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8일 바미얀 석불의 최후

in kr •  7 years ago 

2001년 3월 8일 바미얀 석불의 최후

“범연나국 왕성 동북의 산 귀퉁이에 높이 140~150척이나 되는 입불(立佛)의 석상이 있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며 보식(寶飾)이 빛나고 있다.” 서기 632년 불경을 찾아 구법 여행에 나선 현장 (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 중 한 구절이다. 그로부터 약 150년 뒤에는 까마득한 동쪽 나라에서 인도로 향하던 혜초도 이 불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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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얀.jpeg
바미얀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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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과 혜초로부터도 까마득한 옛날 그 땅은 쿠샨 왕조의 영역이었다. 쿠샨 왕조는 인도 북부로부터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박트리아 (알렉산더 대왕에게 쫓겨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피살당한 곳), 그리고 중국의 서북 변경까지 세력을 뻗쳤던 북인도의 대국이었다. 쿠샨 왕조는 그리스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불교를 번성시켰다. 대승불교는 이 시기에 비롯되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과 동북 아시아로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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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시간에 석굴암을 공부하면서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의 이름을 외운 기억이 있을 텐데, 간다라 양식은 이 지역에서 발전하여 이후 동방으로 전파된 것이다. 3-5세기에 바미얀 (범연나국) 지역에 조성된 대규모 불상들 역시 바로 간다라 양식에 따른 것이고, 그 불상들은 삼장법사와 혜초의 시대를 거쳐 1천 5백년의 세월을 넘어 21세기까지 건재했다. 석굴암 본존불의 큰형님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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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가 이뤄지면서 우상 숭배를 엄금하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많은 불상들이 약탈당하고, 옮길 수 없는 것들 역시 머리가 없어지거나 팔다리가 잘리는 수모를 겪었으며 칭기즈칸의 메뚜기 떼 같은 기병대가 범연나국(바미얀)의 이름을 영원히 사라지게 했지만 세계 최장신의 바미얀의 두 석불' , 동대불(東大佛, 38미터 )과 서대불(西大佛, 55미터)은 그 모든 것을 지켜 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석불들이 2001년 3월 8일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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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jpg

범인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라 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그들은 이미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기 전부터 아프간 각지에서 유물 유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상 숭배 금지"라는 쿠란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 1500년을 버텨온 인류의 보물도 그들 광신자의 눈에는 우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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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파괴령이 공표된 이후 전 세계가 이를 말리려 들었다. 서방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55개국 이슬람 협회의 대표단도 칸다하르로 와서 석불을 파괴하지 말 것을 간곡히 설득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슬람 최고위 성직자를 급파했다. 그러나 광신도들은 단호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 최고 지도자 우마르의 포고령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할 것이며, 아프간의 어떤 조각상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바미얀 파괴.jpg

그리고 그들은 잔인한 파괴를 실행에 옮겼다. 반(反) 탈레반 민병대로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바미얀 석불 파괴 작업에 동원되었던 미르자 후세인의 회고는 생생한 만큼 참혹하다. "탱크와 로켓포로 쏘아붙이다 실패한 그들은 폭탄을 불상의 발치에 쌓아두고 폭파시켰지만 불상은 다리만 훼손되었을 뿐 멀쩡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에서 온 기술자들이 먼저 동대불의 몸에 폭탄을 두르라고 했고 마침내 이 시도는 동대불을 무너뜨렸다."

동대불을 무너뜨린 탈레반들은 총을 쏘아대며 기뻐 날뛰었고 소 50마리를 잡아 제물로 삼은 뒤 큰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 북소리에 맞춰 전통 아탄 춤을 추며 즐겼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서대불을 폭파했고 1500년 나이의 두 불상은 돌무더기로 변해 버렸다. 종교의 광기가 부른 역사적인 비극이었다. 온 세계가 발을 굴렀고 탈레반을 비난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탈레반의 광기를 입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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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그 광기 앞에서 혀를 차며 경멸할 처지인지는 조금 고려의 여지가 있다. 바로 그 광신도의 땅에 '선교'를 간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슬람 모스크에 들어가서 찬송가를 부르는 종교적 모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아프간 인들의 인질이 된 다음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을 때, 목사라는 이는 그 죽음을 순교라 부르며 장차 아프간 선교의 '밀알'이 될 것이라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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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를 갔다는 대학생들은 아랍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 주며 한국어로 주기도문을 외우게 한 뒤 그것을 촬영하여 와서 은혜로운 광경이라고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녔다. 남의 사찰에 들어가 '땅 밟기'를 시도하며 그 절이 '무너져 내리기'를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과연 이들이 탈레반과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불신지옥 예수천국"의 구호는 "모든 조각상은 우상"이라던 탈레반의 광기와 과연 구별될 수 있을 성질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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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얀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03년 희망의 기적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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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창 아프가니스탄의 전란이 나라를 삼킬 무렵,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박물관의 유물 2만여 점이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사연은 마치 영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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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직원들이 그 급한 와중에 귀중한 문화재들을 평범한 용기에 담아 카불에 있는 여러 건물 천장에 숨겨 놓았다. 가장 중요한 유물은 카불 중앙 은행의 금고에 숨겨 놓았다. 이들은 각자 금고 열쇠를 갖고 헤어졌는데, 이 금고는 열쇠 7개를 모두 넣고 돌려야 열 수 있는 구조였다. 혹심한 내전과 외침의 소용돌이가 쓸고 지나간 20년 뒤 기적적으로 7개의 열쇠가 다시 모였고, 인류는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중앙 아시아의 보고와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유물을 지킨 그들 역시 무슬림이었다. 진흙탕 속에도 연꽃은 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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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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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라 금관과도 유사한 아프간의 금관. 이 역시 사라질 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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