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경계에 서있는 인간

in kr-writing •  7 years ago 

A. 궤변론자 소크라테스의 지혜론

"아름다운 말로 꾸민 웅변이 아닙니다. 생각을 조금도 꾸밈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을 들으실 것입니다."

플라톤이 각색한 소크라테스는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궤변론자다. 곳곳에 본인을 낮추는 표현은 기만처럼 보인다. 나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경건하고 존경스럽게 묘사한 게 아니라 왠지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거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란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평범한 지혜일 뿐입니다."
"신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가 신탁을 반박하려고 마음먹었다."

소크라테스는 델피의 신탁을 받자, 내면의 성찰을 시작한다. 신탁의 의미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이는 이야기의 원형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아놀드 반 즈네프의 『통과의례』에서 언급된 이야기의 3형식이 떠오른다.

B. 소크라테스의 여정 -> 경계에 놓이게 됨

(1) 정치인과 토론
"신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본다면, 가장 훌륭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은 사색에 있어서는 가장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자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열등하다는 사람들이 더 훌륭하고 진실하게 보였습니다."

(2) 시인과 토론
"시에 관하여 그 작품의 주인공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게 그 시를 설명하기 때문에 그들이 타고난 소질이나 영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시인들은 그럴 듯한 구절을 많이 쓰면서도 그 뜻이 무엇인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정치가와 비슷한 결함이다."

(3) 공예가와 토론
"기술적인 일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임 ->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밖의 일에도 가장 슬기로울 것이라 생각 -> 하지만 전혀 그러지 않음..."

여정을 마친 소크라테스는 고뇌에 빠진다. 이는 즈네프의 이론에 따르면 경계의 단계Liminal stage에 속한다. 여정을 통해 신탁의 부당함을 밝히려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탁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몰두한다.

"나는 본래대로 그들의 지혜를 가지지도 않고, 또한 그들처럼 무식하지도 않은 현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처럼 지혜와 무식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과 신탁에 대하여 지금의 상태로 있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계에서 지혜를 획득한 소크라테스는 통합의 단계로 나아간다. 바로 지혜의 본질에 다가간다.

C. 경계에서 깨달음을 얻은 소크라테스

"참된 지자는 신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탁에서 신께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란 아무 쓸모도 없을 뿐 아니라, 거의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들 중에서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란, 누구나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혜가 실제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결국 인간의 지혜로만 세상을 보는 관점은 어리석음을 야기할 뿐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겸손하게 타인과 협력적으로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리라.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고 미래 일어날 일을 최소한으로 믿어라."
-호라티우스Horatius의 『송가The Odes』1권 11행

결국 지혜의 심연에 놓인 진리는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후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의 원형이다.

D. 죽음에 대하여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어느 의미에서는 사람들에게 가장 선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사람들은 죄악 중에서 최대의 죄악이라고 믿고 있는 듯이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무지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악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선할지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죽음의 가치를 바로 보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 선택한 생명의 유한성을 깨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과학자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자는 생명의 유한성이 어떠한 연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밝혀내는 일, 또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파괴하는 수많은 것들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가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과학자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나는 플라톤이 철학자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큰 덕성을 과학자에게 요구한다. 과학자는 타고나는 직업이다. 아무나 과학과 수학을 익힐 수는 없다. 그 소명의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이다. 우리는 과학자의 과학 활동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과학자가 생존에 급급하여 금융 자본가의 하수인이 되면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나라 안에서 부정과 불의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애쓰는 자라면 생명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진실하게 싸우는 사람이 잠시나마 생명을 보존하려 한다면, 개인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라면 모르거니와 결코 공인으로서 행동할 것이 못됩니다."

이 문장이 가치를 갖고 있으려면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나라라는 것이 소수의 개체가 다수를 지배하는 식의 구조가 아니어야 하며(권력관계가 평등해야 하며), 둘째로 영웅의 헌신이 다수의 행복과 직결되는 일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국가 단위의 이기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 가지 전제를 떠받드는 국가를 만들 수가 없으므로, 이 문장은 결국 아름답기만 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다. 안중근 의사 부류와 파시즘 부류이다. 광기와 의사는 한 끗 차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인주의, 쾌락주의, 자유주의의 이유를 들어 이 문장을 배격하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통짜로 빌려오겠다.

"나에게는 다이몬의 예언이 지금까지 종종 있었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옳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반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는 재앙 중에서도 가장 큰 재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 세상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몬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까닭이 있을 겁니다."

"나는 죽음을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란 완전히 무로 돌아가는 것(파르메니데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생각, epistemology의 주), 또는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영혼이 이 세상에서 저승으로 주소를 옮기듯이 옮겨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의 생각, 아마추어 주). 만일 무로 돌아가서 모든 감각이 사라진다면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든 것이나 다름없을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죽음이란 큰 소득이라고 하겠습니다.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든 밤을 골라서 자기 생애의 다른 밤과 비교해 본다면, 그런 밤보다 더 즐거운 낮과 밤이 자기 생애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리고 만일 죽음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저승으로 가는 여정과 같은 것이라면, 그리하여 전설에서처럼 죽는 사람은 누구나 그곳으로 가는 것이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만일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우스와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모두 만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리 많은 벌금을 내더라도 서슴지 않고 나서려는 사람이 많을 줄 압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처럼 저 세상 사람들도 두루 살피면서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고, 또 어떤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인가를 검토하면서, 어떤 사람은 정말로 지혜롭고, 어떤 사람은 지혜롭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음에 대하여 좋은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을 동안이나 죽은 후에도 나쁜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신께서 보살펴 준다는 것을 진실로 명심해 두어야 합니다."

"나는 사형장으로 죽으러가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신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E. 결론

나는 플라톤의 저작 중 이 대화편이 가장 좋다. 크로체의 격언이 떠오른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우리 인간에게는 연결성이 있다(아니 모든 생명, 모든 우주에 연결성이 있다). 우리는 플라톤을, 소크라테스를 같은 인간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사실 진실로 핵심적인 말은 그리 많지 않은데 우리는 수없이 많은 쓸모없는 지혜를 채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고전의 대가가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진리다.

덧붙이기 : 인용구 안의 출처가 없는 문장은 모두 <문예출판사>에서 발행한 『소크라테스의 변명』(황문수 역)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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