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선생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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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이라 여겼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10월 26일은 여러 사람에게 다양하게 기억된다. 감옥에서 만세를 부른 이도 있었고 어젯밤까지 두들겨 패던 학생에게 설렁탕 먹이며 “세상 바뀌면 잘해 줘.”라고 잽싸게 태도를 바꾼 경찰도 있었다. 그러나 유신의 주인공이 차디찬 주검으로 동작동에 묻혔어도. 유신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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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를 참아낼 수 없었던 이들은 일단의 거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비상계엄 하에서 모든 집회와 시위는 금지였다. 무장한 계엄군이 산지사방에 널린 마당에 집회 뒤에 무슨 일을 겪을지도 고민이었지만 애초에 사람들이 모이는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낸 꾀가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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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홍성엽, 신부 윤정민의 결혼식을 다음과 같이 거행하오니…”라는 청첩장이 만들어졌고 ‘1979년 11월24일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다’라는 문구가 주먹만하게 박혔다. 당연히 청첩장은 가짜였다. 신랑 홍성엽은 진짜였지만, 신부 ‘윤정민’은 애초에 그들의 꿈이었던 민주정치, 즉 민정(民政)을 비튼 가공의 인물이었다. 예식에서 울려 퍼진 건 결혼행진곡이 아니라 날카로운 구호와 비명, 뒤늦게 사실을 알아챈 계엄군의 군홧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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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사람들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는다. 유신의 끝물은 매섭고 독했다. 그 가운데 최상급의 특별 대우(?)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백기완이었다. 황해도 출신의 이 강건한 사내는 젊었을 때부터 어떻게 손을 대기 어려운 반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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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증언을 들어 보자. .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 노릇할 때 정당 사회 단체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농민운동’ 대장이었던 백기완도 초청을 받았다..... 아버지뻘되는 박정희에게 인사말 첫마디가 ‘박형!’ 그랬다고 한다. 이어서 ‘이 땅에서 혁명은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지 내가 권력자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2017.10.17) 내가 박정희라고 해도 언젠가 손을 봐도 야무지게 봐 주리라 앙다짐을 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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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대학생이던 시절, 한일회담 반대 시위 때부터 투쟁에 나섰고 박정희를 두고 ‘밀수 왕초’라고 쏘아붙였던 장준하의 최측근으로서 박정희 정권 18년 내내 머리 들이밀고 싸웠던 그였다. 깡다구도 보통이 아니었고 웬만한 깡패들은 고개도 못들 만큼 주먹도 묵직했다. 말라깽이들이 득시글거리던 시절 체중 80킬로그램이 넘는 거한의 싸움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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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기완이 ‘또’ 걸려들었다. 이번에 그를 맡은 것은 단골이었던 중앙정보부가 아니라 보안사 서빙고 ‘호텔’의 ‘군바리’(군인 일반에 대한 폄하가 아닌 보안사 고문자들을 지칭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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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왕성한 이 군바리들은 백기완의 육신부터 영혼까지 박살냈다. 대관절 사람을 어떤 식으로 고문하면 체중 82kg의 거한이 몇 달 사이에 40kg대의 미라로 쫄아들 수 있었을까. 그 고문을 퍼부은 사람들은 지금도 벼락 맞거나 차 사고에 으깨지지 않고 종생하며 손주들 세배를 받고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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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직후의 최고회의 의장에게 ‘박형’이라며 어깨를 짚었던 호기로운 사내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피폐해졌다. 몸이 그 정도로 쫄아드는데 버틸 정신이 어디 있으랴. 계엄당국도 이러다가는 정말 송장 치우겠다 싶었던지 병보석으로 풀어 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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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몸 안의 물과 기름과 피가 바작바작 말라가던 시간, 그 참혹한 지옥의 시기에 백기완이 끝내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그에게 동앗줄이 되고 통풍구가 되었 준 것은 그의 시(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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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바닥에 누워 천장에 매달린 15촉 전구를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절망에 몸부림칠 때가 많았다. 극한상황에서 자꾸만 약해지는 정신을 달구질하기 위해 ‘묏비나리’ 시를 지어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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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비나리’라는 시는 출옥 후 요양 중에도 계속 백기완의 입에서 맴돌았고 결국 그의 손에 의해 글로 쓰여져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싯귀들의 몇 구절을 따고 다듬어 가락을 입힌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생사를 가로지르는 전기찜질을 당하고 매질로 그 몸을 깎아먹으면서도 혀끝에서 놓치 않았던 싯귀는 광주라는 또 하나의 어둠 같은 지옥에서 불타 올랐던 ‘빛의 결혼식’ (당시 노래극 테이프 제목) 의 축가이자 송가, 그리고 투쟁가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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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테이프를, 노래를 전하기 위해 사람들은 테이프 릴을 알몸에 휘감고 속옷을 걸쳤고 신발뒤축에 숨겨 다른 곳으로 전파했다. 콩나물 대가리로만 악보를 보는 음치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음을 짚었다. 딴다다다다디 딴 딴 ....딴다다단 따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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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래가 어둠을 뚫는 빛줄기로 전국에 퍼지는 동안 백기완도 다시 일어섰다. 거동도 전같지 않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는 하얗게 새어 버렸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가슴을 움켜쥐는 유리 심장이 됐지만 박정희의 어깨를 짚으며 박형이라고 부르던 기개는 여전히 멀쩡했고 전두환이라는 절대악 앞에서는 더 높게 솟구쳐 올랐다. 부르는 곳은 어디라도 갔고 필요한 곳에는 빠지지 않았다.
그 와중인 1983년 2월 대구에서 열린 기독교 청년 모임에서 백기완은 그 자신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등장했을 때 모세의 지팡이를 맞은 홍해 바다처럼 갈라선 청년들이 팔을 힘차게 뻗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백기완이 필사적으로 짓고 읊조리고 비명처럼 내질렀던 묏비나리를 원형으로 만든 노래. 이미 백기완의 노래가 아니라 광주의 외침이 되고 독재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의 함성이 돼 버린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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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은 펑펑 울었다. 감격스러워서만은 아니었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 이후 유신 반대, 긴급조치 반대, 계엄 반대 그 모든 압제에 대한 반대로 일관했던 시절, 자신을 팔아치운 사람도 있었고 깃발을 떠나 버린 사람도 여럿이었다. 온몸이 망가져 숨만 붙은 병자가 돼 다시 80년대의 대머리 세상을 보았을 때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괴로웠을까. 이 노래를 듣거나 묏비나리 시를 읊을 때 그는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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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 독방에서 춥고, 못 먹고 얻어맞고. 그런 것들이 기억나서.” 하지만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닐 뿐 아니라 수백 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노래로 그를 호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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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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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쥐어짜듯 태어난 시, 돌 매단 실낱처럼 위태로웠으나 끝끝내 땅에 떨어지지 않게 생명을 잡아맨 노래. 그 노래가 용기의 상징으로 솟고 다짐의 폭포를 이루어 그 물살에 자신조차 휩쓸리는 감동을 우리 역사에서 백기완 말고 누가 경험했을까. 봇물 터지는 울음 속에서 노래는 천사처럼 날개를 폈고 용기와 희망과 함께 어두운 역사의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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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래를 만들었고 노래는 다시 그가 되었다. 노래가 불리는 곳은 항상 그가 있음직한 자리였고 그가 나타나면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이 노래가 출렁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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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묏비나리의 마지막 구절은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였다. 거꾸로 매달려 그 시를 읊조릴 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속절없이 죽는구나. 나는 이렇게 앞서 가지만 산 사람들은 살아서 싸워 주길 핏덩이 머금고 기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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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가사는 사람들의 입 속에서 산 자의 투쟁 의지로, 즉 “앞서서 나가니”로 바뀌었다. 살았지만 죽은 자들, 숨은 쉬지만 겁 속에 묻힌 자들을 향한 외침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좁은 한국땅을 넘어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의 노래로서 세계를 향해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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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근 육십갑자를 이 험한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보내온 백기완이 마침내 우리 곁을 떠나 ‘임’이 되었다. 이제 그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을 것이다.....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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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죽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하다보니 눈물이 난다.....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너무 힘드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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