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각성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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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관운(官運)을 보자면 전라 좌수사로 부임하기 이전 그의 환로(宦路)는 평탄하지 못한 편이다. 이순신은 요즘 말로 ‘정치력’과는 담을 쌓았던 인물이었다.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줄을 닿을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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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이런 강직함은 관직 생활 초창기에 만났던 한 사람의 모범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나이 서른 둘에 무과에 급제한 뒤 함경도 삼수의 동구비보의 권관으로 임명된다. ‘삼수갑산’의 그 삼수에 여진족이 툭하면 출몰하는 압록강변의 요새를 지키는 군관이었다. 그즈음 함경 감사는 이후백이라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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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의 별명은 ‘곤장 감사’였다. 관할 고을과 요새를 돌아다니며 검열을 실시한 후 원칙에 어긋나거나 실수가 있으면 가차없이 곤장을 쳐서 얻은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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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곤장 감사는 부지런도 하셔서 삼수갑산을 마다않고 들이닥쳤다. 하지만 될성부른 떡잎은 역시 달라도 뭔가 달랐다. 관직 초년생 이순신의 근무 태도는 함경도 일대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매의 눈’ 이후백을 흡족하게 했던 것이다. 최전방 요새의 종 9품 권관 정도는 당연히 곤장대에 비끄러매리라 여겼던 감사의 수행원들은 동구비보 권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는 감사 앞에서 제 눈을 의심했다. “이게 어드렇게 된 일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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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고 유능한 이순신이었지만 깐깐한 감사의 눈이 까탈을 잡자면 무사할 리 없으리라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백은 껄껄 웃으며 술을 쳤다. 긴장이 좀 풀려서일까. 까마득한 상관에 나이도 삼촌뻘되는 이후백 감사에게 이순신은 에두르지 않고 직구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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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또의 형벌이 너무 엄하셔서, 변방 장수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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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맹랑하기까지 한 소리였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하면 될 일을...... 기껏 칭찬받은 걸 까먹을 수도 있는 스트레이트였다. 그러나 이후백은 이렇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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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말도 옳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엄하다 한들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그러겠는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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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란, 그리고 죄와 벌이란 그런 것이다. 추상같이 엄할 수 밖에 없다. 그 엄격함이 무뎌진다면 결국 법은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도 죄와 벌의 기준이 무너지면 세상은 그저 힘 있는 자의 놀이터가 되고 약한 사람들은 죽어 지낼 수 밖에 없다. 이후백은 그를 경계하여 수시로 곤장을 때렸으나 옳고 그름의 분별 없는 엄격함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아는 사람이었다. 무조건 두들겨 패고 보는 군대의 군기는 ‘똥군기’에 다름아니며 도무지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이 곤장을 맞으면 두 배로 아프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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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발포만호로 있을 때, 상관인 전라좌수사의 군졸들이 만호영에 와서 거문고 만들 오동나무를 베어가려고 하자 이를 막았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당시 전라좌수사 성박은 꽤 이를 갈았고 그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라도 됐는지 다음 전라좌수사 이용도 이순신을 영 고깝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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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관할 지역에 검열을 실시하면서 이탈자 수를 점검했는데 이순신의 발포에도 3명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는 군무이탈자가 훨씬 더 많았음에도 이용은 발포 만호영의 3명에 유독 시비를 걸었다. 탈영병은 분명히 있었으니 지휘관으로서 책임이 없다 할 수 없고 ‘법대로’ 하자면 처벌받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다면 다른 지휘관들도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벌은 죄 지은 만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은 그를 무시했다. 나아가 근무평점을 최하로 매겨 보고서를 올리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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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후일의 의병장으로 전라도 도사(都事)로 부임해 있던 ‘도끼’ 조헌이었다. 일본 사신의 목을 치든지 아니면 내 목을 치라며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리게 되는 이 열혈한이 이용의 시도를 가로막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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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뭡니까. 아니 다른 진영은 더한데 왜 이순신만 가지고 이래요. 탈영병이 발포에만 있었어요? 3명이 있었던 건 사실 아니냐고? 어허 좌수사 영감. 녹도만호영은 몇 명이고 방답진은 몇 명인데 이러시오. 다른 장수들을 그의 아래에 둬도 시원찮은데 그를 도리어 나쁘게 평정한다고? 법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결국 이용의 시도는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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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을 운용하고 집행하는 자가 고의를 품고 누군가를 해하려 들면 도리가 없다. 이용은 그래도 어마 뜨거라 자신의 허물을 뒤집었고 후일 이순신을 인정하게 됐지만, 이순신 관직 생활 최대의 상극은 따로 있었다. 서익이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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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함경도 동구비보에서 돌아와 서울의 훈련원 봉사로 일하게 될 때 서익은 병조정랑으로 이순신의 상관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척을 규정을 무시하고 승진시켜 달라는 요구를 해 왔다. 이순신은 이를 딱 잘라 거절해 버린다. “누군가 부당하게 승진하면 누군가 부당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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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익은 이에 큰 앙심을 품는다. 결국 이순신은 훈련원 봉사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도 뭐 밟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또 하나의 사단이 발생한다. 이순신이 발포만호로서 전라좌수사 성박, 이용과 승강이를 벌이고 근무평정이 나쁘니 어쩌니 하며 골머리를 앓을 즈음 서익이 변방의 군기물을 감찰하는 군기경차관(軍器敬差官)으로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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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의 눈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것도 보게 만드는 아르고스의 눈으로 서류를 뒤지고 발포를 들쑤셔 발포 만호영 상태가 형편없다는 보고를 올려 버렸다. 법은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들에 의해 사유화되고 악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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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비보 권관 이순신을 긴장시켰던 이후백의 법도 법이었고, 다른 지역의 형편은 무시하고 이순신의 발포 만호영의 군무이탈자만 부각시켰던 이용의 법도 법이었으며 은근슬쩍 법도 무시하고 자기 인척 승진시키려다 낭패를 본 포한을 질 낮게 풀어버린 서익의 법도 법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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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백에게는 법 집행의 원칙이 있었고 이용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 앞에서 꼬리를 내리는 염치가 있었으나 서익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고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이를 찍어내는 수단으로 법을 악용했을 뿐이고, 그 특권을 휘둘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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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돼서 ‘그래 누가 이순신이라는 거냐?’고 팔뚝 걷어붙일 분들이 있겠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나는 누가 이순신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누굴 빗댈 의사도 없다. 단지 이 나라에서 법을 다루고 죄를 따지고 형벌을 판단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법조인들이 누구를 닮아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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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분립을 근간으로 삼는 나라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고 국가가 인정한 기소독점권을 행사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하는 것은 지당한 명제를 넘어 지상명제에 가깝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발끈 고개가 저어지는 이유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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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법조인들은 이후백처러 엄격함 이전에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알았던가? 대한민국의 질풍노도같은 현대사에서 유독 반성도, 청산도, 처벌도 극히 미미했던 사법부는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전라좌수사 이용만한 염치라도 부린 적이 있었던가? “법대로”라는 칼이자 방패만 앞세우면서, 저 병조정랑 서익처럼 자신에게 거스르는 인간들에게는 엄중한 처벌을, 자신들의 전관(前官)이나 ‘연수원 동기’나 ‘권력의 손길’ 앞에서는 넉넉한 관대함을 보여 주지는 않았던가?
대법원장이 거짓말로 신의를 잃은 것은 참으로 안된 일이다. 하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무죄’를 받았을망정 권력에 빌붙어 판사로서는 해서는 안될 짓들을 하고 다녔고 ‘위헌적 행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간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최고 수장의 ‘거짓말’을 밝히겠다고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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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이들이 ‘사법부 독립과 존중’의 상징이 되는 현실이 더 우스운 것이다. 이쯤 되면 그들의 독립이란 홀로 선다는 독립이 아니라 독기를 머금고 버티는 독립(毒立)일 따름이고 그러면서 자신들에 대한 ‘존중’을 얘기하는 것은 존중(尊仲), 즉 백 살 먹은 쥐새끼를 존중해 달라는 억지일 따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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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중종 임금은 경상좌병사로 나가는 황형에게 이런 유시를 내린다. “전권으로 위임하여 성공하기를 권하는 것은 임금의 일이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힘을 다하여 보답하는 것은 신하의 직분이다. 전권으로 맡기지 아니하고 책임 지우기를 중히 하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일만 실패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임금의 허물이거니와, 위임하기를 중히 하고 맡기기를 전권으로 하는데도 감히 법도에 어긋나거나 국법을 범하여 그 직무를 실패하게 된다면 견책(譴責)하는 법이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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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군주국이고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니 여기에서 ‘임금’을 ‘국민으로 바꿔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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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전권을 주고 그 양심에 따른 합리적 판결을 수용하는 것은 국민의 일이요, 법률을 공정히 집행하고 억울한 이 없도록 힘을 다하는 것은 사법부의 직분이다.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판결만 원한다면 국민의 허물이겠거니와 수십 년 ’신성 가족‘의 특권을 유지하면서도 감히 법도에 어긋나거나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법은 과연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