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의사가 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은 학술서적이 아니다. 나는 그런 책을 읽을 능력이 없다.) 개인적으로 의사들에게 좋은 기억이 없기도 하지만(가족을 병원에서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대개 공감할 것이다), 그보다는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를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에 반감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의 비참함을 장황하고 상세히 묘사하는 글을 써서 공개하기도 했다.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고된지 제발 알아봐달라며 고고한 척 써내려간 한 전문직 관종의 글에서 타인의 불행으로 밥벌이하는 자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염치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를 촬영하여 지탄받은 어느 사진가가 떠올랐다. 그토록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여 그들은 대체 무엇을 성취하려는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중에 혹시 병원 갈 일 있으면, 이 분을 찾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글을 배반하는 필자야 무수히 많지만, 그래도 이 책의 저자만은 언행이 일치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생길 것이다. 차분한 말투와 사려깊은 시선 탓에 나도 모르게 나이 지긋한 분일줄 알았는데, 책 중간에 자신의 나이가 40대 중반이라고 언급하여 40대 후반인 독자를 부끄럽게 했다.
책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어떤 남자가 죽음에 임박했다. 가족은 없다.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사업한다며 형의 돈 2억 원을 빌렸다가 떼먹고 잠적했다. 어느날 동생이 형의 소문을 듣고 병실을 찾아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죽음을 앞두고 재회한 형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형은 간신히 입을 떼고 동생에게 어렵게 한마디 꺼낸다. 과연 뭐라고 했을까? 양서이니 사서 읽어보길 바라며 이만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