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은 필요 없다. 막걸리라는 주제에 확신을 가진 건 송명섭 막걸리를 마시고부터다. 먹을 때마다 맛이 달랐고 그래서 살아있는 음식의 진가를 알았다. 택배 주문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직접 사러 갔다.
우르르, 네 명이나 내려갔다. 송명섭막걸리의 팬이었던 필자와 필자의 추천에 눈이 커진 두 명의 에디터, 그리고 포토그래퍼. 필자는 창간호로 반드시 막걸리를 다루자고 주장했었고 그 길고 긴 이유를 설명하기 버거울 때마다 ‘송명섭’이라는 이름 석 자로 답을 대신했다. 우리가 서울에서 마시는 서너 종류의 막걸리가 막걸리의 전부가 아니다, 다른 걸 먹어보면 알 거다, 고르기 어려우면 송명섭막걸리를 마셔봐라, 우리가 얼마나 막걸리 맛을 한정 짓고 있는지 깨닫게 될 거다, 주장했다. 그리고 증명하겠다는 태도로 다 데리고 진짜 내려갔다.
막걸리 사러 떠나는 여행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막걸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막걸리의 매력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지인을 끌고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보라. 양조장에 들어서면 일행의 태도가 먼저 달라진다.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가서 먹는 게 뭐가 다르겠냐는 생각이라면 모험 삼아 떠나보시라. 출발하는 순간부터 막걸리를 빨리 마시고 싶어 견디기 힘들어질 지도 모른다. 산지에서 먹는 막걸리는 분명히 맛이 다르다. 기분 탓이 아니라, 덜 익은 겉절이 같은 신선한 맛이 난다. 특히 송명섭막걸리처럼 첨가물이 없는 건 더욱 그렇다.
장난처럼 투덕투덕 눈이 내리던 날, 태인면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마당 두 개가 나란히 팔 벌리고 있는 양조장 앞에 차를 세우고 오늘의 주인공이 나오길 기다렸다. 곧 한옥에서 송명섭 장인이 기침을 하며 터덜터덜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손님을 보자마자 막걸리 두 병과 잔을 가져와 한 사람씩 따라준다. “일단 맛을 봐야 기사를 쓰지.” 직접 만드는 사람이 따라주는 잔은 영광스럽기까지 하다. 그건 한복 명인이 직접 짠 한복을 입혀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니까. 맛은 역시나, 서울의 술집에서 마신 것과는 또 다르며 만든 지 한 달이나 된 것마저 신선하게 느껴진다. 첨가물이 없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길지 않고 기온에 따라 다르게 익으므로 마실 때마다 새롭다.
송명섭막걸리는 죽력고 장인 송명섭 씨가 직접 농사를 지은 쌀 영덕 41호, 역시 손수 재배한 밀로 만든 누룩, 그리고 태인면의 물, 이 세 가지로 만든 술이다. 한 번 맛들이면 다른 막걸리는 너무 달아 못 먹게 되는 마력의 술이기도 하다. 장인이 막걸리를 마시게 하는 방법은 좀 독특하다. 한 잔은 그냥 마시고 다음 잔은 굵은 소금을 혀 밑에 놓고 마시게 한다. 소금이 들어가서 혀를 자극하면 그제야 감각들이 살아나 단 맛이란 전혀 없는 듯했던 (오죽하면 별명이 ‘막걸리 계의 아메리카노’다) 막걸리에 단맛이 살짝 돈다. 신기해하는 사람들에게 장인은 말한다. “우리 혀가 너무 많은 자극에 길들여져서 그렇지, 가만히 먹어 보면 첨가물 없이도 단 맛이 나요. 어떤 막걸리는 오늘 먹은 맛이나 보름 후에 먹은 맛이나 다 똑 같어. 이건 음식인데 당연히 달라야지. 된장이 집집마다 다르고 김치가 철마다 다른 것처럼.” 막걸리 두 잔 얻어 마셨겠다, 본격적으로 그간 궁금했던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셨어요? 기자님은 언제부터 걸으셨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배우는 거고, 저도 대대손손 전해온 기술과 문화로 배웠고. 그렇게 죽 이어지는 거죠. 세월을 환산할 수는 없어요.
어떤 맛을 기준으로 막걸리를 만드시나요? 맛의 기준 같은 건 없어요. 봄에 쑥국을 먹었을 때의 향기는요, 쑥의 향이 아니에요. 그건 봄 향기예요. 똑같은 레시피, 똑같은 양으로 국을 끓여도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요. 그런 의미에서 난 같은 맛을 못 내요. 왜냐고 물어보시면 제가 할말이 없어요. 저희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음식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먹던 것하고 맛이 또 달라요. 음식이란 게 할 때마다 원래 다른 거예요.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구연산으로 신맛 내고 아스파탐으로 단맛 내면서 같은 맛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우리 술은 그게 안돼요. 그래서 제가 조절 못해요. 오로지 자연이 합니다.
그럼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감미료는 왜 넣을까요? 처음에 막걸리 만들 때는 나도 넣었어요. 다들 그 맛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김장을 하는데 조미료를 안 넣더라고. 내가 옆에서 조미료 넣으라고 했더니 ‘그런 거 안 좋다고 하는데 왜 넣어야 해?’ 하고 되물어요. 그 말이 내 머리를 딱 때렸어요. 난 술은 음식이라고 늘 이야기해요. 마시는 건 ‘음’이고 씹는 건 ‘식’이라고. 그런데 음식 만드는 사람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감미료를 넣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싶었어요. 그래서 안 넣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마니아가 생겼어요? 마니아! (말 같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아스파탐 안 넣었더니 매출이 70%까지 떨어집디다. 갑자기 먹고 살 길이 캄캄해졌어요. 안 흔들렸냐고요? 당연히 흔들리지. 매출이 없다시피 했다니까? 그런데 제가 별명이 하나 있어요. 곰이야. 이미 안 넣기로 어렵게 결정했는데 또 다시 돌아설 용기는 없더라고요. 아내한테 얘기했지. ‘우리가 직접 농사 지으니까 이익은 많이 안 남아도 손해는 아니야.’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더라고요. 그냥 버텼어요. 그게 생존 본능이었어요. 8년인가 9년인가 세월이 지나니까 조금씩 팔리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전략도 없이 그냥 한 거예요.
필자는 여기까지 듣고도 ‘곰’이라는 그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 무슨 지원이 있었겠지. 그런데 송명섭 장인은 다시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생활이 되지 않아 환경미화원으로 일했습니다. 5년 정도 했지요.”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어떤 고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자신이 없어졌다. 감미료만 넣으면 지역대표주가 될 걸 알면서도 넣지 않는 고집, 그리고 한 때 잘 나가던 양조장집 아들에서 전혀 해보지 않은 일로 삶의 폭풍에 나부끼기까지, 그는 끝까지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원칙을 지켜내는 장인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 이 지역보다 외지로 나가는 술이 더 많아졌어요. 그런데 아무리 잘 포장을 해도 우리 막걸리는 변하거든요. 처음부터 입구에 홈을 파고 밀봉을 안 해요. 숨을 쉬어야 하니까. 그러면 가다가 새기도 하고 맛이 변하기도 한다고. 그런데도 주문을 해요. 왜냐하면 대도시에서 먹는 술은 맛이 똑같대요. 사실 그건 수면제를 뿌리는 거랑 같아요. 사람이 수면제를 먹으면 숨 쉬고 있으니 산 사람이지만 활동은 하지 않죠? 활동을 억제하면 탄산이 생길 리가 없으니 인공적으로 약간의 탄산도 집어넣어요. 그렇게 먹기 좋은 술을 만들어요. 그런데 우리 술은 움직이잖아요. 지금도 이 술로 빵을 반죽하면 빵이 만들어져요. 효모가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술을 서울에서 쉽게 마실 수 없는 게 한스러웠다. 많은 술집에서 팔긴 하지만 현지보다 비싸다. 대부분 5천 원에서 1만 원 사이다. 장인은 술집에서 비싸게 파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이 술을 위해 김치냉장고가 따로 있어야 하고 이 술이 왜 시고 쓴지에 대해 설명하는 수고로움이 있으니까 그렇게 받을 수밖에 없는 걸 이해합니다."
막걸리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정치와 사회,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라 했던가. 입맛이 비슷해서인지 현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한탄하는 대목도 우리는 모두 비슷했다. 문득 같은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차이를 줄이고 관계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막걸리가 될 수 있었다.
정읍 한 바퀴 돌지도 않은 채 오로지 막걸리를 사러 간다는, 만든 이를 만나 긴 대화를 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에서 3시간 넘는 거리를 달렸다. 결론적으로는 이것이 훌륭한 여행의 방법임을 다시 확인했다. 집 방향이 모두 달랐던 우리는 강남 언저리에서 헤어졌다. 각자 사온 분량이 있었는데 서로 한 병만 달라고 소란을 떨었다. 어차피 서울에서 마음만 먹으면 마실 수 있는 막걸리지만, 현지에서 사온다는 건 ‘기호’에 ‘애착’을 더하는 일이 됐다. 서로 단 한 병을 양보하지 못해 우리 꼭, 또 사러 가자 약속하고 자기 몫에 만족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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