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요새 플라톤 읽고 있는데, 영혼이나 덕(아레테arete, 뛰어남)이나 행복(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성공한 삶)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안중근이 생각난다. 대화편에 늘 나오는 저 단어들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이 안중근 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연출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줬지만, 결국 현실의 탄탄함에 미치지 못한다. 안중근의 삶은 플라톤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성공적인 삶이었다. 플라톤이 예찬하는 그 모든 고결한 것들을 품은 진리적 삶episteme이 안중근 의사의 삶이다. 플라톤이 만든 소크라테스는 안중근 앞에서 그저 doxa일 뿐이다.
ㄴ.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 5조약(을사늑약)과 7조약(정미7늑약)을 강제로 맺은 죄
-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서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코 나는 오해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
-도마Thomas 안중근의 『안응칠 역사』
부천에 가면 안중근 의사 공원이 있다. 맞후임을 만나러 부천에 가서 안중근 의사 공원을 봤는데 참으로 처참했다. 동상과 공원 주변을 빼곡히 채우는 큰 건물들과 전광판... 소음과 화려한 조명과 전광판 속에 공원은 그를 기리는 곳이 아니라 그저 도심 속의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녹지로 보였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을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우니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놓으니 이토도 죄인이라.
-쑨원孫文의 안중근 의사 찬양 시
삼한을 덮는 공을 세웠으나 그 후손들이 덕이 없어 그를 방치하니... 고귀한 영혼은 구천을 헤매는구나...
ㄷ.
오로봉위필五老峯爲筆 오로 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작현지三湘作硯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청천일장지靑天一丈紙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사아복중시寫我腹中詩 뱃속에 담긴 시를 쓰겠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오로봉五老峯 <보물 제 569-9 호>
문화와 예술,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분의 동상이나 그분을 기리는 공원이 매연과 소음과 조명에 둘러싸여 있다니...
사군천리思君千里 천리 밖 임금님을 걱정하니
망면욕천望眠欲穿 바라보는 눈 허공을 뚫으려 하네.
이표촌성以表寸誠 작은 충성을 표하였으니
행물부정幸勿負情 저의 충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 고종황제에게 남김 <보물 제 569-11 호>
바라보는 눈이 허공을 뚫는다... 숙연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