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체육대회 였다.
옆반에 농구를 잘하는 애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었다.
체육대회를 나갔는데 수비를 하러 다가가면 돌파를 해서 골을 넣고, 다가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골을 넣었다.
그 친구 하나를 막지 못해 우리 반은 패배했고 생각해보면 그 패배는 내 농구인생에 있어서 첫 대회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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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 농구를 했고 그때마다 그 친구는 눈에 띄는 플레이를 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농구를 가장 잘하는것 같았고 실제로 농구를 지역에서 농구를 가장 잘했다.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함께 점심시간에 농구를 한다는것 외에는 접점이 없었다.
당시 나는 방과후에 축구를 했는데 축구에서는 딱히 재능을 보이지 못했던 터라 주로 벤치를 지키곤 했다.
벤치에 앉아 있긴 심심해 농구장에가서 공을 던지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너도 이번 농구대회 나갈래?
그렇게 시원이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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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방과후에 농구연습을 했다.
슛, 수비, 레이업 등농구의 기본을 배웠다.
학교 마치고 시원이에게 농구를 배우면 저녁에 혼자 농구대에 가서 연습을 했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다. 농구를 하고 라면을 먹고 농구를 했다.
그리고 몇달 후에 있었던 부산 전체 중학교 농구 대회에서 예선탈락을 할꺼 같았던 우리 중학교는 16강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발휘하고 우승팀을 만나서 아쉽게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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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3명은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각자 고등학교 농구부의 주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농구를 했던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본인의 개성을 살려 농구를 하고 있었다.
에이스 시원이는 정통 농구의 모습으로.
치훈이는 3점슛터의 모습으로
나는 길거리 농구인의 모습으로.
중학교때 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만나서 함께 농구를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때 나갔던 한 농구대회 결승전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팀으로 만나게 된다.
친구지만 본인이 가르쳐줬던 제자 격인 나를 결승전 상대로 만난 시원이는 무슨 기분 이었을까?
결론만 말하면 나는 시원이 팀에게 1골차이로 패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원이는 그렇게 열심히 뛰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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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에 우리는 모두 농구대에서 멀어졌지만 시원이는 계속해서 농구를 했다.
대학교 농구부에 가입하여 계속해서 농구를 했으니 기량은 예전보다 훨씬 더 올라갔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농구대에서 멀어져버린 우리 친구들은 일반부 대회에 도전하게 된다.
농구에 대한 열정도 기억도 몸도 마음도 모두 달라져 버린 우리였지만 우리에게는 시원이가 있었다.
중학교때 그랬던것 처럼 지금 까지도 농구에 있어서는 코치 시원이가 있었다.
그렇게 시원이의 감독하에 우리는 일반부 농구대회를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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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팀 이름은 10년전 그랬던것 처럼 '탈탈탈'과 '동거힙' 이었다.
우리애는 농구대회 나가라는데 안나간다고 하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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