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항 맥 장군의 전선시찰
단기 4283년 6월 28일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한강 이북 선에 투입되었던 국군 주력이 사실상 붕괴됨에 이르러 자못 중대한 국면에 처한 한국전선을 시찰차 29일에 국련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내한하여 한국 국민과 용전분투하는 장병의 사기를 고무하였다.
이에 이어 동 원수는 7월 20일 동경에 있는 국련군 총사령부에서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한국 전선에 있어서의 최대의 위기는 이미 지나갔으며 작전의 제1단계가 종료되었음을 성명하였다. 즉 한국에 있어서의 미군의 작전은 미 8군 주력의 전개 완료에 의하여 그 제1단계를 경과하였으며 따라서 북한괴뢰군은 승리할 기회를 완전히 상실한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부록 제14 참조) 이어 미 제8군과 극동공군 및 미 제7함대의 용전을 칭찬하고 국련군의 획기적인 행동을 지지하는 바이며 한국의 헌법상의 주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주둔하여 신의 가호와 더불어 싸울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또한 동 장군은 미 제2사단 및 미 제1해병사단, 미 제3사단의 주력이 한국에 상륙하기 수일 전인 7월 27일에도 한국을 방문하여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과 미 제5 공군 사령관 패트리치 소장과 요담하고 한국 전선에 있어서의 주력 상륙에 따르는 본격적인 반격전의 작전을 숙의하였던 것이다.
제3항 국련 각국의 한국파병 결정
북한괴뢰군의 불법 남침이 세계에 보도되자 민주 진영은 악연(愕然)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일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불법적 일대 기습에 대하여 미국은 즉시 육해공군 병력을 동원하여 북한 괴뢰 침략군의 격퇴에 궐기하였으며 6월 27일에는 국련 안보이사회에서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침략자에 대한 공동제재를 결의하여 사상 초유의 국련군 출동을 보게 된 것은 제4편 제2장 제1절 및 제5편 제1장 제1절에서 각각 기술한 바와 같으며 이러한 공동 목적하에 공동의 적을 격멸하기 위하여 이미 미국은 위시한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는 상륙부대 파견의 신청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7월 18일에는 국련가맹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 기타 20개국 대표들이 워싱톤에서 회합을 하고 한국 출병에 관하여 협의한 바 있었다.
세계 민주 우방으로부터는 열렬한 원조 제공의 신청이 지속함에 이르렀고 이미 미국의 육해공 3군을 위주로 영국의 해공군, 호주의 해공군, 프랑스의 해군, 네덜란드의 해군 필리핀의 공군이 용약 참전하였던 것이다. 지상군에 있어서도 7월 20일에는 벨기에와 볼리비아가 각각 원조를 국련본부에 신청하여 왔으며 7월 25일에는 터키도 파병의 결정을 통고하여 왔던 것이다. 익일인 26일에 뉴질랜드 수상은 동국의 포병대를 파한 하겠다는 결의를 국련본부에 통고하였다고 하원에서 언명하였으며, 7월 29일에는 인도가 야전병원의 파한을 국련본부에 통고하여 왔던 것이다. 한편 8월 1일에는 호주 수상이 약 1개 여단으로 추산되는 전투부대를 파한 하겠다고 미국 하원에서 언명하였으며, 자유중국은 약 33,000명의 병력 파견을 신청하여 왔던 것이다. 또한 8월 2일에 필리핀 대통령은 필리핀 증원군의 한국 향발 준비의 완료를 언명하는 등 자유민주 제국은 이와 같이 폭악 무도한 침략자 응징에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