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이야기(그알싫 2018년 1월 11일 방송분)

in kr •  7 years ago  (edited)

1월 11일 방송되었던 xsfm 그것은 알기 싫다의 Doomsayer pilot편, 모래 이야기 원고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7585


작년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일은 본인을 최고 존엄이라고 생각하셨던 분을 우리가 끌어내렸죠. 그리고 원래 위치였을 서울구치소 503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드렸습니다. 절대권력의 목을 쳐본 경험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쁜 일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게 제가 책을 쓰고 그걸 다시 개정하는 이유가 되었던 문제였죠.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가장 화가 났던 문제는, 아마 많은 분들도 비슷하실 겁니다. 사과 회사가 주력 상품 중에 하나인 어른폰을 오래쓰지 못하도록 설계해놨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중형 냉장고 한 대 가격인 제품을 사면 땡이소 제품 수준을 생각하진 않잖아요? 보통 오래쓰길 바라잖아요. 냉장고나 TV를 2~3년 주기로 바꾸는 분들은 거의 없지 않나요? 이 기대를 세계적 기업이 배신한거죠.

사실 일찍부터 그런 혐의가 있긴 했습니다. 제가 사과 회사의 각막 랩탑을 2012년부터 쓰고 있는데, 그동안 얘 아답터를 두 번 바꿨습니다. 그것도 한 번은 이 원고 쓰는 와중에 나갔습니다. 얘네 아답터요, 아답터 주제에 10만원짜리입니다. 이런 식의 소소한 교체비용들이 발생하는데, 이게 저만 그런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며칠 화를 내고 나니 현자타임이 오더군요. 생각해보니 옛날에 비싸게 만들어서 물건 팔던 회사들 치고 살아남은 곳들이 없더라구요. 한 번 사면 3대가 쓰는 물건을 만들면 그 회사는 문을 닫더라는거죠. 독일의 가전제품 만들던 그룬디히 같은 곳은 10년 전에 문 닫았죠.

세상이 땡이소처럼 대충 쓰고 버리는 물건을 계속 만들어내고 소비하지 않으면 망하는 세상이 된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거죠. 뭐 그게 자본주의기도 하죠. 문제는 뭐든 쓰고 버리는 물건들을 계속 만들고 있으면 우리가 공기처럼 넘치는 자원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라진다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모래가 그렇습니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 자원을 활용할 방법을 찾습니다. 싼걸로 부가가치가 큰 걸 만들어야 돈을 벌죠. 모래도 많은 곳에서 활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건설과 토목에선 시멘트, 모래, 자갈을 섞어서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쓰고 있죠. 이 현장에서 가장 선호했던 것은 강에서 퍼올린 모래였습니다.

바다 모래는 소금기를 완전히 없애지 않으면 철근을 녹슬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이 강 모래, 건설현장에서 없어진지 이미 10년이 되어갑니다. 강 모래는 자갈 같은 것들이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잘게 쪼개져서 만들어집니다. 강물이 계속 흘러서 바다까지 가야 그 하류 지역에 모래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강이 그냥 흘러내리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홍수를 막기 위해서든, 전기 발전을 위해서든 인간들은 댐을 쌓아왔거든요. 그리곤 어마어마하게 파서 쓰기 시작했죠. 알 자지라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중에 모래전쟁, Sand War라는 제목의 다큐가 있었습니다.

이 다큐에 따르면 미국엔 독립전쟁 이후부터 매년 댐을 하나씩 만든 것과 비슷한 숫자의 댐을 만들어왔다고 합니다. 중국도 만만치 않죠. 전세계적으로 모래가 생성되는 과정을 막아놓고 어마무식하게 썼으니 모래가 무역상품이 된지 꽤 오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게 하나 있습니다. 모래무역의 큰 손님 중에 한 분이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UAE)라는 겁니다. 최근에 핫한 거기 말입니다. 좀 깨지 않나요? 영화 미션 임파시블의 고스트 프로토콜 편에 두바이가 나오잖아요? 사막에서 불어오는 어마어마한 모래 폭풍 장면 기억하시죠? 사막에 깔린게 모래인데 그 모래는 안 쓰고 왜 수입을 했던걸까요?

사막 다큐멘터리에서도 종종 나오는 장면입니다만, 사막에선 바람 때문에 계속 모래가 흐릅니다. 바람에 날려 계속 구르기 때문에 사막의 모래는 너무 가볍고 또 마모가 심해서 결합이 안됩니다. 자갈과 시멘트를 섞어도 흘러내립니다. 콘크리트로 쓸 수가 없는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무역 상품으로 사고 팔고 있는 모래도 바다 모래라는 겁니다. 이 바다 모래도 해안가에서 채취하는 것은 이미 거의 다 썼습니다. 바다 밑에서 퍼올립니다. 거대한 진공청소기 비슷한 것이 달려 있는 배가 지나가면서 모래를 채취하지요. 이 과정은 눈을 감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그냥 퍼올리는거죠. 그러면 그게 모래만 퍼올릴까요? 바다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터전도 박살내지 않고선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어민들과 모래 채취업자들간에 분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모래를 갖고 산을 한번 만들어보세요. 그 다음에 밑부분을 계속 파보세요. 바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전세계에서 바다속 모래를 긁어올리다보니 해변의 모래들이 계속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요, 싱가폴에서 초고층 빌딩들이 계속 들어서는 동안 인도네시아에선 섬 스물 다섯개가 없어졌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때문에 고급 신혼여행지로 인기있는 몰디브도 해안선이 왕창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기다 모래의 특성을 인간들이 무시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모래밭은 충격을 흡수합니다. 바다의 파도는 상당한 에너지를 해변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낮과 밤이 바뀔때 바람의 방향도 바뀌기 때문에 해변가의 모래는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해안가를 따라 고층 빌딩을 만들게 되면 파도의 에너지가 바로 반사되게 됩니다. 그 결과로 모래는 더 많이 쓸려 내려가게 되죠.

자, 인류는 모래가 만들어지는 길을 댐으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모래가 없어지는 방법으로 모래를 채취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인구 겁나게 많은 인도와 중국이 경제발전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을 만들고 또 어마어마한 규모의 토목공사들도 하고 있죠 있죠.

이 속도로 달리면 곧 모래가 없어진 세상에서 살게 될 겁니다. 이거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대형 건설사나 토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왜 계속 모래를 쓰고 있는걸까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우리가 모래를 이렇게 써왔던 것은 모래가 쌌기 때문입니다. 요즘 모래 판매 가격은 1입방미터에 1만원에서 1만2천원 사이입니다. 15톤 트럭이면 약 15만원어치를 싣을 수 있고, 24톤 트럭이면 24만원어치를 싣을 수 있습니다. 하루 운송비는 60만원 정도구요. 그런데 한국에서 큰 토목공사는 동남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하루 열번 정도 실어나르면 운송비용은 6만원 정도로 떨어집니다. 모래를 실어오는 곳이 멀면 멀 수록 모래는 비싸지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엔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를 쌓아둔 곳이 있어요. 경기도 여주의 4대강 적치장입니다. 무려 15톤 트럭 150만대 분량이며 1년 관리비만 60억원씩 나가요.

그런데 이 모래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래 가격을 결정짓는건 운송비인데, 여주에서 한반도의 동남권으로 이동하면 하루 한 번 밖에 못 가거든요. 그럼 15만원짜리를 60만원 써서 운반하는 꼴이 되는거죠. 단가 맞출 방법이 없는겁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걸립니다. 어떤 자원이 모자라면 재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실제로 건축현장에서도 재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순환골재라는 이름을 붙여서 말이죠. 심지어는 의무적으로 40%를 써야 한다는 법 규정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폐기물은 분리수거가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재활용 제품의 경제성이 결정됩니다.

대형 건축물이 아니라 소규모 건축물, 그러니까 빌라 같은 작은 건축물 철거현장에선 돈의 문제 때문에 분리수거가 잘 안됩니다. 사람을 더 많이 써야 분리수거가 잘 되겠죠? 그런데 사람 많이 쓰면 비용이 많이 올라가잖아요. 뭐 해법이 없는건 아닙니다.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폐기물 고형연료(Refuse Derived Fuel)이라는게 있습니다. 비닐부터 휴지에 이르는 생활 쓰레기들을 잘개 쪼겐 다음 압축해서 일정한 발열양을 가지는 연료로 만든 겁니다. 이거 만드는 기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섞여져 있는 쓰레기들을 밀도와 무게, 비중의 차이를 이용해 순식간에 분리시키거든요. 이런 거를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법체제에선 이거 개발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장치들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서 특허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공장 만들 수 없습니다. 실제로 돌려보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야 돌려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과정 없이 외국에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설 사왔다가 며칠 가동도 안 하고 버린 곳들 많거든요. 문제는 이런 폐기물을 다루는 시설은 실증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주민공청회를 통과해야 만들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폐기물 실증시설은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상용화 안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 펼쳐지거든요. 그거 허락한 지자체 장, 그 시설 가동하는 회사 대표 죽이라는 현수막부터 걸리죠. 거기다 건축폐기물은 다른 문제가 하나 더 걸립니다. 단단한 걸 깨야 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소음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골 마을로 가도 안된다는거에요.

이거뿐만 아니에요. 지금 조달청에선 각종 규정을 들어서 순환골재 쓰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2009년부터 재생 아스팔트 콘크리트 쓰는 것도 안 받아줬습니다.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40%를 쓰라고 해놓고 정부의 사주는 기관은 그걸 거부하고 있는거죠.

일반적으로 국제면은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관계들을 따져보면 모래 같이 흔한 것을 두고도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지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자,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요? 참고로 지금 정부는 큰바다에서 배로 모래채취하는 설비를 고민중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건 우리의 영해 안에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지역은 2015년 12월 31일까지 우리가 축산분뇨와 하수 오니를 해상투기해온 곳입니다. 해상투기를 해왔던 건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여기서 모래를 파 올리면 처리하지 못해서 투기한 폐기물이 다시 올라오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할 건가요?


뭐 유의미한 방송을 했다고 자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이후 모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해결보단 좀 먼 상태입니다.

지난 설날 통영 부모님 댁에 갔었을때 항상 그랬듯 다시마와 미역, 그리고 멸치를 사오려고 했는데요... 멸치를 사지 못했습니다. 2kg에 보통 1만5천원 정도 주고 사왔는데, 요즘은 3만5천원은 줘야 제가 원하는 품질의 멸치를 살 수 있더군요. 멸치 산란장 근처에서 열심히 모래채취를 했기 때문이라더군요. 더불어 쓰시마 섬의 한국쪽 해안의 모래가 줄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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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잘 들었습니다^^

오래된 것들은 하나씩 이렇게 올려보려고 합니다. 제가 상시 3개 국어 환경에서 살다보니 한국어가 안되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어서요. ㅠㅠ

모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 것 같애요.
어렸을 때가 생각나요. 큰 냇가에 모래도 많고 자갈, 큰 돌, 작은 돌, 바위까지 골고루 있었죠. 근처에 바다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냇가 모래랑 바다 모래는 많이 다르네요. 모래라도 굵기도 모양도 색도 다양했던 듯. 시멘트랑 왜 찰싹 붙는지 알 것 같애요. 가끔 피서객이 흘리고 간 동전도 있었고.. ^^ 글 읽고 나니까 지금은 없는 그 모래들이 참 그리워져요. 그러고보니 냇가에서 노는 것과 많이 멀어졌을 즈음 포크레인들이 모래를 파던 것이 생각났어요. 정말 잘 읽었어요. ^^

한국에 돌아왔던게 국민학교 졸업할 즈음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마포구 상수동에서 올챙이들을 잡을 수 있었다죠;;;;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세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