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교회와 예배보다 중요한 것

in ko-kr •  7 years ago 

af6f0282808ae4a31fa23b5796818207.jpg

  1.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장 6절

  2. 성전의 건축 과정에서 민중을 향한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했다. 성스러운 곳을 짓기위해 성스럽지 못한 과정을 거쳤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민중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성전은 지배자들에게 약탈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구조적 부조리는 예언자들이 사회적 비판과 성전재건의 예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3. 성전재건의 예언을했던 예언서 학개의 2장 10-14절을 살펴보면 학개가 제사장에게 두 가지를 질문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첫 번째 질문은 '제사장이 만일 희생 제사에 드릴 제물로 택한 고기를 들고 가다가 그의 옷자락이 떡이나 포도주나 기름 같은 다른 음식물에 닿으면 그 닿은 음식물은 거룩한 음식과 간접적인 접촉을 했으므로 거룩한 것이 될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거룩은 문자적인 의에서 전염성을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유사하나 정반대의 질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체와 접촉을 했다던가 하는 이유로 인해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됐다면, 그리고 그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음식물들을 만졌다면, 그 음식물들이 그러한 접촉에 의해 부정해질 것인가?' 였다. 여기서 제사장은 부정하다고 대답한다.

  4. 거룩한 것은 전염되지 않는다. 즉 12절에서는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에 닿았다고 해서 그 부정한 것이 거룩하게 되지 못하며, 13절에서는 부정하여진 것은 다른 것이 닿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부정의 전염성을 말하고 있다. 보통 이 구절의 교훈은 사마리아와의 관계에 대한 구절로 이해되어져 왔다. 부정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게 될 경우 거룩한 성소를 더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좀 더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2절은 학개가 잘못된 대상에 대해 실제적인 지적이다. 거룩한 것은 전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거룩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절은 두 번째 질문이며, 그 답은 부정한 것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14절은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질문했던 목적을 나타낸다. 그들은 완벽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즐겨 행하는 자와 같았다. 그들은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꾸미기를 즐겨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자세는 결국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에서도 의식적으로는 완벽했을지 모르나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식적인 희생 제사보다 하나님의 윤리가 실행되는 생활이었다. 인애와 자비가 동반되지 않은 희생 제사는 희생 제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제사의식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불의였다. 학개가 보았던 불의의 내용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빙자하여 백성들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너희가 많이 심었으나 적게 거두었으며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흡족하지 않으며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품삯을 받아도 구멍 뚫린 지갑에 넣는 격이 되었다. 학개 1:6)

성전과 제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 사랑, 물음과 들음, 성전과 제사 등 세 가지는 신명기적 역사가들이 찾아낸 역사 이해의 바탕이지만, 앞의 둘은 성전과 제사의 '전제'로서 이것들의 존재와 의미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과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 니다." (인 과 의 그리고 지 : 반성의 창 김상기 4p)

신명기적 역사가들이 찾아낸 이 역사이해의 '수직적 축' 말고도 '수평적 축'도 있는데 역사가들은 다윗의 정치를 사무엘하 8장 15절, 말씀으로 평가하면서 그 축의 구성요소를 말한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리며 모든 백성을 위해 언제나 공정하고 옳은 일을 하였다. (사무엘하 8:15)

모든 백성들을 위해 언제나 공정하고 옳은 일을 했다는 것은 다윗이 평화와 평등을 추구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진다. 평화와 평등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연대와 그들의 해방을 위해 실천하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즉 약자들의 개개인 삶에 전혀 와닿지 못하는, 고난받는자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성전과 제사는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언기의 나오는 성전과 제사는 당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정의가 전제되긴 커녕 오히려 그들을 약탈하고 착취하였으므로 의미가 없을뿐만아니라, 그 자체로 매우 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와 예배는 어떠한가?
우리가 가는 교회는 성전으로서만 머물고 있진 않은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수직적 축으로만 진행되고 있진 않은가?
정녕 어떠한가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