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항 대전 방어 전투
7월 17일의 정황
적의 대전 공세가 점차 활발해지자, 미군 제24사단은 사단 지휘소를 영동으로 이동하고, 사단 군수기지를 김천에 두었다. 그리고 제19연대를 대전 서방 유성에 배치하게 하고 연대 지휘소를 대전으로 이동시켰으며 제34연대를 옥천~대전선에 배치, 이 지구를 확보하게 하고 동 연대 지휘소를 옥천으로 이동시켰다.
한편 제21연대로 하여금 대전 서남방 운산 지구에 포진시켜 아군 좌측으로 우회 침투하는 적 제4사단 및 제6사단 일부에 대하여 대비하게 하였다.
이날 연합군 항공기 B-29 편대는 조치원 조차장(操車場)을 맹폭격하여 파괴하였다.
7월 18일~19일의 정황
논산 서방에 있는 적 약 2개 대대는 한국경찰대의 공격으로 많은 손해를 입고 18일 현재 논산으로 집결중에 있었다.
그러나 이 방면에는 미군은 한 명도 없었으며 한국경찰대만이 교전 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 이날 논산은 완전히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미군 제24사단은 이날부터 대전 시가전 태세를 취하기 시작하였고 제19연대 및 제21연대를 착착 대전으로 집결시켰으며 그중 일부를 옥천과 금산으로 전진시켰다.
논산 방면의 적 일부는 여산을 지나 과리(裹里) 방면으로 침입하였으며 7월 19일 08:00 대전을 포위하려던 적의 선봉 부대는 이미 대전 서방 유성까지 진출하였다.
대전의 위기가 시시각각으로 절박해짐에 따라 미 제24사단은 계속하여 사단 지휘소를 영동에 두고 예하 각 연대로 하여금 대전 사수를 지시하였다.
제21연대는 대전 서방, 제19연대는 대전 정면을 각각 담당하고 양 연대 지휘소를 공히 대전으로 이동시켰다.
한편 제34연대는 옥천의 한국경찰대와 더불어 계속 옥천~대전선을 담당하였다.
7월 20일의 정황
금일 아침 07:00 적의 도하 선두부대는 전차 수대를 앞세우고 대전 서북방의 비행장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미 제19연대는 바주카포를 맹사하여 일시 침공하는 적을 격퇴하였으나 적의 후속주력 부대는 속속 침입을 계속하여 대전시 정면 및 서방으로부터 일제히 대전시에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날로써 대전시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으며 미군 제24사단은 충북지구 옥천~영동~황간~추풍령 선을 따라 김천 방면으로 후퇴 철수하였고 연합군 전투기 편대는 항공모함에서 출동하여 조치원 및 강경의 조차장에 기관소사를 맹렬히 가하여 교량 수 개소를 파괴하였다.
제4항 딘 소장의 실종
미군 제24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은 대전 방면에서 최후까지 예하 부대를 지휘하면서 예의독전(銳意督戰)하고 7월 20일 사단 후위 부대를 솔선 자신이 지휘 분투하여 최후의 시각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수병을 거느리고 몸소 바주카포를 사격하여 혈전 끝에 실종되었다.
후일에 알려진 바이거니와 딘 소장은 그 후 단신 대전시가를 이탈하여 남하하던 중 지리에 정통치 못하여 진안 일대를 방황하고 언어의 불통, 기타 제반 악조건 하에서 취식하지 못하여 공복과 더불어 심신의 피로는 극도에 달하였다.
단기 4283년 8월 25일 딘 소장은 전북 진안군 정천면 구룡리 원세동 부근에서 한 한국인을 만나 동행, 남하중 동군 상전면 운산리 원송대 부락 북방 361고지 부근 도로상에서 전기 한국인의 밀고로 인하여 괴뢰군 내무서원에게 체포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