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선생님 두 분의 부고를 거의 동시에 접하게 되었다.
사실 살면서 직접 만난 사람들 중 내가 진짜 스승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땐 학교가 너무 싫어서 빨리 졸업하기만을 바랐을 뿐이고, 특히 어지간한 선생들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나는 크면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일종의 반면 교사의 역할을 했고 그것은 대학교에 와서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 속 가상 인물들이거나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들, 혹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실질적으로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부고 소식을 접한 두 분도 직접적으로 아는 분은 아니지만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이지만 단순히 학문의 내용 뿐만 아니라 사유의 방식을 확장시키는데 많은 자극을 주었고 또 한 명의 학자로서,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하며 현명하게 나이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본받고 싶은 점들이 많아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스승으로 여기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쉽게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더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나이 들어 꼰대 소리만 안 들어도 성공일만큼 '현명한 어른'이 얼마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판타지인지 쉽게 체감한다.
이렇게 우리의 기대를 번번이 저버리는 세상 속에서 모든 어른이 그런 것은 아니다고,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존경할 수 있는 스승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분들이고 그렇기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겨둔다. 이들이 잊혀지지 않게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존경했던 남겨진 자들을 몫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스승은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로 유명한 황현산 선생이다.
암이 발견되어 투병을 위해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서 자진 사퇴하기 전까지 정말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글을 쓰시고 또 여러 프랑스 문학들을 소개하고 번역하시는 작업을 해오셨다. 많은 업적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에겐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들로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나 역시 선생의 칼럼들을 읽으며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도전을 많이 받았다. 또한 선생은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여 대중들과 소통을 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플랫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던 모습은 그를 더욱 더 친근한 이미지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트위터의 특성상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쉽고, 또 실제로 가끔 오해를 살법한 발언들도 간혹 한 것도 사실이지만 트인낭 수많은 지식인 셀럽들이 트위터를 통해 흑화된 점을 감안했을 때 꽤 오랜 기간 트위터에서 활동했음에도 기억에 크게 남을만한 흑역사가 없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꽤 존경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식으로 등단을 한 적이 없음에도 사회 문화 현상에 대한 시의적절한 코멘트와 깊은 통찰력을 뛰어난 논리와 유려한 언어로 풀어 쓴 그의 글들을 앞으로 더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슬프다.
아래는 한겨레에서 그를 추모하며 그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들을 추려 올린 기사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6741.html
두 번째 스승은 비교적 덜 대중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 예상하는데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및 인지과학협동과정 명예교수였던 이정모 선생이다.
한국의 1세대 인지심리학자로 한국의 인지심리학/인지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시기에 한 때 심리학, 그 중에서도 인지신경과학에 관심이 있어 대학원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에 나에게는 학문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인지심리학에 관한 데이터 아카이빙을 위한 홈페이지를 운영하셨는데, 이는 인지심리학의 대중화(사실 대중화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와 타 분야와의 융합에 대해 열정을 보이셨다.
어쩔 땐 과하게 인지 환원주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학문을 대하는 순수한 열정과 진지함, 그리고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당신보다 훨씬 어린 학생들에게도 허심탄회하게 배우고자 먼저 다가서고 먼저 활발히 교류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던 열린 자세는 교수라는 타이틀에 목매어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트렌드를 쫓다 못해 거짓 학회에까지 뻔뻔히 논문을 투고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학계에서 학자는 어때야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처럼 느껴졌다.
선생께서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시면서 온라인 활동도 못하게 되실 무렵 거의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남기신 글은 몇 년 전 처음 그 글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교수 생활하면서 깨달은 것은
- 내 것이(지식, 자료) 없다. 모든 것은 선대들의 노력에 기초한 것이다.
2,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였습니다.
제 사이트에 올려진 [모든 것을], [아무때나] [자유롭게] 공유하세요,
출처: https://www.facebook.com/metapsy/posts/10204046785756445
뉴튼이 했다고 추정되는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는 말이 떠오르는 말인데 사실 나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올라 서 있는 곳은 몇몇 '거인'의 어깨가 아니라 수많은 '보통 사람'들 위라고 생각한다. 학문은, 특히 그 중에서도 과학은, 슈퍼스타 한 두명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개인적으로 조금은 더 특별한 스승들이었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이 곳에 두서 없는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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