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1%의 사람들_ 내추럴 와인 생산자

in kr-writing •  7 years ago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을 만드는 19인의 양조가들이 그들인데요. 이들의 방한은,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는 '내추럴 와인 운동'이 마침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매우 뜻깊습니다.

이들과 2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면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왕 마시는 와인, 세상을 보살피는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만든 것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더군요.

아래 이어지는 글은 WineOK.com에 게재한 이들과의 대화 내용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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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와인의 대부분은 일정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첨가제나 기술을 사용한다(편의상 이 글에서는 ‘상업 와인’이라 칭하기로 함). 이들 상업 와인은 어떤 환경에서 마시던 간에 맛에 큰 변화가 없으며, 규격화된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품질을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좋은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의 구분이 쉽다.

하지만 첨가제나 첨단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때로는 원시적이기까지 한) 방식으로 만드는 내추럴 와인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 와인은 생산자, 상인, 소비자가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매우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한다. 상업 와인과 달리, 외부의 충격이나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인위적인 방어기제가 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내추럴 와인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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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내추럴 와인 페스티벌 <살롱 오, Salon O>에 참가하기 위해 유수의 내추럴 와인생산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Vinofeel의 최영선 대표(아래 사진)는 한국에 내추럴 와인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내추럴 와인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어요.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밤새 내추럴 와인을 마신 적이 있는데 다음날 겪을 숙취가 은근 걱정되더군요. 그런데 왠걸요. 그렇게 마시고도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놀랬습니다. 이 때 ‘아, 이런 와인도 있구나! 내가 발굴해서 소개해야 할 와인은 바로 내추럴 와인이다!’ 하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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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은 수년 전 파리, 런던, 뉴욕, 도쿄 같은 대도시의 와인 애호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지금은 하나의 와인 카테고리로 자리를 굳혔다. 내추럴 와인만 다루는 레스토랑, 와인 바들이 늘고 있으며 슈퍼마켓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붐이 서서히 일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내추럴 와인 페스티벌 <살롱 오>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하는 <살롱 오>에 참여한 내추럴 와인생산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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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추럴 와인 양조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나?

사실 인류가 각종 화학 물질과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내추럴한 방식으로 생산됐었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이 모든 산업의 목표가 된 이후로 우리는 자연을 희생시키면서 대량 생산을 추구했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와인 양조 분야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로 ‘자연주의 와인 양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쥘 쇼베(Jules Chauvet, 1907-1989)를 들 수 있다. 그가 제안한 자연주의 농법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와인생산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관련기사: “Jules Chauvet, Marcel Lapierre 그리고 Philippe Pacalet에 이르기까지_자연주의 한 길을 가다” (https://goo.gl/RByrhF)

■ 내추럴 와인은 상업 와인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방식이다. 상업 와인은 포도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규격화된 맛과 품질을 낼 수 있다. 이미 정해진 일련의 매뉴얼(첨가제, 기술 등)에 따라 부족한 부분(알코올, 산도, 당도, 타닌, 맛, 향)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도를 어떻게 재배하고 포도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 하는 부분은 종종 간과된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밭의 생태계를 유지, 관리하고 포도나무를 가꾸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수 백, 수 천 개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포도밭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양조 과정에는 절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거나 간섭을 최소화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포도를 발효하거나 와인을 병입할 때 (박테리아의 번식과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이산화황을 넣지 않는 식이다. 극단적인 경우, 이산화황을 넣지 않으면 와인이 병 안에서 다시 발효를 일으키거나 산화되어 식초로 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이유는?

우리들 중에는 몇 백 년에 걸쳐 대대로 내추럴 와인을 만들어 온 이들도 있다. 한때 이들은 대량생산과 상업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폐해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지금 그들이 지켜온 전통과 신념은 존중 받고 빛을 발하고 있다. 와인생산자로써, 우리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환경과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분은 우리를 박애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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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은 우리 삶과 똑같아요. 절대적이지 않고 변화무쌍하죠. 그래서 내추럴 와인을 대할 때에는 인내심과 참을성이 요구되요.”

대화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내추럴 와인의 맛과 품질에 대한 질문이 여러 차례 던져졌다. 이들 내추럴 와인생산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추럴 와인은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일정한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내추럴 와인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삶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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