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2014년 12월 19일, 헌법 제8조 제4항을 근거로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라고 선고했다. 헌법재판소 최악의 결정으로 평가할만한 이 선고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건 정당에 대한 국가기구의 관리체계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가장 강력한 정치결사체이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과 지향, 실천노선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모인 조직으로서 그 이념과 강령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정립하고 궁극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특히 정당은 제도화를 결정하는 기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점에서 제도결정기구 바깥에 위치하는 다른 정치결사체들과 그 성격을 달리 한다.
한편, 정당은 존립의 여부를 유권자로부터 판단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결사체와 다른 특수성을 가진다. 달리 말하자면 정당은 자신의 정치활동에 대한 책임을 진다. 선거가 그 평가의 수단이며,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함으로써 정당은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된다. 다시 말해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판단을 통해 정당을 심판할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평가를 할 권리가 바로 유권자에게 부여된 참정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정당의 조직구성원리와 유권자의 참정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정으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의 중심에는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정부의 관리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이 깔려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정당이 제 능력이 안 되면 유권자들에 의해 해산이 되든 분해가 되든 할 일이지 국가기구가 위헌성 여부를 법리로 따져 정당의 존립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행 헌법은 그러한 처분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주의적 관리체계가 자리 잡게 되면 정당의 조직구성과 활동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행정편의주의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정당의 ‘난립’으로 인한 관리체계의 혼란이다. 그러므로 정당이 ‘난립’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 그 결과 인적, 지역적, 경제적으로 정당을 창당하기 어렵게 법을 만드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헌법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행정편의주의를 보장한다는 데에 있다.
제헌헌법부터 이승만정권 당시의 두 번에 걸친 헌법개정 내내 헌법의 본문에는 아예 정당에 관한 규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4·19 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한 후 개정된 제3차 개정헌법에 정당에 관한 규정이 삽입되었다. 그런데 이때 정당에 관한 규정은 기본권의 장에 있었으며, 집회결사의 자유의 하나로 도입되었다. 내용 면에서는 현행 헌법 제8조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정당은 결사체 중에서도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가진 특별한 결사체로 인정되었고 정당설립과 활동은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되었다.
현행 헌법과 같이 정당에 관한 조항이 총강편에 들어오게 된 건 박정희 쿠데타 헌법에서부터다. 쿠데타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총강편 제7조를 정당에 관한 규정으로 독립시켰다. 내용은 현행 헌법 제8조와 거의 유사하다. 그렇다면 박정희 쿠데타 정권은 왜 이렇게 정당규정을 바꾸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정당의 난립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고, 양당제 체제의 안정된 정치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승만정권 당시 활동하던 민주인사들의 정치세력화를 위축시키고, 코앞에 닥친 제6대 총선에서 공화당과 경쟁하는 정당을 최소화함으로써 군부집권의 효율을 꾀한 것이다. 결국 박정희정권 때부터 정당이 마치 준 국가기구로 다루어지면서 국가의 관리대상으로 위상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세계적으로도 매우 강력하게 정당을 규율하는 정당법은 쿠데타 헌법이 만들어진 직후 제정된다. 제정 이후 많은 개정이 있었지만, 지역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악법규정들은 지금까지 건재하다. 지역정당은 중앙정부차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관리체계 안에 존재해야 할 정당이 그 관리능력을 벗어날 정도로 늘어나는 것을 정부는 바라지 않는다. 정부만이 아니다. 전국정당의 기득권을 등에 업고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역시 지역에서 자신들의 존재 기반을 잠식할지도 모르는 지역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헌법이 정한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들 또한 중앙행정기관의 방침과 운영에 따라 지방정부가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으며, 국회의 입장에 맞춰 지방의회의 졸례가 만들어지도록 강제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와 지역정치가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방분권은커녕 지역정치의 활성화조차도 도모하기 힘든 법제도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현행 헌법 자체가 지역정당의 건설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현행 헌법은 제8조 제1항에서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한다고 했을 뿐, 지역정당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규정은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제8조 제1항을 원칙적으로 해석할 경우 현행 헌법은 정당의 형식, 정당의 지역적 기반, 정당의 활동 등에 어떠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제2항의 한계, 즉 “목적 ·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만 준수하면 될 뿐이다. 물론 헌법 제8조는 장기적으로는 국가관리체계에 정당을 종속시키지 않음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현행의 규정만으로도 헌법은 지역정당을 막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지역정당 설립의 관건은 헌법이 위임한 법률에 달려 있다. 다음 편부터는 어떤 법률이 지역정당의 설립을 막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