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8월 17일 20:00부로 제1군단장은 전기 군대구분 중 수도사단 예하 제26연대를 제3군단에 배속시켰다.
이리하여 아군은 제2군단이 그 담당지구 내에서 적을 포착하고 특히 제6사단이 전술한 바와 같이 담당지구 우측에 주저항선을 확립하기 위하여 신령 지구로 이동을 실시하고, 있을 때 제1군단은 군단 정면에서 전면적으로 주저항선을 확립하기 위하여 8월 20일 06:00를 기해 공격을 감행하였다.(부록 제48 참조)
즉 제1군단 제3사단은 제1기에 있어서 포항시를 공격, 재확보한 후 (1224.3~1464)~(1234.3~1464)에 이르는 일반선을, 제2기에 (1221.8~1466.5)~(1238.1~1466)의 일반선을, 제3기에 (1223.2~1471.7)~(1236.3~1472.1)의 일반선을, 제4기에 (1224.7~1477)~(1236.2~1476.8)의 일반선을 공격 확보하게 한 다음 제5기에 있어서 (1224.7~1477)~(1234~1481)의 일반선을 공격 확보하게 하였고, 수도사단은 제1기에 기계시~(1212.8~1470)~(1223~1464.1)의 일반선을 각각 공격 확보한 후 제2기에 (1206.6~1475.5)~(1221.8~1466.5)의 일반선을, 제3기에 (1206.6~1475.5)~(1223.1~1471.1)의 일반선을, 제4기에 제3사단과 협조하여 (1206.6~1475.5)~(1224.7~1447)의 일반선을 공격 확보하게 하였고 제8사단은 수도사단과 협조하여 (1179~1481.1)으로부터 (1206~1470.7)의 일반선을 공격 확보하게 하였다.(부도 제39 참조)
그리고 이 제1군단 관하에 배속되어 있던 민기식 부대는 아 제2군단 지구의 증원부대로서 제1군단장 지휘 하를 벗어나 8월 19일 제2군단장 지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후 아 제1군단 정면의 적은 8월 25일~26일경 타 방면에서 증원을 얻어 병력을 증강하고 있었으며 특히 군단 우익 정면에서는 반격이 활발하였다. 이 반격은 주로 포항(1233.5~1461), 안강(1220~1455) 방면에 압력을 가하고 아군을 격파, 재침투를 기도하고 있었다.
한편 제2군단은 9월 3일 05:00까지 전면적인 역습을 감행하여 육본 작명 제157호에 지시된 A-A선(천평동 북방 3.2㎞지점의 266고지~군위군 효령면, 완곡동 북방~루곡동 1㎞ 북방 320고지~의흥 4.8㎞ 북방 324고지~청남산(590고지))을 연하는 선에 방어진지를 확보하려 하였다.(부도 제40 및 부록 제71 참조)
그러나 적은 9월 3일 미명을 기하여 아 국군 정면 각 전선에서 일제 공격을 개시하고 아 제1군단 정면에서는 영천~안강 도로까지 그 일부가 진출하였고 옥산리 남방 고지 일대에 적 1개 대대가 진출하여 영천~안강 간의 도로를 차단 시켰다. 군은 예비사단인 제7사단의 제3연대를 경주에 이동시켜 제1군단장 지휘하에 들게 하고 이 방면에 증원하였다.
아 제2군단은 동일 15:00 화산동(1178~1467)~722.8고지(1174~1467)~(1171~1468)~상목동(1168~1470)에서 적 약 2개 사단의 남침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날 16:00 육해공군 총사령관 정일권 소장은 전선의 상황에 대비하고자 해군 총참모장에 예하 해병대(2,700명)를 9월 5일 12:00까지 대구로 이동시킬 것을 명령하는 동시에 군 예비부대 제7사단 예하 기갑연대 고병 1개 대대를 경주로, 제8연대를 영천으로 급파하여 제1군단장 지휘하에 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