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을 가장 포기하고 싶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in kr •  7 years ago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도바울의 가장 큰 적은 고난도, 박해도, 육체의 가시도 아닌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길목'이 아니었을까?

다섯 차례에 걸친 바울의 전도 여행 루트를 지도로 접하면 누구든 놀라게 된다.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거리를 걸어다녔다. 추정에 따르면 바울이 평생 전도를 위해 걸었던 길은 17,000 키로미터 정도라고 한다. 마침 이 거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예를 발견했는데, 북한에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까지의 거리다. (북한의 미사일이 어디까지 도달한 것인지는 꽤 중요 이슈이기에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의 여객기로도 13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당시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라 해봐야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사도 시절에 말을 타고 다녔을 것 같진 않고, 웬만해서는 걸어다녔을 것 같다.

바울은 이 먼 거리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록이 없으니 그저 상상력을 동원해 볼 뿐이다. 하염없이 걷는 길목에선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까마득한 길을 지겹도록 걷고 또 걸었을 뿐이다. "도대체 내가 뭘 위해서 이러고 있는거지?" 하는 회의감이 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거리였다.

사실 바울은 박해를 받을수록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감옥에서 찬양을 부르며, 재판의 자리를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회로 활용하는 배짱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심지어 육체의 가시마저 감사로 받을 줄 아는, 그야말로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초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바울에게도 일상적 단조로움이라는 적은 보통 놈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바울이 사역을 중도 포기하고 싶었던 유일한 시간이 있었다면, 아마도 길을 걷는 도중이지 않았을까?

단조로움에서 오는 공허감은 사단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애용하는 무기다. 박해가 대포라면 일상은 기관총이나 마찬가지다. 한 발의 위력은 약해도, 쌓이면 대포보다 더 많은 살상을 가능케 하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기관총 아니던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의 단조로움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 모른다. 활활 타오르던 비전과 소명도 금새 치기 어리던 시절의 추억으로 사라져버린다. 그 빈 자리엔 예전보다 생기없는 몸뚱아리와 도대체 나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공허한 의문만 남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체로 바울이 걷던 도상과 같다. 복음의 열정에 푹 젖어, 죽기 살기로 사역하며 나름의 열매도 맛보던 기억들은 옛 일이다. 간극에서 오는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만을 찾고 또 찾는다. 그러다 세상과는 단절되고, 교회에서도 채워짐을 잃게 된다. 그러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공허함과 무력감에 완전히 나가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무력감은 구약 선지자의 대표격이자 미라클 워커였던 엘리야조차 쉽게 극복하지 못했던 강적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사명을 끝내지 않았다. 바울 또한 길거리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겠지만, 결국 긴 제자도의 삶을 완주하는데 성공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의 사명만을 위해 끝 없이 전진하던 바울.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답은 하나 밖에 없다. 그는 복음으로부터의 위로와 공급을 계속해서 받았던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를 계속해서 곱씹으며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래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심지어 무의미함이나 평범함마저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내지 못했다.

"결국 우리 힘으론 할 수 없다"라는 교회 어른들의 지겨운 격언이 답처럼 느껴진다. 한 살 더 먹을수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완주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움을 깨닫는다. 이 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결국 복음을 통한 공급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예수의, 예수에 의한, 예수를 위한 사역을 원한다. 사역을 위한 사역은 패망의 길이다. Ad Fontes,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

전도여행.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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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그는 복음으로부터의 위로와 공급을 계속해서 받았던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부활하신 예수를 계속해서 곱씹으며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래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심지어 무의미함이나 평범함마저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내지 못했다."

끊임없는 위로와 공급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유한한 것들로부터 올 수 있을지는 회의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에는 어떤 초월적인 무한한 힘이 있는가봅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글의 핵심을 파악하셨네요.

위로부터 각양 좋은 것들을 쉼 없이 공급받아 푯대를 향해 중단 없는 전진 계속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