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일기 #159

in mexico •  19 days ago  (edited)

2024.11.2(토)

12월에 가족과 함께 한국을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도 뵙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필요한 물건도 좀 사오고, 무엇보다 몇년 동안 미뤘던 건강검진을 받을 계획이었다. 어깨도 아프고 치열도 삐뚤어져서 병원도 가서 치료도 받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갑자기 말을 바꾸어 갈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런 무책임한 회사를 위해서 수년간 애쓰고 노력했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뭔가 단단히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푼돈 아끼려다 어디 한번 망해봐라!

요즘 큰아이와 매일 책을 읽는다. 법륜스님의 행복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서 큰아이와 많은 마음속 이야기를 하게 되어 정말 좋다. 어제도 큰아이와 책을 읽고 엄마와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자꾸 나만 심부름을 시켜서 짜증나!"
"동생은 안시키고 왜 나만 시키는 거야?"
그런데 책에는 그 화나는 마음은 엄마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화를 내는 거란다. 이 부분이 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정말 마음속까지 인정할 수는 없는 말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말은 맞는 말인데, 인정할 수는 없단다.
"그래 아빠도 그 말을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어.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애를 먹고 있거든. 쉽지 않아. 그렇지?"
그렇게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려고 샤워를 하는데, 불연듯 한국을 못가게 된 일이 생각났다. 다시 화가 북받쳐서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다 어제 아이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건 내가 화를 내고 있는거구나. 내가 일을 대충하고 복수한다고 해도 회사만 어려워지고 나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그 어떤 것도 좋아지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화를 없애려면 화가 나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1. 내가 회사를 위해 애썼는데, 몇년 만에 한국가는 걸 막았다는 건 그동안의 내 노고를 무시하는 거고, 나를 무시하는 거라는 생각에 화가났다.
  2. 가족들에게 떳떳하게 한국 한번 보내주고 싶었는데, 이 놈의 회사는 그 푼돈 좀 아껴보겠다고 말을 바꾸다니 내 자존심이 너무나 상했다.
  3. 내가 열심히 안하면 이 회사가 잘 돌아갈 수 없다. 이 회사는 손실만 눈덩이처럼 커질꺼다. 그런 나를 이렇게 대우하다니 앞으로 나는 이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지 않겠다.

이런 분노의 감정은 순식간에 내 머리로 치고 올라가서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한다. 너무나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왜 내가 화가 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면 이제 원인을 찾아봐야 할 시간이다. 내 감정의 근본에는 자만심이 자리하고 있다. 어린애 같은 자만심을 이미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지우지 못한 것 같다. 그 어떤 일도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 마음으로는 자만심에 사로잡히고 그걸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것이 우선 잘못 끼워진 첫 단추라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는 내 감정의 바탕에 나약함이 자리하고 있다. 내 가치는 어느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남이 인정해 주는 가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나는 회사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회사가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내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외부의 평가에 의지하는 나약한 마음이 나를 더욱 부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내 감정의 기저에는 낮은 자존감이 있다. 복수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남에게 힘을 과시해서 상대적으로 나를 우월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내가 상대보다 별 볼일 없고, 너무나 무기력하고, 나약해서 이런 복수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낮은 자존감에 기인한다. 낮은 자존감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온다.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남에게 주도권을 주고서는 남들의 평가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한국을 못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분노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뭔가 허무해진다. 결국 한국은 못가고, 나만 그 손해를 모두 떠 안게 된 것 같다. 원래 나는 한국을 가야하는데 못가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당장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원래'가 무슨 소용인가. 내가 기대했던 한국행 비행기표는 결론적으로 내 표가 아니었다. 그것이 전부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거니까. 어짜피 못갈 한국이면 내가 속을 끓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스트레스로 수명만 단축될 뿐이다. 내가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이상 한국을 못간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까.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양자 사이에 전개하는 '행위' 혹은 '사물'의 삼자로 분별한다. 예를 들어 보시하는 행위(보시)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베푼다'고 생각한다. 물론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와 같이 삼자로 분별해서 베풀면, 거기에는 '나', '타자', '보시하는 행위' 가 의식되어, 그것에 강하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거만함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보시가 아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연기의 도리가 확실하게 작동하게 된다.
(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 中에서)

#mexico #kr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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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오셔서 하시고 싶은 거 다 하시고 ...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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