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조금 특이한 글을 한 번 쓰고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창피하기도 하겠지만 스팀잇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각 대학별 논술, 구술 문제를 함께 풀어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가 싶습니다. 검색을 해보면 수학처럼 명확하게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답은 그래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인문/사회 분야는 관련된 내용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아마도 그 자체가 중요한 상품이라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모범답안을 만들 자신은 전혀 없습니다. 이곳에 댓글로 답변을 멋지게 정리해 주실 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은 저도 방향을 한 번 제시하면서 나름의 답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년만에 이런 문제를 다시 접하려니 막연하긴 한데, 비전공자도 풀 수 있는 인문/사회 계열 지문들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면 얘기거리도 되고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번에 모두 답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한 문항씩 차근 차근 생각해 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 다룰 지문은 2017년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 구술면접 문항 인문학 편입니다. 우선 다음 세 개의 제시문을 읽어 보고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시죠.
(가) ‘록키’는 칼을 갈고 있었다. 그는 사슴시체를 배가 위로 오도록 뒤집고 뒷다리를 펼쳤다. 록키가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타요’는 사슴의 눈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겉옷을 벗어 사슴의 머리를 덮어주었다. 록키는 뱃속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배를 갈랐다. 타요는 사슴의 간과 심장을 무명천으로 감쌌다. 이른 겨울 달이 그들 앞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달을 좇아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고, 발과 손을 파고들었다. 타요는 보따리를 좀 더 꽉 껴안았다. 그는 보름 달의 크기와 산기슭 언덕을 타고 넘어서는 차가운 바람에 겸손해졌다. 사람들은 사슴이 그들을 사랑 하기에 자신을 내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슴의 잦아드는 심장이 자신의 손을 덥히자 타요는 사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자연보전주의자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定義)를 여럿 읽어봤고, 나 자신도 몇 개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정의는 펜이 아니라 도끼로 쓴 것이 아닐까 싶다. 나무를 베거나 혹은 무슨 나무를 벨지 결정하면서 생각하는 일이 바로 그거다. 보전주의자란 도끼질을 할 때마다 땅 표면에 자신의 서명을 쓰고 있음을 겸손히 깨닫는 사람이다. 난 언제나 소나무보다는 자작나무를 베어낸다. 왜 그럴까? 소나무 아래엔 언젠가 ‘트레일링 아부투스, 수정란풀, 노루발, 린네풀’ 등이 자라겠지만 자작나무 아래에는 기껏해야 ‘용담’이나 있을 뿐이다. 소나무에는 언젠가 ‘도가머리딱따 구리’가 둥지를 틀겠지만 자작나무에는 ‘털오색딱따구리’나 있으면 다행이다. 사월이 되면 소나무 사이의 바람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겠지만 같은 시기에 자작나무는 그저 덜걱거리는 헐벗은 나뭇 가지일 뿐이다. 내 편애를 설명할만한 이런 이유들은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도끼를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예측하고 비교하고 판단해야만 하는 이득과 손실이다.
(다) 생명공학은 여러 방면에 적용될 수 있다. 각종 독소에 대한 저항력을 향상시키는 유전자를 삽입 하여 유전자 변형 곡물을 상품화할 수 있다. 그리고 변형된 조직 구성을 가진 곡물을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육류를 생산하면서도 동물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인간 질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유전적으로 변형된 동물을 사용하면 보다 정확하고 적합한 모형을 구성할 수 있고, 아울러 기존에 사용했던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동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 1] (가), (나), (다)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시오.
[조선생의 답]
제시문을 읽고 자연에 대한 태도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가] 제시문에서는 록키가 사슴을 잡아 작업을 하는 동안 타요는 이를 지켜보며 자연 앞에 겸손해하며 사슴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사랑을 느낀다고 하고 있습니다. [나] 제시문에서 화자는 진정한 자연보전주의자는 말이나 글로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야 할 때 어떤 나무를 베어야 할지 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기준은 더 많은 생명체가 있는 소나무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이 그다지 의지하지 않는 자작나무를 베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 제시문은 생명공학을 통해 곡물의 유전자를 변형해 인간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태도 비교를 하자면 인간 vs 자연의 대결이라고 할 때, [다]>[나]>[가]의 순서로 인간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 제시문에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는 자연에서 타고난 형질까지도 적극적으로 변형을 시도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고 활용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생각합니다.
반면 [나] 제시문의 화자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는 이보다는 조금 덜합니다. 될 수 있으면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유기체들에게 덜 피해가 가는 쪽으로 자연을 이용하려는 태도를 보이지요. 마지막 문장에서 손익계산을 해서 어떤 나무를 베어야 할 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서 그런 태도가 드러납니다. 다만, [나]의 화자 역시 자연을 인간과 동일한 가치가 있는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되, 자연의 자생력을 보전하는 쪽으로 이용하자는 견해라 생각합니다.
[가] 제시문의 타요는 감성이 풍부해 보이죠? 타요는 사슴을 잡아서 도축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슴이 인간을 사랑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사슴의 심장에서 그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죠. 자연을 인간과 가장 동등한 존재로 보는 태도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이용하고자 해서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는 것을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 2번과 3번은 새벽시간이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니 내일 마저 좀 써봐야겠습니다. 이런 시도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괜히 창피만 당하지는 않을지. 어른들이 풀어보는 답이 아이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어른들도 그리 대단한 해법이 있는 건 아니구나라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냥 막연히 생각해 봅니다. 여하튼 내일 이어서 또 이 지문을 한 번 다루어보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문제 2]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가), (나), (다) 중 지향해야 할 자연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태도를 지닌 사람이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을 고려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설명하시오.
[조선생의 답]
저는 @kmlee님의 답을 빌려 [다]의 입장을 취해보겠습니다.
[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것을 부정하고 자연을 훼손하며 조작하는 행위가 결국은 자연으로 부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 외에 그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유기체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며, 지나치게 부정적인 입장에서 바라 볼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겠습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자연의 이용과 훼손은 생태계 전체를 파괴해서 인간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적극적으로 자연을 변형시키는 행위는 생태계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으나 생태계 역시 45억 년의 역사 동안 무수한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인간이 촉발시킨 그 변화로 인한 자연의 변화에 대해 예측하며 준비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다]의 입장이 가진 부정적인 면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답한 내용이지만 어설픕니다. 좋은 답안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문제 3] (가)의 타요의 ‘겸손함’과 (나)의 화자의 ‘겸손함’을 비교하여 두 제시문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태도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
[가]의 타요가 지니는 겸손함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자연 앞에 무력한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면도 있습니다. 보름달의 크기와 차가운 바람은 사냥을 하고 있는 타요에게 네가 잡은 사슴은 결국 자연이 내어준 것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편 [나]의 화자는 자연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우선 어떤 나무의 생명을 앗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태계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어떤 나무를 베어낼 지를 결정합니다. 인간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생태계를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화자가 보여주는 겸손함은 자신의 행위가 결국 자연에 그 결과로 남게 될 것임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도끼질은 자연에 자신의 흔적과 생각, 행동을 남기는 서명과 같은 행위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반성을 하는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45분 정도의 준비를 통해 답안을 구성해야 한다고 하는데 얼른 착상을 떠올리지 않으면 내용정리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면접 때에는 교수님들께서 힌트도 주면서 학생이 편안하고 차분하게 답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고 합니다. 수험생들의 건투를 빌며 첫 번째 글을 마칩니다.
PS 댓글을 통한 토론은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가즈앗!!
[문제 1]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가 혹은 있는 그대로를 자연이라 여기는가는 전통적인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대결구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자연을 깔보고 인간이 자연을 초월한 우월한 존재라 여기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존본능을 가진 인간이 자연을 활용하는게 도리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 대 자연의 대결구도를 바라보면 자연을 보호하자는 입장이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된 존재로 여기는 오만한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서 도태되어 멸종하는 종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움직임은 과연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있는 종을 인위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게 하는건 유전자 조작과 얼마나 다른가?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가], [나], [다]의 입장은 큰 차이가 없다. [가]에서 타요는 생존을 위해 사슴을 사냥하며 사슴이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에서 감사함을 느끼지만 사슴을 사냥한다는 행위는 변하지 않는다. [나]의 화자도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철저히 자신이 부여한 가치에 따라 평가하고 있다. [다]에서는 인간을 위해 자연을 적극적으로 바꾸어놓는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생명공학만 개입되었다 뿐이지 타요의 삶과 [다]에서 제시한 청사진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요가 무명천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타요 또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목화의 생태에 개입한 결과물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왜 논술에서 떨어졌는지는 알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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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멋진 해석입니다~~ 다른 분들도 참여하면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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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으로 이런건 마지막에 살짝 끼워넣어줘야 논술결과가 잘 나오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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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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