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이 영화를 이제야 보았다. 완벽한 영화라는 걸 서두에 밝히고 글을 써보고 싶다.
완벽하고도 섬세하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영화가 아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던져진 인간과 생존욕구를 현미경으로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그려낸 심리극에 가깝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의지는 클로즈업하여 면밀히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실제 전쟁의 풍경과 참상은 가장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듯 조망한다. 굉음 같은 총소리와 총과 포탄을 맞은 병사들의 붉은피 대신,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어찌 바라보면 아름답기까지한 장면들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덩케르크에는 세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땅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시간. 출발점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은 극이 진행될수록 하나의 시간대로 수렴해간다. 그 과정에서 하늘의 이야기가 바다의 이야기와 먼저 겹쳐지고, 또 육지의 이야기와 합쳐지며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렇듯 영화는 함축을 통해 하나의 사건에 존재하는 세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 과연 놀란이 아니라면 이러한 '시간의 연금술'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뭔가 차원이 다른 감독이라 여겨진다.
더군다나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를 '역사적'으로 재현한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영국 연합국 44만 8000명이 구출됐지만, 프랑스군 4만 여명은 포로로 붙잡혔다. 극중 깁슨은 영국군 복장을 입고 있지만, 알고보니 프랑스군이다. 탈출에 필사적이었던 영국군들은 그런 깁슨에게 배에서 내릴 것을 요구한다. 잔교에서도 구축함에 탑승할 수 있는 군인은 영국군 뿐이었다. 이는 100% 완벽하지 않았던 덩케르크 구출 작전에 대한 놀란 감독만의 영화적 표현이었고, 철저한 고증이었다. 이후 철수에 성공한 군인들은 4년 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다. 이것이 역사고, 이것이 역사를 다룬 영화다.
또한 덩케르크는 전쟁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적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 역시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영화 속에서 독일군은 총소리, 대포소리로만 대변될 뿐 그 모습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결국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안에서 돌아가야만 하는 자의 비참함과 살고 싶어하는 자의 비애를 더욱 증폭시킨다. 이 감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사실 굉장히 모순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감성은 곧 이성이되고 이성은 곧 감성으로 승화가 된다. '우린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회답해주는 것, 이 대화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아닐까.
더불어 다른 결의 이야기 역시 묵직하다. 자국군을 구하기 위해 차출된 한 요트의 하루는 허망한 죽음과 씻겨지지 않는 전쟁의 상흔을 담는다. 친구의 아버지가 모는 배에 따라 타 전쟁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조지는 전쟁의 현장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죽음을 맞는다. 그의 죽음은 전장에서의 죽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죽어야 하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닌, 죽음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는 전장 그 자체 속의 상황을 상징한다.
의미와 더불어 연출은 더할나위 없다. 덩케르크는 영화적 '체험'의 정점을 보여주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기술력이 얼마나 발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격추된 비행기가 해수면에 꽂히고, 어뢰 공격을 받은 함선 내부로 물이 차오르며, 총알이 퍽퍽 선체를 뚫을 때의 사운드와 이미지의 질감은 너무 리얼해 어지러움까지 동반한다. 모든 정보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더욱 집중하게 만들고, 화면 어디에서 무엇이 터질지 몰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덩케르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마지막 시점이다. 바로 영국으로 돌아온 연합군을 반기는 영국인들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시점이다. 패잔병이 되어 돌아온 그들에게 뜨거운 차 한잔이 건네지고, 시각장애인은 돌아온 그들을 정성스레 어루만진다.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러닝타임 내내 전쟁의 참상을 함께 느꼈던 우리는 이 마지막 모습에서 자연스레 감동한다. 중요한건 전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의 강요없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 이 네 번째 시점은 위에서 말한 세 시점과 합쳐져 진정으로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는 영화가 영화적으로 해낼 수 있는 최대치의 감동이고 여운이며 희열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덩케르크는 제가 한 다섯번 정도 본 거 같은데. 리뷰를 읽으면서도 소름이 좀 돋네요.
적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전쟁영화였죠.
이 장면에서, 깁슨을 살리고자 했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웅의 모습을 봤습니다. 놀란 감독이 의무론자임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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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러번 보게될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완벽한 영화였어요..놀란 감독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했습니다. 의무론자.. 적확한 표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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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단한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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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감독의 연출에 감탄하며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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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저는 혼영했는데 초반부터 몰입도가 장난아니었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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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러번 혼영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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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당시부터 보고싶었는데 아직까지 보질못했네요.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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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날때 꼭꼭 보세요. 제가 꼭을 두번 쓰는 이유를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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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싶네요. 마지막의 따스한 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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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맥주 한캔 놓고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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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꼭 한번 봐야할 영화 리스트에 추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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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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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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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스로 보셨으면 더욱 좋으셨을텐데!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영화 볼 때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르게 하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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