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저녁이면 GRP의 음악들을 듣는다. 어느새 부쩍 길어진 낮은 아직 퇴장할 기미가 안 보이고,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잔뜩 데워진 대지가 아직은 열기를 머금은 시각, BGM으로 GRP가 제격이다.
어느 레이블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곤 한다(요즘은 ‘기획사’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내가 음악을 처음 접하던 시절에는 ‘레이블’이라 불렀다.) 80년대 후반 한국의 동아기획이 그러했고, 지금 얘기하려는 GRP가 그러하다. (요즘의 SM이나 YG 등도 개성 강한 음악을 만들고 있지만,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브랜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비하가 아니다. 영역을 달리한다는 말이다.)
GRP는 퓨전재즈의 신 데이브 그루신이 설립한 레이블이다. 그 자신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여기 만족하지 않고 레이블을 만들어서, 리 릿나워, 얼 클루 같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이 음악들을 처음 알게 된 때 나는 십대였다. 그때는 저멀리 이국에서 도달한 음악이나 영화가 질식 직전의 상태 속에서 내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한없이 듣고 싶고, 한없이 보고 싶었다. 폐가 터지도록 들이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다. 감시하는 눈만이 도처에 있었다.
GRP의 음반들을 모아둔 박스 세트를 몇 해 전 구입해서, 매년 이맘 때면 꺼내서 한두 장씩 듣는다. 폭력과 억압 속에 보낸 십대 시절은 돌아보기도 끔찍하고, 그 시절을 보낸 반포는 지하로라도 지나가기 싫어 지하철역을 지날 때마다 몸서리쳐지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만은 이렇게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찾아듣는다니 신기한 일이다. 나는 영화 ‘사랑의 행로’ 사운드트랙을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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