여자가 기득권이라고 생각할 거리는 되지 않았어. 네가 느끼는 것들 중 대부분은 반대로 내가 느꼈던 것일 수 있어.
네가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 예전에 한 번 남성과 여성이 성폭행과 추행을 당하는 걸 주제로 한 스토리가 있었어. 한 남성이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걸 인터뷰로 다룬 자료들이 나와. 물론 반대의 경우도 나와. 근데 남성들도 충분히 그런 것을 겪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 굳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자면 말이야.
그리고 네가 정말 그렇게 화장실 갈 때,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거라면 그게 네 주변의 아버지나 친구들 그리고 네 오빠 탓인지, 아니면 그렇게 만든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만든 교육체계나 가정 탓인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이건 나를 위한 말들이야, 그리고 그 안에 너도 있어. 네가 이 글을 보고 기분나빠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걸 보고 단 한 번이라도 돌아봤으면 좋겠어. 물론 그러지 않고 나를 미워해도 좋아. 그래도 난 너를 좋아할게. 네 말들을 다 들을게. 이건 내 생각들일 뿐이고 우리는 그냥 서로에게서 배워갈 것들만 찾으면 되는거야. 조금만 이성적으로 보고 살짝씩만 물러서자. 나도 그럴게. 그런 얘기 못 들어줘서 미안해. 나와 가까이 있었다면 많이 들어주고 어깨를 내어줬을 거야. 뭔가, 너의 주장과는 좀 반대되는 얘기만 늘어놔서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긴 하는데 그래도 나를 위하고 너와의 관계,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썼어..!
감정적이든 어떻든 네 얘기 잘 귀 기울일게. 너의 눈물을 볼게. 우리 극복할 문제가 있다면 잘 극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