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 대한 고찰 #3] "남자 잡아먹는 년"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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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잡아먹는 년."

내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내 동생이 죽었을 때다. 쌍둥이로 태어난 우린 둘 다 허약했는데, 이상하게도 평소에 더 비실대던 나는 죽지 못했다. 동생은, 한사코 죽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버렸다. 할머니는 동생이 누운 채 눈 감은 그 순간 내 뺨을 때렸다. 나는, 동생을 잡아먹은 년이었다.

하필 그 얘기를 남편 장례식장에서 또 듣게 된 것도 우스울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사랑하는 그 이가 죽기를 바란 적이 없었는데 검게 칠해진 공간 속에서 나는 어느새 자기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가 돼있었다. 시어머니는 분에 겨워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하긴 기가 찰 노릇이겠지. 댓바람에 갑자기 아들이 차에 입맞춰 저세상 사람이 될 줄 알았겠는가.

그게 차라리 내 탓이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멍하니 사흘을 보내는 동안 내게 붙여진 그 칭호가 주홍색으로 빛바래는 듯했다. 차라리 이 사태들이 다 내 잘못이라서 생긴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 하나 죄된 몸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그런 안일한 상념에 빠진 찰나 나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남자들을 불구덩이에 넣고 있었다. 단단한 골반뼈는 불에도 다 타지 못했다.

죄인의 상이 있는 셈 치고 그렇게 살기를 몇 년, 어떤 것도 그리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 낯은 메말라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내가 내 비어있는 삶에 자꾸만 뭐라도 꾸겨넣으려 노력한 까닭에 그들이 죽은 것이라면 앞으로 내 삶,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무엇을 미워하는 것조차 바라지 않고 숨 죽여 또다시, 누군가 잡아먹었다는 누명을 쓰지 않도록.

"어쩌다보니 그렇게 살아왔네요."
"아줌마도 참 피곤해요."
"성미가 그런 걸 어쩌겠어요."
"차 때문이건, 병 때문이건 어쨌든 아줌마가 사주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에 이유를 얻고 싶어요. 필사적이죠."
"아줌마도 그 이유로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온 거군."

주중에 네 번, 점심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청소를 할 때 바깥어른 방은 늘 주의사항이었다. 뭐, 말이 바깥어른이지 사실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는, 오히려 나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남자였지만. 두 사람 다 돈을 잘 버는 모양인지 버젓한 집이 있었고, 그 집은 늘 텅텅 비어있었다. 가끔 남자가 운이 맞아 일찍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는 정도였다.

서로 말을 트게 된 것도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항상 먹을 걸 방에 가져다 달라던 그였는데 웬일로 그 날은 식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방에 계실 줄 알았다는 내 한 마디에도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아줌마, 저녁은 미역국이 좋겠다고 말했다. 말하는 뽐새하곤. 방 치우는 것에 유난히 예민하더니 역시나는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혼자 밥 먹느라 고생했어요."

바깥어른은 아주 가끔 쓸쓸한 눈매를 지었다. 주로 아내가 오랜만에 집에 왔을 때였다. 둘은 딱히 서로의 생활을 건드리지 않는 듯했지만 여자쪽이 남자보다 훨씬 그걸 수월하게 보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씻은 듯 지워졌던 그 눈매가 아내 옆에서는 자연스레 서렸다. 내게 혼자 밥 먹느라 고생했다는 엉뚱한 말을 남기는 의도를 더욱 알 수 없었다.

"여부가 있겠어요."
"말 편히 하세요."
"그래도 고용인에 피고용인인데, 존대야 하죠."
"매번 이렇게 일을 혼자 해요?"

그렇게 몇 마디를 섞자는 것이 오늘까지도 종종 몇 마디를 나누는 저녁식사로 이어졌다. 습관이란 게 이상해서 처음에는 어색하던 이 자리가 이젠 아니 부르면 기웃거리게 되는 시간이 됐다. 변덕도 심해서 남자는 꼭 아내가 집에 들렀다 출장 가버리는 다음 날에는 잘 봬지 않았다. 요며칠 안주인이 집에 오래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코빼기도 소식이 없다가 오늘에야 와서 오간 대화가 고작 내 옛날 얘기였다.

"뭐, 그래도 살아야지 않겠어요. 외로워도, 지쳐도 그냥 사나보다 해야지."
"아줌마는 상관없나보네요."
"뭐가요."
"그런 거요. 마치 선처럼 사랑하는 거."

종종 못 알아듣도록 그는 꼭 묘하게 말을 하곤 했다. 이게 중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상징, 은유, 뭐 이런 비스무리한 것 같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서로 여러 날 이런저런 얘기를 한 이후 바깥어른은 종종 '점처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아직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어떡해서든 전기세를 아끼려 할 때마다 그는 '선처럼' 사랑하지 말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고민해도 어차피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점처럼 사랑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기껏 하는 대답이 '죄라는 건 없다' 혼잣말이었다.

나는 아직 그의 삶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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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쮼 #3편

빙글에 올렸다가 나름 '베스트 게시글'이 됐던 콘텐츠네요:)
"남자 잡아먹는 년"이라는 말은 무슨 TV 시리즈에서 들었던 듯..

뒤죽박죽으로 써놨더니 하나하나가 단일한 글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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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근데 처음 도입부는 쌈쌈했는디
내 이해도가 무인도라 그런지
읽고나니 머리가 아프네.
점과 선이라...

저도 막상 써놓고 앞으로 어찌 전개할지 고민이긴 하네요ㅎㅎ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음....필사연습하게 복사해 갑니다 ㅋㅋㅋ

헛 네넵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