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말고보통] 조금 불편하게 살면 안될까요?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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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 운행을 반대합니다.

"돈을 더 벌어 더 편리해지려는 대신 자발적으로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것은 어떨까요?" 폭주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 불편함만큼 자본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의 병적인 자본주의를 완화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인 까닭이다. 소비자로서 자발적 불편을 감내하려고 할 때 조금 더 널널한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라 믿고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의 정책에 대부분 동의하고 또 앞으로도 대체로 그럴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정책 중 하나만은 마뜩치가 못하다. ‘올빼미 버스’라는 심야버스 운행 정책이다. 이 정책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그 선의를 모르는 바 아니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기 시간에 서민들을 위해 조금 더 값싸고 편리한 버스를 도입하려는 그 선의를 어찌 의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의와 관계없이 그 제도는 필연적으로 서민을 더 힘든 삶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악덕 기업주는 ‘심야버스가 있으니 야근을 더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은근히 강요할 테다. 또 어떤 악덕 사장은 심야에 일하는 알바생에게 응당 주어야 할 교통비를 ‘심야 버스 타면 되잖아’라고 말하며 퉁치려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가정을 과도한 비약이라고 말하지 말자.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는 그 정도로 충분히 치졸하고 천박하니까. 심야버스가 운행되면 당분간은 심야버스 덕분에 편리해지겠지만, 이내 그 제도는 더욱 서민을 옥죄는 제도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정부차원의 정책적 제도는 폭주하는 자본의 문제를 뒤에서 수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정부차원의 정책적 제도는 자본의 문제를 선제적이고 본질적으로 통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막강한 권력을 틀어쥔 국가 정부마저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대체 누가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정부차원의 정책적 제도로서는 심야버스 운행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또 심야 배달도 하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낫다. 또 술집이나 음식점도 24시간 운영이 아니라 밤 10시면 일괄적으로 문을 닫게 하는 편이 낫다.

물론 안다. 거기에는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걸. 하지만 지금 잠시 불편하게 하게 그런 제도들이 정착되었을 때,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될 게다. 많은 이들이 유럽의 선진국을 부러워하지만, 파비앙의 말처럼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유럽은 불편하게 짝이 없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시민이 심야버스를 타는 편리함을 누리게 해줄 게 아니라, 심야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근본적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어떤 이는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다. 심야버스조차 없어서 서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맞다. 당장이 힘든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심야버스조차 없다면 삶이 얼마나 더 고되어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심야버스를 운행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높이던지, 고용안정성을 확보하던지, 기본소득을 보장하던지, 어떤 방법이건 심야버스를 타야 하는 일이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흔한 정치꾼들의 입버릇처럼 나라가 망한다느니 국가 경제력이 없어진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기 전에 말이다.

우리 조금 불편하면 안 될까요?

우리의 역할도 있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당장은 조금 불편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정책들을 시행하려고 할 때 기꺼이 손을 들어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심야버스가 없으면 당장은 불편할 것이다. 밤 12시에 간편하게 소주 한잔 할 술집이 없다면 당장 불편할 것이다. 24시 편의점이 없어지면 당장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그런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분명 심야버스를 타는, 자정에 소주 한 잔하고 싶은, 새벽에 편의점을 가고 싶은 소비자다. 하지만 동시에 심야버스를 운전해야 하는 고달픈 운전수, 자정까지 서빙을 해야 하는 술집 종업원,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는 편의점 직원이기도 하다. 잊지 말자. 우리의 편리함에 기생해서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바로 자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실 그 편리한 것들이 없으면 못살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심야버스, 심야술집, 24시 편의점이 없는 국가들이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네들의 삶의 질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다는 점이다. 인간의 행복은 ‘소비의 만족’보다 ‘노동의 고통’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산술적으로도 그렇다. 소비하는 시간보다 노동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소비자로서의 만족보다 노동자로서의 만족이 우리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100만원을 버는데 쓰는 시간과 100만원을 버는 데 걸리는 시간 중 어느 시간이 더 많이 걸릴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된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돈을 펑펑 쓰는 ‘행복한 소비자’이기보다 적게 일하고 사람답게 일하는 ‘행복한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소비자로서 불편해지는 만큼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될 테니까. 소비자로서 불편하는 감내하는 만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각자의 삶에서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만큼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질 게다. 마지막으로 부탁하듯 되묻고 싶다. ‘우리 조금 불편하게 살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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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사 친구의 멋진 포인트 👍🏾👍🏾@sindorinspinoza

고통대신 보통이라는 말이 너무 와닷네요.......
심야버스로 인해
버스기사는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고
직장인은 의도치 않은 일을 해야하고.....

울 동네는 큰 CVS가 있어서 그나마 11시까지 뭔가를 살수 있달까요. 미쿡 다른데는 24시간 CVS도 많은데 희한하게 보스턴 CVS 들은 대부분 심야 영업을 안하더라구요.

요즘, 미쿡 펍은 대체로 몇시까지 해요?

동네마다 천차만별입니더.. 시골 살때는 음식 오더는 9시에 끝나고 문은 12시에 닫는 경우도 있었고... 보스턴 다운타운은 1-2시 까지 하는데도 많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