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런 생각을 잘 안 하지만 한 때 끼니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딱히 엄청난 우울감이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죽어야겠다고 소리친 것도 아니고, 세상살이가 허무하다는 자조 때문에 자살을 꿈꿨던 것도 아니다. 뭔가 아무 색깔 없는 어떤 체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줄곧 죽음을 생각했다. 진짜 죽음을 목도하기 전까지 나는, 죽음이 내게 구원이 되리라 믿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것이다. 시험을 망치고 속상했던 나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그 말은 빈껍데기에 가까웠다. 어떤 자극적인 말이 내 좌절감을 가장 잘 가다듬어줄까 무의식적으로 찾아 헤맨 듯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마음이 새가슴이라 죽고 싶다는 구절을 핸드폰에 적어 엄마에게 보여줬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그런 건 상관없다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물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집밖으로 나가버렸지만.
지금 나이 먹어 생각해보면 엄마의 상심도 컸던 것 같다. 별 문제 없이 알아서 잘 크던 애가 갑자기 ‘죽음’에 대해 말했다. 내 아이만은 안 그럴 것 같던, 삶의 맹목적 그림자가 언뜻 보이며 그녀는 자기가 지켜본 죽음의 현장들을 떠올렸겠지. 장례식, 흰 천, 하관, 화장. 어린 나에게 막연한 도구에 불과한 그 말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이미지일 수 있다는 걸 그 땐 몰랐다. 그저 내 상심을 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진짜 마음, 그걸 포착하기엔 이기적일 나이였다.
집이 텅 빈 후에 나는 가만히 앉아 철철 울면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막상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순진했으면서 나는 그 당시에 필사적으로 내 존재를 지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나 순수했던지, 탁 숨이 끊기면 내 몸뚱이도 자연히 스르륵 사라질 줄 알았나보다.
그나마 얼핏 영화에서 본 장면을 본 따 의자에 줄을 묶었다. 목에 감았다. 몸의 힘을 풀었다. 숨이 멎었다. 순간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섰다. 무엇인지 모르는 죽음마저 해내지 못한 패배감에 아이는 온종일 장롱 속에 있었다. 그 아찔함까지, 거기에 지고만 자기 자신까지 어둠이 묻어주기를 바라며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미디어가 자살을 상세히 묘사할 때 어떤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에도 끊임없이 죽을 생각을 했다. 신호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버스에 치이면 안 아플까, 교실에 혼자 앉아있으면 선풍기에 줄을 매달까, 옥상에 있을 때면 한 순간의 낙하쯤이야, 그런 상상을 했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잠간 숨이 멎은 그 때를 또렷이 기억했고, 나는 지나치게 비겁했다. 그저 행동으로 존재하지 못한 채 유령처럼 내 뱃속 어디쯤을 떠도는 외로움은 곧잘 죽음이 답이라고 느꼈다. 학교에서 상을 받고, 성적이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행복한’ 삶을 살아도 내게 허락된 비빌 언덕은 영영 없는 듯했다.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떠올리지 않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은 후, 정확히는 몇 차례의 장례를 치른 후였다. 그제야 나는 죽는다는 게 뭔지 봤다. 병든 몸으로 흰 천에 둘러진다는 게, 죽음이 갉아먹은 얼굴에 분을 바른다는 게, 아무리 세차게 태워도 골반 뼈마저 으스러트리진 못한다는 게 눈 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호상이라고도 하고, 안도하기도 하는 복잡한 감정의 호우 속에서 받쳐 들 우산도 버거운 채 나는 흠뻑 시간을 맞고 있었다. 죽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신조차 줄 수 없는 구원이라 여겼던 자살을 포기하게 된 건 죽음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목도한 후였다. 난 아직 그 때 떠나간 영혼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슬프게도 우리나라는 정말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다. 내가 자살에 대한 미련을 버린 후에도 주변에서 종종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엄청 안타깝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이게 과연 자살(自殺)일까, 그런 의문을 품었다. 참 이상하지.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내가 '한 명의 인간'이라고 여겨지기 어려웠다.
교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 집에 홀로 있을 때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왜 나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버렸고, 쓸쓸함에 몸부림쳤을까. 온갖 관계의 홍수 속에서 인간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정작 혼자 있을 때 나라는 개체를 증명할 길은 없었던 걸까. 사람에 중독됐던, 무언가에 기대고 싶던 내가 만약 나 자신을 위로하는 일을 정신승리쯤으로 치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엄마의 부족함 내지 가난함에 베이지 않았을 텐데. 나 혼자 서있어도 괜찮을 수 있는 어떤 첨언이라도 들어봤다면 그런 넉넉함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이 우릴 휘두르는 걸까.
아버지는 어떻게 보면 좋은 스펙을 가졌다. 서울 4년제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다. 실적도 높았다. 아내와 자식을 둔 채 마당 있는 집에서 꽤나 ‘당당하게’ 살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늘 억눌린 그늘이 있었다. 그는 다소 예민했고, 내향적이었으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정작 그의 삶에 그는 없었다. 자식을 위해,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의 영혼은 저당 잡혔다. 자기가 쓸 판타지 소설에 대해 말하던 눈동자는 노쇠한 몸에 어울리지 않았다. 소년의 것이었다. 왜 그에게는 자기 이름 하나를 위해 사는 삶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그런 삶을 꿈만 꾸며 더불어 괴로워만 했는가.
이젠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쉬이 업신여기는 것들이 우리를 구원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량한 성취감이 큰 체념을 생각보다 손쉽게 막아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결과물에 침을 뱉을 때 ‘나레기’라는 말보다 ‘좆까’라는 말을 하는 것, 내가 조금 내향적이라도 소소한 내 삶을 꾸려가는 것, 그게 공인 인증된 ‘행복’과 거리가 멀어도 어차피 내게 챙겨줄 것 같은 그들은 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프렌즈팝으로 레벨을 올리거나 굵은 고전을 드디어 다 읽는 것 같은 별 볼일 없는 저항이 어떤 높은 이상이나 뛰어난 능력보다 우릴 더 수월하게 구원할 수 있다.
내가 작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번 수학시험 90점을 넘기다가 처음 60점이 나왔을 때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내 헛헛한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나는 꽤나 외로움을 느꼈다. 서울대 와서 멋대로 사는 걸 걱정하는 어른들 덕분에 평소에 안 하던 진로 고민을 꾸역꾸역 해놓아야 했다. 내 삶을 재단하는 수많은 욕망, 나아가 내가 나에게 종용하는 여러 욕망들. 우린 그게 이뤄져야 한다는 어떤 맹신이 있는 듯했고 그 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너무나 잔인해져야 했다. 내가 꿈꾸는 내일을 위해, 남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위해, 최소한 주변에 떳떳한 생활을 위해 나는 나의 오늘을 죽여 버렸다. 이건 자살인가, 타살인가, 누구의 소행인가.
훨씬 적극적인 체념이 날 에워쌌다. 기꺼이 생의 무력함을 껴안고서 거기에 축축하게 침잠하지도, 거룩하게 뛰쳐나가지도 않으리라는 배움이었다. 항상 바다의 수면 위에서 참방거리며 나는 슬프노라, 나는 힘드노라 발버둥을 쳤는데 그걸 놓고 더 깊은 곳으로, 난파선처럼 삶의 바닥까지 가닿을 준비를 한다. 그래서 쉬이 죽을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절대 희망하지 않고, 절망도 하지 않은 채 순간순간의 알량한 성취를 기꺼이 즐긴다. 더 열심히 멋진 삶에 대해 포기하며 나는 내가 굳이 작은 사람이라는 데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혹 누군가는 말하겠지. 청년인데, 아이를 낳을 여자인데, 나라의 미래인데, 그 무엇인데, 이렇게 맥아리 없이 포기해서 쓰겠냐고. "글쎄. 당신은 그동안 뭘 해왔는데?"
나는 근사함을 위해 복무하다가 끝나고 싶지 않다. 꿈을 꾸지만 이루기에 급급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죽지 않기로 했으니, 죽을 정도로 대단하지도 않으니. 아무 것도 해내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만큼의 삶과, 일과, 사랑을 한다. 내게는 그게 족하다. 아무도 내게 어떤 이유로 더 많고 성급한 방향을 제시할 수 없고, 그래선 안 될 것 같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사람이다. 우리 집의 자랑도, 나라의 희망도, 위대한 무엇도 아닌.
2015년에 대숲에 화라락 써서 올렸던 글.
그 후로 몇몇이 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중에는 내 가까운 친구, 먼 친구,
모르는 과 후배, 함께 성장해온 아이돌도 있었다.
모두가 동의하진 않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자살에서 '살아남는다'고 보는 편이다.
우울증, 강박증, 기피증, 분열증, 공황장애,
그 모든 상처의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매일 살아남고 있다. 모두가 그렇진 않아도
많은 이들이 그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는 반드시 관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인해 벌어질 수 있다고도 느낀다.
웃음이 눈물의 바늘땀이라는,
나름 오그리토그리한(?) 비유를 써왔는데
한땀 한땀마다 사람의 얼굴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이런 애통함을 나눠서라도 누군가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s. 맨 위의 영화 이미지는 '밀양',
맨 아래 글귀는 시인 박준의 시집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즐건운 하루되시길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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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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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킴님 아름다운 꿈을 꾸시는군요. 지워짐이라는 가장 황홀한......
그러기 위해 저는 오늘도 저의 캔바스를 채워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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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짐이라는 꿈이라니 멋진 표현이네요!_ 저도 오늘 하루 어찌저찌 채워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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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쓰신것 같아요.
감명깊게 잘읽었습니다.
팔로우 할게요. 보팅을 했지만 너무 적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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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신것만으로 감사하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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