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의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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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과 이상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긴급출동 SOS 24> 시절 제보철에 재미있는 문구가 떴습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집’. 헌데 주소를 보니 서울의 서민 인구 밀집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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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 지 수십 년은 되었음직한, 그리고 그때로서는 꽤 내로라 부잣집이라 했을 만한 집이더군요. 70년대 동네 부잣집이었던 양옥집을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정원이 있고 붕어가 노니는 연못이 있고 높다란 2층 건물 위에 얹어진 지붕이 좌중을 압도하는. 그런데 그 정원의 나무들은 오랫 동안 관리되지 않은 듯 그 줄기와 가지들을 담장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있었고, 문틈으로 본 정원은 쓰레기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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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는 그 집의 담장 아래 차고 같은 공간에 세 들어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부부였습니다. 무슨 문제인가 하니 1차적으로 문제의 집 주인 할아버지가 수시로 전기를 끊고 물을 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수천만 원 손해도 보고, 할아버지가 정한 시간에만 물을 받아서 쓰고 있는 형편이었지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느냐고 아우성을 쳐 보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어요. 지구대에 가니 이럽디다. “할아버지 말씀이 내가 가게를 세 준 거지, 전기를 세 준 건 아니지 않느냐는 겁니다. 허 참. 할아버지를 잡아올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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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할아버지가 속된 말로 망녕난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자그마치 서울 법대 출신으로서 매우 명석한 두뇌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출동한 경찰관에게까지 몇 조 몇 항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을 법률적으로 방어할 줄 아는 할아버지라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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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양반이 왜 저런 쓰레기집에서 혼자 살아요? 말도 안돼. 서울 법대는 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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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뿐이에요? 집 안에 개 두 마리하고 닭 두 마리 키우면서 그걸 아들 딸로 부르면서 살아요. 얼마전에 닭이 알을 낳았을 때는 손주 나왔다고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그리고 집안 방 하나가 전부 개똥밭이에요 개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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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조합이 안되는 이 요령부득의 증언들 앞에서 황망해 하던 차에 마침 대문 밖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지요.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역시 아는체 깨나 하시면서 현학적인 얘기를 즐기시기에 장단도 맞춰 드리면서 집 더러운 얘기를 끄집어 내 보고자 중국의 고사를 들먹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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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질투 많은 황후 하나가 남편이 죽고 아들이 황제가 된 후 남편의 후궁을 팔 다리 잘라서 변소에 넣었는데 아들 황제가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웠다거든요. 어머니의 잔인함 때문에요. 어쨌든 인간이 돼지 우리나 개똥밭에서 살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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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아버지가 청산유수로 말씀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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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후와 척부인 얘기로군. 그 황제는 혜제였고 말이지. 그 인간돼지는 인저, 인체 (人猪·人彘)라고 하네. 척부인의 아들은 유여의라고 하는데 혜제가 보호하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여후가 짐독을 써서 죽였지..... 그리고 혜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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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오 입 딱 벌어지는 순간. 세상에 단어 하나, 인물 하나 헛갈리지 않고 전한 시대의 역사를 줄줄 읊어대는데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습니다. 한 무제쯤에서 내가 제동을 걸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의 열변은 삼국지를 관통하고 수호지 시대까지도 내리밀었을 겁니다.내친김에 할아버지 집에 있다는 영인본 중국 24사를 구경하고 싶다고 조르자, 동사무소 직원이 한 번 찾아왔을 때를 제외하곤 누구도 집에 들인 적이 없다는 할아버지께오서 그럼 들어가볼까 하고 앞장을 서십니다. 옳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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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관을 열자마자 저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고 말았어요. 실내에서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워진 날이었지만 쓰나미같은 개똥 냄새와 닭똥 냄새가 후각 세포를 융단폭격한 다음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데에야 재간이 있어야지요. 정말로 방 하나가 개똥천지였어요. 방안에서 키우는 개가 그 방에 똥을 싸둔 것이 발 디딜틈 없이 그득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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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책은 헌책방처럼 쌓여 있었지만 이미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어요. 냉장고에는 시커먼 때가 문신처럼 앉았고 싱크대에는 날만 따사해지면 구더기가 기어나올 것 같았으니까. 왜 이렇게 안 치우고 사세요? 하니 “남아당소제천하(男兒當掃除天下)라고 남아라면 천하를 닦아야지 방구석을 닦고 있어야 되겠냐.” 하는 얼토가 당토되는 문자를 쓰십니다. 왜 전기를 끊고 물을 끊느냐고 집요햐게 물었더니 요령부득의 답변을 하다가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화로 돌아가요. “그건 수도가 좀 오래 되어서.,... 아 그건 그렇고 소동파가 말이지. 왕안석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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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기행 때문에 역대 세입자들은 이를 갈고 손해를 보면서 집을 나가야 했답니다. 이런 문제로 형사고소해 봐야 겁먹을 할아버지도 아니고, 민사소송은 알다시피 승소 찾아 삼만리의 여정이잖아요.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품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들린 거지요. 그리고 아이들도 엉덩이 투닥거리고 겨드랑이에 손 넣고 끌어당기는 할아버지가 기분 나쁘다는 증언을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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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가족들도 살았지만 이미 수십년 전부터 이 할아버지의 기행과 괴벽과 성질 때문에 발 끊은지 오래. 병원에 진단을 받아 봐야 헸지만 모시고 갈 가족은 없었습니다. 하루는 집에 들어가 2차대전사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고 구데리안과 롬멜의 소싯적 이야기는 내 어디 가서 못들을 겁니다만 그걸 원서로 줄줄 꿰고 있었.....) 말을 꺼냈습니다. 병원 한 번 가 보시자고. 그랬더니 이 할아버지 흔쾌히 그럴까? 그러십니다. 그러더니 “자네가 밥 한 번 사면 그러지.” 하고 웃으시더군요. 그래서 얼씨구나 나가자 하니 밖은 춥고 여기서 탕수육을 시켜 먹자는 겁니다. 자장면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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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왔던 후배는 기겁을 했고 저 역시 오만상이 찡그려지는 걸 가까스로 참았습니다.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켰지요. 배달통 들고 온 배달원은 입을 딱 벌렸습니다. “여기서.... 드세요?” “네 네. 빨리 가셔요.” “저기 그릇은 대문 밖에 내놓으시면 됩 니다. 꼭 내놔 주세요.” (여기 발 디디고 싶지도 않은 거 아니까 빨리 가세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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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 그득하고 썩은내 등천하는 집 안에서 할아버지와 저는 (조연출은 끝내 못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먹어야 했죠.)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의외로 맛집이었습니다. 입 안에서는 만족감이 채워지는데 후각으로는 구역질로 뇌를 자극하니 여기서는 가히 원효 대사에게 기댈 밖에요. ‘배고프다 배고프다. 해골물보다야 백만배 낫잖아. 개똥을 먹는 것도 아닌데.... 나무아미타불’ 나중에 후배가 찍은 영상을 보니 방송불가 수준의 기괴함입니다. 개똥천지에서 분주히 젓가락질을 하는 노인과 청년. 그 그림은 방송에 못썼습니다. “PD가 너무 맛있게 먹잖아. 이상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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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도 구역질 나요. 선배님 존경합니다. 책임감 때문에 그러신 거잖아요.”
“응? 뭐 그렇긴...... 근데 맛있더라 그 집 언제 우리 가보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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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득 끝에 일단 할아버지를 진단받게까지 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놀랍게도 진단 결과는 ‘치매’였습니다. 언젠가 얘기했듯 전반적으로 기능이 저하되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알츠하이머가 아닌, 혈관성 치매, 즉 다른 기능은 멀쩡한데 특정한 부분만 망가져서 자기 자신이나 주위 사람 모두가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병이 이미 진행 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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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놀라운 기억력과는 별도로 할아버지의 뇌 기능은 이미 망가져 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성적인 집착이나 주변 정리 능력의 와해 같은 증상은 의외로 전형적인 뇌 손상의 결과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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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주선해 보려고 가족들을 설득했으나 할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데 진절머리가 난 가족들은 그야말로 “그렇게 살다가 가게 놔 둬라.”는 일종의 동맹을 맺고 있는 듯 보였지요. 심지어 완강한 노인들 대신 젊은 조카들에게까지 읍소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조카가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지금도 암담하게 눈앞을 콕콕 찌르네요. “삼촌의 문제는 결국 삼촌이 풀어야 할 거예요.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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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자신이 엘리트임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 앞에선 열변을 토했으나 그 지식을 인정하지 않거나,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과는 담을 쌓았고, 그 방어와 고립 속에서 자신의 관심이 꽂힌 지점에만 재차 겁나는 삽질을 퍼부으며 살아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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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가상한 자와 들어 주지 않는 무도한 자로 나뉘었고, 당연히 줄어들고 차제에는 없어진 ‘가상한’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부재를 한탄하면서, ‘무도한’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폐쇄시켜 왔다고나 할까요. 치매는 사실상 부차적인 것이었고 머리 검을 때부터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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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개똥밭에서 먹은 튀김옷 잘 입혀 바싹 고루 잘 튀긴 탕수육의 육즙과 감칠맛 나는 옛날 짜장만 그대로였던 짜장면의 맛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그 할아버지와 비슷한 병통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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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만의 논리와 주장으로 성벽을 쌓고 그 위에서 낙인의 화살을 퍼부으며 그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정당함을 추상같이 밝히는 풍경, 너는 페미고 너는 메갈이며 너는 똥팔육이고 너는 일베고 너는 조빠고 너는 조까고 너는 2차가해 너는 무례한 하여간 세상의 거의 모든 일로 갈라지고 ‘진영’이 성립되고 거기에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고 다른 쪽을 배타하는 모습 말입니다. 뭐 저도 한국 사람의 일원으로 다르기야 하겠습니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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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할아버지의 뇌는 망가져 개똥 천지를 인식하지 못했고 거기에서 먹고 자고를 해도 일점 불쾌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배는 그 안에서 물조차 먹지 못했지요. 거기서 배부르게 먹은 탕수육과 짜장면의 맛은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입에는 달지만 비위에 역한.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먹고 있는가. 왜?”를 꾸준히 질문 던지게 만들었던 그날의 중국 음식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