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칸느 영화제의 세 갈래 길steemCreated with Sketch.

in canne •  6 years ago  (edited)

칸느 영화제의 세 갈래 길
스테판 들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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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칸느의 두 페스티발들은 세련되지 못했고 우리의 결산 보고서도 그랬다. 권위적인 분위기, 사도-마조히즘적이고 지나치게 많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영화들이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호에서 대부분의 영화가 이 페스티발을 빛내는 명작 (<엉클 분미>나 <홀리 모터스>같은) 하나 건지지 못한 수준에 머무르는 이 영화 봤니라고 할 수 없는 <아무르> 혹은 <아델의 인생>같이 이전에 황금종려상을 KO로 받은 승리자 없는 더 평준화된 수준의 경쟁을 제시하는 것이 이번 호에서 다루려는 바는 아니다. 영화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영화가 없다면 절대 완벽할 수 없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뉘리 빌주 세일랑의 <윈터 슬립>이 이전 두 해보다 더 엄숙한 영화( le cinema pompeux )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모두가 여성 심사위원장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이 영화는 가장 익명적이라는 경쟁에서 이긴 가장 마초적인 영화라는 사실은 또한 무척이나 흥미롭다. 부인할 수 없는 지적인 능력과 차가운 유머를 가진 영화 <윈터 슬립>은 사랑 없는 그 문제가 해결되는 데 있어서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작은 파벌 간의 난투극이 나오는 매우 천재적인 베르히만적 영향 아래에 있는 영화이다. 모든 이가 그것을 지나치지만 은밀한 불처럼 무로 돌아가는 것은 여성이다. 두 편의 미국영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행성으로 가는 지도>, 베넷 밀러의 <폭스 캣쳐> )는 세일랑인가 돌란인가라며 모두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작품들 직전에 우리를 정복한다. 수상 장면에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던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자비에 돌란만큼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리라 믿었던 사람은 세일랑밖에 없었다. 질 야콥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해인 올해는 트로피를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이에게 건네주며 신인을 발굴해내는 데 있어서 영리한 그의 재능에 경의를 표하게 했다.

칸느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초인종을 누르기를 그치치 않지만 신인 발굴의 공백에 있다. 누가 비난하겠는가? 프로그래머들이 너무 소극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러할 만한 영화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인가? 만약 그러한 경우라면 왜 그렇게 만드는 것을 계속하지 않는 것일까? 미로슬라브 슬라보시피스키의 <부족>과 마리 아마추켈리의 <파티 걸>, 가장 주목했던 데뷔작 두 편에서 끌레르 뷔르헤와 사무엘 테스는 영화에 귀착되는 두 편의 상상물들을 재현했다. 먼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쇼크 필름 의 수정 버전이지만 자신의 양심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이미 세 번의 황금종려상을 자산으로 삼는 장르인 "필름 드 살로( film de salauds 추악한 영화 )"가 있다. 이 루마니아의 유명인을 동경하는 사람은 승리자의 슬픈 태도를 가졌기에 (같은 주에 있었던) <부족>을 선택하지 않은 티에리 프레모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대중이 세상에서 가장 마조히스트적이 되는 깐느 영화제에서 누가 자막처리가 안 되어 귀머거리-벙어리가 되는 성과 폭력의 짐승같은 소란을 두 시간 동안이나 참으려 하겠는가?
두번째로 집단 환각을 다룬 또 한편의 영화, <파티 걸>은 "실존 인물"주의의 영화제가 쇼윈도우에 가장 진열하고 싶어했던 자연주의의 수많은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셀린 시아마의 (껭젠느(감독 주간)에 초대된) <소녀들의 무리 >의 "프랑스적 반영"인 이 영화는 또 다른 예를 제공하면서 서사적 도식들을 강화하는 데 그쳤는데 결코 도달하려 했던 곳으로 가는 모험을 하지 않은 채로 미리 씹어서 주기 때문에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외국에서 상을 가져갈 수 있는 경우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프랑스적 기질을 사랑하는 순수 아카데미즘이다. 프랑스 영화는 이 영화제의 분열에서 나온다. 한편으로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1990년대 나타난 영화작가들이 제안한 다양한 해결 방안에 있어서 비오픽 (보넬로), 약자(페랑), 느와르 영화(아말렉)의 영화의 풍부함-이 세가지는 껭젠느에 소개된 브루노 뒤몽의 <릴 퀸퀸(쁘띠 껭껭)>이라는 폭탄으로 인해 여전히 풍부해진 프랑스영화의 멋진 지도를 그린다. 또 다른 한편에서 깐느 영화제는 악당 영화의 유일한 라이벌 장르가 되는 <앙트르 레 뮈흐>, <아델의 인생>으로 두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다르덴 형제의 두번의 승리를 더해야 하는 자연주의의 전당으로 머물고 있다.
이 두 개의 길보다는 언제나 2010년과 2011에 수상한 환영을 보며 시적인 영화들, 올해 (아직도 고다르!를 빼고는) 인용될 정도의 권한을 갖지 못한 <엉클 분미>, <트리 오브 라이프>의 세 번째 길을 선호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기다린다.

2014년 6월 까이에 뒤 시네마 706호

(프랑스어 원문)

Les deux derniers festivals de Cannes avaient ete un peu rudes et nos compte rendus aussi. L’air autoritaire, sado-maso et phallocrate de trop nombreux films devenait franchement incomprehensible. Ce n’est pas le cas pour cette edition, qui presentait une competition moins m’as-tu-vu et de qualite plus homogene, la plupart des films etant a leur place meme si aucun chef-d’œuvre n’est venu illuminer le festival (comme Oncle Boonmee ou Holy Motors), ni aucun vainqueur par KO avant-­palmares (comme Amour ou La Vie d’Adele). Un festival n’est pas tout a fait complet s’il lui manque ces films ≪  uniques  ≫, qu’ils soient inouis ou incontournables.
L’ironie est que la Palme d’or soit allee a un film qui rappelait davantage le cinema pompeux des deux annees precedentes  : Winter Sleep de Nuri Bilge Ceylan. Il est tres savoureux aussi, alors que tout le monde reclame des femmes presidentes du jury, que ce soit incognito le film le plus macho de la competition qui l’emporte. Winter Sleep, avec une intelligence indeniable et un humour a froid, decrit sur un mode sous-bergmanien – sans l’amour et le genie de Bergman – de petits reglements de comptes a n’en plus finir. Tout le monde y passe, mais comme il faut bien un bouc emissaire, c’est la femme qui se retrouve in fine annihilee. Meme si deux films americains (Maps to the Stars de David Cronenberg et Foxcatcher de Bennett Miller) nous ont conquis, a la veille du palmares comme tout le monde on pronostiquait  : Ceylan ou Dolan  ? Il n’y a que Ceylan qui croit avoir eu la Palme, tant Xavier Dolan, irresistible lors de la remise sur scene de son prix du jury, lui a ravi aux yeux des (tele)spectateurs. Pour la derniere annee de Gilles Jacob a la direction du festival, il aurait ete plus malin de saluer son talent de decouvreur en remettant le trophee a un jeune homme de 25 ans.
Car le gros probleme de Cannes, et on n’a pas cesse de tirer la sonnette d’alarme, demeure l’absence de decouvertes. Qui blamer  ? Les programmateurs sont-ils trop timides  ? Ou bien ces films n’existent-ils plus  ? Si c’est le cas, pourquoi continuer de faire comme si  ? Les deux premiers films les plus remarques, The Tribe de Myroslav Slaboshpytskiy etParty Girl de Marie Amachoukeli, Claire Burher et Samuel Theis representent les deux imageries auxquelles est reduit le cinema. Premierement le ≪  film de salauds  ≫, devenu un genre en soi, version actualisee du film-choc, mais avec une conscience de soi plus haute, le genre ayant deja trois Palmes d’or a son actif (Mungiu, et deux fois Haneke). Merci a Thierry Fremaux de ne pas avoir selectionne The Tribe (le film etait a la Semaine) car ce wannabe ­roumain avait des allures tristes de ­winner. Mais en dehors de Cannes, dont le public est devenu le plus maso de la terre, qui voudra s’infliger deux heures bestiales de baston et de sexe entre des sourds-muets non sous-titrees  ? Deuxiemement  : Party Girl, autre hallucination collective, n’est qu’une enieme variation du naturalisme, avec caution ≪  vraies gens  ≫, que le festival aime mettre en vitrine. Ce cinema ≪  Reflets de France  ≫, dont Bande de filles de Celine Sciamma (a la Quinzaine) a donne un autre exemple, est accueilli triomphalement parce qu’il ne fait que conforter des schemas narratifs premaches sans jamais s’aventurer vraiment la ou il pretend aller. C’est du pur academisme exportable aux etrangers qui aiment la Qualite francaise aux airs de liberte. Le cinema francais sort schizo de ce festival. D’un cote il y a les diverses solutions proposees par les cineastes apparus dans les annees 90 pour sortir du naturalisme  : l’ampleur du biopic (Bonello), la fable (Ferran) ou le film noir (Amalric) – les trois dessinant une belle carte du cinema francais, encore enrichie par la bombe P’tit Quinquin de Bruno Dumont a la Quinzaine. Et d’un autre cote, le festival reste le temple du naturalisme, seul genre rival du ≪  film de salauds  ≫  : deux palmes a son actif (Entre les murs, La Vie d’Adele), auxquelles il faut ajouter la double victoire des Dardenne. On preferera toujours a ces deux voies une troisieme, celle des palmes de 2010 et 2011, Oncle Boonmee et The Tree of Life, les films visionnaires et poetiques, qui n’ont pas trouve droit de cite cette annee (excepte Godard, encore lui  !). On attend la vraie libe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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