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리뷰]이탈리아에서 불어온 새로운 바람 <자전거 도둑>

in aaa •  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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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전후의 이탈리아. 아내와 아들(엔조 스타이올라)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 역시 실업사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직업 소개소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던 중 그는 벽보 붙이는 일을 찾게 된다. 자전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전거가 없는 안토니오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에 감격한 그의 아내는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잡히고 자전거를 구해온다. 덕분에 벽보 붙이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안토니오는 출근 이틀째 벽보를 붙이던 중 누군가로부터 자전거를 도둑 맞는다. 졸지에 다시 실업자가 된 그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기 위해 로마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비슷한 모양과 색의 자전거를 발견하면 유심히 지켜보지만 그의 자전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참을 찾았을까. 자신의 자전거를 훔친 도둑을 찾아내지만 그의 자전거는 사라진지 오래다. 더이상 자전거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한 안토니오는 홧김에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다 잡힌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은 그는 아들과 함께 좌절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자전거 도둑>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장만한 자전거를 도둑 맞은 아버지가 그의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다시 찾기 위해 로마 시내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이야기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침체기의 이탈리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네오리얼리즘과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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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으로 깊은 수렁에 빠진 이탈리아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1945년작 <무방비 도시>는 지하에 있는 레지스탕스 조직이 로마를 점령한 독일 나치에 대항하면서 벌어진 실화를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서슬 퍼런 시대의 공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백색 전화 영화’(가난한 이탈리아의 사회 분위기와 달리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흰색의 전화기를 들고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백색 영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나의 장르처럼 쓰인 용어다)와 작별을 고하고 네오 리얼리즘이 등장을 알렸다. 네오 리얼리즘은 시대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그것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흐름을 뜻한다. <무방비 도시>의 개봉 전후로 비토리오 데 시카는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1942)를, 루키노 비스콘티는 <강박관념>(1943)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탈리아의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회를 현실적으로 담아내고, 잘못된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 새로운 바람은 이탈리아 영화를 세계영화계의 전면에 옮겨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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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리얼리즘의 등장은 당시 이탈리아 영화의 여러 형식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영화인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이 설치된 대형 세트장에서 벗어나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통제되지 않는, 아니 실제 거리의 풍경 속으로 카메라가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인공적인 조명 대신 자연광만으로도 촬영하는데 충분했다. 지가 베르토프가 카메라를 들고 구 소련의 도시 이곳저곳을 촬영해 당시 사회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가 그랬듯이 말이다. 과장되고 양식적인 연기를 보여주는데 익숙한 배우 대신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비전문 연기자를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등장하게 될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비롯한 미국의 뉴시네마 운동, 일본, 한국, 이란, 중국 등 아시아 여러 지역, 동유럽의 리얼리즘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걸 보면 네오 리얼리즘 영화는 확실히 관습을 깨는 변화의 바람이었다.
어쨌거나 <자전거 도둑> 역시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여러 형식적인 특징을 지닌 영화였다. 아버지 안토니오와 아들 부르노, 부자가 도둑 맞은 자전거를 찾기 위해 배회하는 상점, 시장, 광장, 자전거 가게 등 여러 공간은 당시 로마 시내에 실제로 있었던 장소다. 이 영화에서 스튜디오 촬영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다. 그리고 안토니오를 연기한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공장의 노동자이고, 부르노를 연기한 꼬마 엔조 스타이올라는 거리의 부랑아였다. 안토니오의 아내를 연기한 리아넬라 카렐의 실제 직업은 기자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비전문 배우가 연기했다. 데 시카가 비전문 배우의 기용과 관련한 고집을 드러낸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55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자전거 도둑>을 제작하기 위해 오랫동안 제작자를 찾았지만 결국 이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한 미국인 제작자가 제작을 제의했다. 주인공으로 케리 그랜트를 써달라는 조건과 함께.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꽤 재미있는 일화인데, 로케이션 촬영과 비전문배우의 기용 덕분에 <자전거 도둑>은 이탈리아의 암울했던 현실과 그것으로 인해 자전거 도둑이 될 수밖에 없는 실업자의 안타까움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앙드레 바쟁은 자신의 저서 <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자전거 도둑>을 두고 “순수영화의 새로운 등장이라 할만하다. 배우도, 이야기도, 연출도 없다. 그것은 영화가 더 이상 미학적 환상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매체가 되었음을 뜻한다”고 평했다.
<자전거 도둑>을 포함한 <구두닦이>(1946), <밀라노의 기적>(1950), <움베르토 D>(1952) 등 비토리오 데 시카의 초기작, <흔들리는 대지> <벨리시마> 등 루키노 비스콘티의 여러 작품, <전화의 저편>(1946), <독일 영년>(1947)등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여러 영화는 네오 리얼리즘의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감독으로 알려져있는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배우이기도 하다. 1910년대부터 아역 배우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카메리니 감독의 <악당들>(1932)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린 뒤 1975년 에토레 스콜라 감독의 <우리는 너무 사랑했다>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여편에 출연했다. 배우와 가수로 활약한 그를 두고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탈리아 센티멘털 코미디의 대표적인 스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비토리오 데 시카의 이력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일단 네오 리얼리즘의 출발이면서 작가 체사레 차바티니와의 협업의 출발을 알리는 시기.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1943)를 비롯한 여섯 편의 작품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자전거 도둑>을 포함해 <구두닦이>(1946) <밀라노의 기적>(1950) <움베르토 D>(1952) 등 그의 대표작이 만들어진 1946년부터 1952년 사이의 시기가 두 번째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거머쥐게 해 준 <두 여인>(1960)을 비롯한 <나폴리의 황금>(1954) 등 총11편의 작품이 만들어진 1953년부터 1965년까지의 시기가 세 번째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1966년부터 1974년까지가 마지막 시기다. 1971년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핀치 콘티나가의 정원>(1971)을 제외하면 대중들에게 뚜렷한 각인을 준 작품은 없다. 크게 네 시기로 구분했지만 감독으로서 그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건 작가 체사레 차바티니와의 협업일 것이다. 데 시카와 차바티니는 23년 동안 총3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협업의 과정에서 누가 주도적으로 움직였는지, 누구의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논할 때 차바티니라는 작가를 빼놓을 수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김성훈

영화정보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람베르토 마지오라니, 엔조 스타이올라, 리아넬라 카렐, 포스토 구에르조니 등

*<자전거 도둑> : https://www.themoviedb.org/movie/5156-ladri-di-biciclette?language=en-US
*평점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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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years ago (edited)

배우들 까지 완전 짠한 리얼리즘이네요 ^^ 잘 봤습니다.
씨네님 첨뵙고 팔로 해요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