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 _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지난 총선 직전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이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당법상 등록한 정당이 아니므로 ‘당’이라 칭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총선 전날인 4월 14일까지 ‘당’의 이름으로 나간 일체의 표현물을 삭제할 것까지 요구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요구는 정당법 제41조 제1항에 따른 절차였다. 해당 조항의 규정은 이렇다.
제41조(유사명칭 등의 사용금지) ① 이 법에 의하여 등록된 정당이 아니면 그 명칭에 정당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하지 못한다.
아스팔트 투쟁 현장에서는 깨나 알려진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의 이름은 ‘데모당’이다. 이 조직 역시 등록된 정당이 아님에도 조직명에 ‘당’을 사용한다. 정당법에 따르면 데모당에 대해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처분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대표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물론 사회변혁노동자당이나 데모당이 선거관리위원회가 뭐라고 한다 해서 “엇, 뜨거라!” 하면서 냉큼 ‘당’을 떼어버릴 리는 만무하다. 나름 한 성격 하는 조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사람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뭐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요건을 갖춰 정당을 만들든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앞서 헌법 제8조를 간략하게 들여다보면서 언급했지만(연재물 4편 참조), 현행 헌법은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법률로 정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헌법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정당법은 따라서 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정당법은 등록제를 채택하면서 정당을 국가관리체제 안에 묶어두려 한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결사인 ‘당’을 만들 때마다 국가에 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모순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당’을 등록함으로써 정부 차원의 수혜를 받을 수도 있다. 선출직 당선자를 배출하거나 일정한 지지율을 확보하면 국고지원을 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혜를 받지 않겠다는 정당도 있을 수 있다. 현행 정당법의 ‘등록제’는 실질적으로는 사전검열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검열에 버금가는 국가의 관리체제를 거부하겠다는 정치강령을 가진 정당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정당은 구태여 ‘등록’을 할 필요도 없다. 지역정당이 그러한 대표적 예이다.
지역정당의 경우는 매우 가벼운 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전국정당과 같은 규모의 당부(黨附)를 둘 필요도 없고 수천 명의 당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독일 등 여타 선진국에서처럼 선거참여 여부로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확인하는 정도면 족하지 당부의 숫자와 당원의 숫자까지 일괄적으로 맞출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지역정당 또한 자발적인 정치결사를 조직하여 정당으로 자임하면서 선거참여 등 정치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없었는가? 지역정당으로 전환되지는 못했으나 지역정당의 성격과 활동 양식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조직했던 ‘마포파티’가 그 예다. 마포파티는 주민단체는 물론 원내정당인 정의당의 현직 구의원까지 참여하여 조직되었다. 비록 ‘마포파티’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는 못한 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마포파티는 4명의 구의원 후보를 내며 선거에 참여했다. 기실 이 수준이라면 지역정당으로서 거의 완성체의 형태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지역정당으로 창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마포파티의 후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고 조직의 이름, 즉 ‘마포파티’라는 이름으로 선거에 나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등록정당이 아니므로 당연히 정당법 위반 및 선거법 위반이 되고 만다. 조직 이름에 ‘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파티’라고 해도 안 되는가? 당이고 파티고 간에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등록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법체계에서 지역정당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정당법에는 이 외에도 지역정당의 설립을 가로막는 여러 요소가 규정되어 있다. 현행법상 전국정당의 기초단위 당부로 당원협의회가 있는데, 이 당원협의회는 사무소도 둘 수 없고 유급 활동가도 채용할 수 없다. 정당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위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은 전국정당으로 따지면 당원협의회 정도의 위상이 될 터이다. 따라서 당원협의회가 자체적으로 사무실이나 재정조달 및 유급사무원을 둘 수 없도록 한 정당법의 기준은 지역정당에도 준용될 수 있다.
이중당적 금지규정도 문제다. 정당법 제42조 제2항은 “누구든지 2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의 정당에서만 당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소련연방에 속하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들, 여기에 이라크, 케냐, 캄보디아 같은 나라들의 정당법에서 이중당적 금지규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OECD 회원국 중 당적을 하나로만 갖도록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당적은 두 개가 될 수도 있고 세 개가 될 수도 있다. 선거에 출마할 때, 또는 이에 준하는 정치적 계기로 필요할 경우 하나의 당적을 선택하여 활동하면 그만이다. 특히 지역정당은 이중당적 금지와 같은 제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지역정당의 당원인 동시에 전국정당의 당원일 수도 있어야 한다. 지역적 차원에서는 지역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고 전국적 차원에서는 전국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당법만 보더라도 지역정당은 현재의 법체계상 등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역정당 건설은 어차피 안 될 일이 아닌가? 어떻게 지역정당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정당법만 바꾸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