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노래 다시 부르기 - 옛 시인의 노래
역시 문명의 이기는 편리할수록 활용합니다. 2019년 4월 이전 제 차 곳곳은 테이프와 CD들로 그득했습니다. 언제 들었는지, 또 들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꽂히는 노래가 있으면 그냥 차에 갖다 놓은 것이 그리 쌓였던 것이죠. 그 차에는 블루투스 기능이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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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사 클릭 몇 번으로 다운받아 저장해 두면 얼마든지 차에서 들을 수 있으니 너저분했던 ‘쓰레기차’가 우아한 ‘뮤직 살롱카’로 거듭난 셈입니다. 요즘은 장거리 여행의 로망이 생깁니다. 차곡차곡 쌓아 둔 수백 개의 추억의 가요를 다 듣다보면 서울 부산 왕복도 너끈히 가능할 것 같단 말입니다. (이노무 코로나 썩 물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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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귓전에 노래 여러 곡을 흘리는 가운데 한 노래가 귓바퀴를 잡아당겼습니다. <옛 시인의 노래>였지요. 모니터에 제목과 가수 한경애의 이름이 뜨는 가운데 숫자 4개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1981.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나온 노래라는 거죠. 그러니까 21학번인 제 딸아이에게 이 노래는 88학번인 제게 현인의 <신라의 달밤> 정도의 연식을 지닌 노래가 되겠습니다. 다시금 세월의 무상함에 얼떨떨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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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부른 한경애는 청아한 목소리로 대학가에서 유명한 아마튜어였지만 가수보다는 학업에 더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습니다. 연예계 데뷔(?)도 가수보다는 DJ쪽이 먼저였지요. 프로그램 진행 와중에 독집 앨범을 내게 되면서 가수의 등용문을 열어젖혔고 그녀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노래가 1981년의 <옛 시인의 노래>였습니다. 요즘 20대에게 이 노래를 들려줬더니 “웬 청승 떠는?” 반응이 돌아와 놀란 적이 있지만 이 노래는 한때 한국 사람들에게 ‘클래식’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명곡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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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나온 지 14년 뒤인 1995년 동아일보가 조사한 ‘한국인의 애창곡’에서 <옛 시인의 노래>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명사들의 애창곡 같은 프로그램에서 <옛 시인의 노래>는 후보 1순위의 노래였고 서로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승강이를 벌이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하지요. 이 노래가 처음 나올 당시 초딩이었던 저도 이 노래를 신물나게 들었고 반 아이들은 이 노래의 가사를 적어서 달달 외우고 다닐 만큼 히트를 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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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하꼬방에서 고된 하루하루를 엮던 당시의 청춘들, 즉 ‘동네 형과 동네 누나’들은 더했겠지요. 그 노래를 들은 건 TV와 라디오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저씨를 통해 들었고, 연쇄점 앞 평상에 둘러앉아 나직하게 부르던 동네 누나들로부터 들었고, 언젠가는 교복 입고 술 처먹고 다니던 고삐리들이 이 노래를 합창하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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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통장이었던 친구 아버지 부탁으로 동네 어느 누나 집에 뭘 전해 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이 누나가 단감을 내줘서 친구와 함께 아삭거리며 맛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그 누나가 혼자 신나서 얘기한 것이 <옛 시인의 노래>였습니다. 초딩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 노래가 왜 명곡인지, 얼마나 사람의 속을 긁어대는지에 대해 꽤 긴 사설을 늘어놓았었지요. 대충만 기억해 봐도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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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작곡가하고 작사가가 부부다. 작사가는 시인이었데이. 결혼 전에는 마 가난한 시인이었고 부인은 잘 사는 집에서 음대 나와서 우아하게 사는 여자였능기라. 근데 둘은 참말로 좋아했데이. 근데 여자 집안에서 반대가 심해. 하루는 집안 사람들이 몰려와서 시인을 막 머라 카고 두들기 패기까지 했다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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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안된다. 어데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마라. 시인도 포기할라 했고 여자도 그만둘라 했는데 그라면 사랑이 아니다 아이가. 마 그럴수록 보고 싶고 또 만나고.....그런데 하루는 집에서 강제로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이 된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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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정말로 여기까진갑다 하고 마지막으로 만났다 안카나. 근데 거기서 시인이 웃으면서 니한테 주는 마지막 시다 카면서 이 노래 가사를 줬다능기라. 지금 읽지 말고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 미국 가서 읽어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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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게 사람이 그기 되나. 여자는 집에 와서 바로 봉투 풀고 읽다가 마 통곡을 한 기라. 내 유학 안간다. 내 이 사람 아니면 평생 혼자 살끼다 선언을 해뿌고 직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해라 카면서 집을 나와뿟다 아이가. 그러면서 시인 시에 노래를 입혔다 안하나. 이런 노래가 어데 있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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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윗 이야기에서 팩트는 ‘작곡가와 작사가는 부부다’라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작사가는 이경미, 작곡가는 이현섭. 남자와 여자가 바뀌어 있죠. 둘이 함께 활동하다가 부부의 연을 맺은 건 맞지만 나머지 얘기는 거의 몽땅 ‘카더라’ 방송국 대본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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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열려 있었고, 노래 가락 하나와 시구(詩句) 한 귀퉁를 줄기로 오만가지 이야기 나무 가지들이 산지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고, 그 그늘 아래에서 걸터앉아 마음을 충전하고 늘어진 어깨를 추스르던 시기 아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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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 누나의 직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회사 경리인가 그랬을 겁니다. 뭔가 아주 멀게 느껴졌던 ‘경상북도 고령’이 고향이었던 누나는 대학 노트에다가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가사 같기도 하고 편지 내용 같기도 한 내용을 잔득 적어 두고 있었습니다. 뭔데요 들여가보려다가 가벼운 군밤을 맞기도 했지요. 한사코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 노트의 내용을 물으니 “나중에 내 애인 생기면 들려줄 시”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학 노트에는 이런 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나타난 당신에게 드리는 <옛 시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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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누나도 지금쯤 경로우대를 받을 나이를 지났겠지요. 이 하늘 어딘가에서 그 누나가 마침내 나타났을(?) 그 사람 앞에서 ‘옛 시인’이 돼 자신의 대학 노트를 펼쳤기를 바라지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킥킥거리며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그 후 오다가다 본 것 외엔 만나지도 못했고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이지만 타임머신이 있고 시공간을 지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까페든 어디든 까치발로든 망원경으로든 지켜보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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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운아는 누구였을지. 그리고 그 옛 시인의 노래는 얼마나 상대를 감동시켰을지 . 그리고 배경음악이 깔리겠지요? 우 뚜루루루 뚜루루 우뚜루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