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도 제대로 몰랐지만 마냥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른 흉내도 내봤다.
어른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내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날 인정을 해줫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전보다 천천히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불현듯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어른이 뭐지?'
순수함을 포기하는 건가, 낙관과 비관을 되풀이하면서 현실에 무뎌지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다양한 가치를 획득해나가는 걸까, 꿈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하거나 반대로 메워나가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다 알아버리는 것?
'미라클 벨리에' 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웬만한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사춘기 소녀 폴라의 성장기다.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폴라는 세상과 가족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부모 대신 가축의 사룟값을 흥정하고 장터에 나가 치즈를 판매하며 생계를 돕는다.
폴라가 교내 합창단에 가입하면서 이야기가 묘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합창단 교사의 권유로 폴라는 파리에 있는 합창 학교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남겨둔 채 혼자 도시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한 폴라. 그려는 비상이라는 곳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떠나요. 사랑하지만 가야만해요. 도망치려는 게 아니랍니다. 날개를 편 것뿐이죠."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폴라처럼 낯선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작별이든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별리든 우리 인력으로 감히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겪어야만 한다.
이때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서성이기보다 눈물을 머금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제 발로 땅을 박차고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사실 어른이 되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른으로 자라야 한다는 발상은, '어른인 사람이 어른이 아닌 사람보다 무조건 우월한 존재'라는 조금은 헐거운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어른이 꼭 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된 어른은 "나 어른이야!"라며 어른 대접을 해달라고 요규하지도 않는다. 그냥 어른답게, 그답게, 그녀답게 행동할 뿐이다.
'어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진짜 내'가 되는 것이 아닐가?
고민을 해결하진 못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묽게 희석할 때, 꿈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꿈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지켜낼 때 우린 '어른'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울타리 저편에 남겨진 소중한 사람과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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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된다"는 건 그것을 "~이해한다" 이지 않을 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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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벨리에 영화 진짜 좋아해요~ 수화하면서 부르는 곡, 비상도 정말 아름답구요.. 나다운 사람이 되도록 응원해주고 나다운 사람을 그대로 긍정해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는 게 어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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