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16.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은 '지금'뿐이다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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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16(film)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은 '지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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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룬 로맨스 영화라면 반드시 언급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사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를 만난다>가 가장 닮은 영화이기도 하다. *사진 : 다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스틸 컷


1. ‘지금’으로 수렴하기 - 시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


로맨스 영화의 단골 소재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과거의 인물이 현재에 등장해 영향을 미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꿈에서 본 흐름대로 사건이 벌어지는 <이프 온리>와 같은 영화도 모두 시간을 다루는 영화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다 해도, 과거 회상을 기반으로 한 <노트북> 같은 영화도 있다.

이처럼 시간이 로맨스 영화의 동력으로 애용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간은 가역성이 없으니까. 사랑하며 후회했던 기억이나 찬란했던 기억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의 과거를 쫓게 되고, 로맨스 영화도 이에 맞춰 늘 과거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런데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이하 ‘나는 내일’)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동시에 현재로 수렴한다. 주인공 타카토시(후쿠시 소타)와 에미(고마츠 나나)는 시간이 서로 반대로 흐르는 두 세계에 살고 있으며, 특수한 현상으로 5년에 30일 동안 같은 세계에 놓이게 된다.

이 같은 작품의 설정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현실 영역인 평행우주론과 다중우주론도 떠오르게 한다. 여러 개의 우주가 상존한다면, 모든 우주들의 ‘법칙’이 우리 우주와 동일하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우주는 중력이 정반대(우리 우주의 음의 값)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어떤 우주는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 반대로 향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고 이 작품을 본다고 해도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부분은 있지만, 이 영화가 과학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아니니 기초적인 ‘법칙’에 대한 이해를 짚은 것으로 만족하자. 그냥 ‘우리와는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세상에 사는 인간이 (실제로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말이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서로의 시간이 반대되기 때문에 각자는 서로의 어린 날을 향하게 된다. 타카토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에미의 어린 날과 만나게 되고, 에미는 타카토시의 어린 날을 만나게 된다. 타카토시의 25살은 에미의 15살이며, 에미의 25살은 타카토시의 15살인 세계.

이렇게 서로 반대로 향하다보면 언젠가 서로의 나이가 일치하는 때가 온다. 바로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스무 살의 서른 날이다. 나이가 같기 때문에 서로의 모습은 같은 이십대로 비슷하지만, 하루하루의 시간은 여전히 반대를 향하게 된다. 타카토시가 내일 만나는 에미는, 에미의 기준에선 어제가 된다. 에미와 만난지 30일째가 되는 날 타카토시가 만나는 에미는 처음 타카토시를 찾아온 것이지만, 타카토시가 처음 만난 에미는 이미 타카토시를 30일 동안 만나온 에미다.

그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에미의 관점, 타카토시의 관점으로 따로 나누어 보는 게 편하다. 어쨌든 그건 크게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이 30일은 ‘지금 현재’라는 점이다. 20살이 되어 타카토시를 처음 보는 에미도, 끝내 점점 시간이 밀려 고백하는 시점의 타카토시를 바라보는 에미도, 그 30일 동안 타카토시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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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토시는 이제 겨우 에미를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이 시점의 에미는 이미 타카토시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진 : 다음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를 만난다>(2017) 스틸 컷


타카토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갈수록 에미는 어제의 일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직 지금의 에미는 어제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제를 알지 못하는 에미든, 갈수록 타카토시를 ‘몰라가는’ 에미든 타카토시에게 에미는 사랑의 대상 그 자체다. 그러므로 미래니 과거니 하는 것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오직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현재 같이 있는지의 여부니까.

어차피 주어진 30일이 지나면 서로는 5년 뒤의 어려진 연인을 만나게 된다. 어느새 10살 차이가 나있는, 갈수록 벌어지는 이 차이 속에서 그들이 헌신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처음 에미에게 고백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 물어보는 수줍은 타카토시에게 에미가 늘 ‘지금’을 외치는 이유다. 지금이 아니면 어쩌면 영원히 사랑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지금’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시간이 엇나간 사람만이 ‘지금’이 소중한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는 우리도 ‘지금’을 놓쳐 사랑을 잃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내일>이 말하는 지금은 우리가 느끼는 ‘지금’의 속도를 두 배로 가속했을 뿐이다.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지금’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이 ‘지금’은 어떤 방법을 써도 되돌리지 못한다.

이것이 영화가 두 사람의 시간을 반대방향으로 밀어내며 ‘지금’을 압축하는 이유다. 사랑하려면 ‘지금’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을 변명들은 무수히 많지만, 시간은 그와는 상관없이 흐른다. 어쨌든 우리는 늙어갈 것이며, 젊음은 영원히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이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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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토시는 마침내 진실을 깨닫고 '예정된 비극'에 좌절한다. *사진 : 다음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를 만난다>(2017) 스틸 컷


2. 비극과 희망의 교묘한 공존


<나는 내일>의 시작은 희망으로 가득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로 치달을수록 모든 순간은 절망으로 치환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더 나를 모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에 맞춰서 연기해야하는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고백하는 순간이, 찬란한 사랑의 순간이 아니라 이제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아는 괴로움. 결국 무너질 예정임을 알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

이 영화의 잔혹성은 인물들이 절절한 사랑의 열기에 치달은 30일에 미치지 않는다. 그 인물들이 각자 앞으로 살아가게 될, 25살의, 심지어 40살의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 죽을 고비에 놓인 서로의 어린 날을 구출해야할 의무. 그리고 서로가 운명에 닿도록 어린 날의 서로를 찾아가 응원하는 일.

이는 결국 함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비극으로 끝나지만, 먼 훗날이 되어서도 약속을 잊지 않고 서로를 구해 자신의 존재 자체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역설적인 희망을 낳기도 한다.

타카토시가 이내 닥쳐올 비극을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슬픔을 억누르며 혼신의 연기를 해냈던 에미의 진정을 깨닫고 자신 또한 에미에게 헌신했듯이, 먼 훗날이 되어도 이들은 자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상대가 서로의 과거로 달려가 서로를 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함께하지는 않아도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서로는 각자의 시간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서로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 되고, 결국 이는 영원과도 같은 깊은 사랑의 증거가 된다.

이처럼 <나는 내일>은 비극적인 결론에 닿지만, 남은 여정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함께이지 못할 뿐, 끝끝내 서로에 대한 사랑은 계속 확인하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또한 그만큼의 그리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 그리움의 크기는 얼마나 큰가. 그러니 마침내 현재 ‘함께 할 수 없음’의 비극은 끝끝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그래서 먹먹하다. 아무리 좋게 희망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려 해도 결국 비극적이다.

그러니까 작품이 줄곧 얘기했던 것처럼 중요한 건 ‘지금’ 뿐이다. 시공간의 제약도 없음에도 지금을 살지 않는 사랑들, 우리들 모두. 지금이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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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years ago (edited)

영화를 보지 않고 리뷰를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의 창의적인 생각에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반대되는 시간을 교차하며 진행되는 사랑이야기라니 .... 꼭 봤으면 하는 영화이네요 영화소개 감사드립니다. ^^

주목받지 못한 상영작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로맨스 영화를 추천하라면 이 영화를 추천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이 영화 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흐억.

저도 영화관에서 방정맞게 혼자 펑펑 울었습니다 ㅠ

저도 작년에 이 영화보고 여기에 포스팅까지 했었는데 역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 비슷하네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제라피님 리뷰를 찾아봐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편의 영화

'지금'이 가장 중요한데, 전 그렇게 중요한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걸까요.... 영화 보고 왕창 눈물 콧물 한번 쏟아야겠어요 ㅎㅎ

영화를 보신다면 리뷰는 나중에 읽으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

가슴 먹먹한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
눈물 뒤에 남겨질 추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20대의 마지막에 봐서 그런지 지난 20대의 사랑들이 절로 떠오르더군요! '지금'을 놓쳐 아쉬워한 날들, 그리고 그때 나는 제대로 사랑했는지, 잘 보내왔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