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7일 피그만의 오류
미국에는 케네디 교라는 종교도 있다지. 케네디를 추모하다가 그만 선을 넘어 숭배와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승격시킨 모양이지. 그럴만큼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JFK는 여지껏 미국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 하지만 미국의 60년대를 열었던 이 패기넘치는 케네디 대통령에게도 흑역사는 많지. 그 주변에서 얼쩡거렸던 숱한 여인네들, 해피 버뜨 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 노래를 고혹적으로 부르던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그 수많은 여인들과의 스캔들은 듣다 보면 인상을 찌푸릴 정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흑역사는 바로 1961년 4월 17일의 피그만(灣) 침공이라고 봐.
털보 카스트로와 잘생긴 의사 게바라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 쿠바는 그야말로 미국 눈앞에 솟은 가시였어. 레이건 때 카리브해의 소국 그라나다가 좌경 색깔을 보이자 냉큼 해병대를 보내서는 평정을 한 데에서 보듯, 미국은 자기 앞마당에서 불그죽죽한 깃발이 서는 것을 용납할 의사가 없었거든, 붉은 쿠바는 사라져야 했어. 그런데 미국이 직접 때려눕히기에는 명분이 좀 약하단 말이지. 쿠바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선전할 상황도 아니고, 쿠바가 도발을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낸 꾀가 대거 미국에 망명해 있는 쿠바인들을 무장시켜 쿠바에 투입하는 것이었어. ‘쿠바인을 위한, 쿠바인에 의한, 쿠바인의’ 전쟁을 기획한 거지.
그 이전 CIA는 민족주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던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렸고 과테말라에서도 비슷한 짓을 했어, 바로 그 과테말라에서 쿠바 망명객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맹훈련을 받게 된다, 영화 <실미도>처럼 말이지., 무려 1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 자고 훈련하고 무기를 장만하고 등등은 모두 미국의 지갑에서 나왔지. 하지만 카스트로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어. 미국이 계속 집적대자 방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국내의 불만세력을 싹쓸이로 잡아다가 대중과 격리시켜 내부를 단속하지.
한겨레 자료사진
작전 계획은 케네디 이전부터 세워져 온 것이었지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케네디였어. 케네디는 전임자 아이젠하워도 결행하지 못한 이 계획에 미심쩍어했지. 하지만 CIA는 “가능합니다!”를 외치며 대통령을 설득했어. 더욱이 젊은 대통령으로서 카리스마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던 케네디는 CIA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지..
“됩니다 각하. 저희만 믿으세요” 하지만 케네디는 하나의 조건을 건다.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을 절대로 숨겨야 한다는 것이었지. 본격 침략 전에 쿠바 공군을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폭격이 실행되는데 이후 2차 3차 연속 폭격이 예정돼 있었지만 미국이 배후에 있음이 들통난다는 이유로 생략됐지. UN에 나가 있던 미국 대사가 난리를 쳤거든. “우리는 아니라고 우기는 중인데 또 폭격하면 대체 뭐라고 하란 말이오?”
그래서 쿠바는 앙상하긴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공군과 해군, 그리고 적개심에 불타는 육군과 민병대로 2506 여단으로 명명된 망명 쿠바인 부대의 상륙에 맞서게 되지. 수송선에 실려 상륙한 2506여단은 상륙지점부터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어. 원래 계획은 지역민들 사이에 반카스트로 정서가 팽배하고 배후에 게릴라전을 펼칠 산지도 있는 트리니다드라는 곳이었는데 미국의 개입을 숨기려는 의도로 변경됐거든. 그래서 선택된 게 피그만인데 그 주변은 광활한 늪지대였어. 그리고 쿠바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키러 온 2506 여단을 환영하기는커녕, 목숨을 건 항전으로 2506 여단을 궁지로 몰아넣지. 실미도 부대같은 특수부대였던지라 전투력은 여단 쪽이 나았겠지만 쿠바 민병대와 정규군은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입으면서도 동포 침략자에 저항했고 결국 2506 여단은 두 손을 들고 말아.
상륙지부터 이상하고 기초 계획은 틀어지고 쿠바인들이 환영할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으로 판명나고 외국에 캠프까지 차려놓고 훈련시킨 특수부대는 민병대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하다못해 도망갈 산자락 하나 없는 광활한 늪지대에서 2506 여단의 피그만 침공은 그렇게 실패로 끝난다. 케네디는 불같이 화를 냈지. “CIA 내 이놈들을 부숴 버리겠어!” 실제로 그는 CIA를 해체할 마음까지도 있었다고 하고, 그래서 그의 암살에 CIA가 연루됐다는 설이 끊이지 않지.
CIA가 패배를 뻔히 예상하면서도 젊은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 패배에 열받아 쿠바를 본격적으로 두들기게 하도록 연출한 거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이 계획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은 실수와 착오의 연속이었어.
집단사고란 "응집력이 높은 집단의 사람들이 만장일치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몇 명의 말빨 좋거나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쑥덕쑥덕해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옳다고 믿어버리는 거지. 피그만 때 그랬던 거야. 그때 참석자들은 우리나라 38선을 그었던 딘 러스크, 하버드 대학 교수 출신 맥나마라, 자그마치 역사학자 슐레진저 등 쟁쟁한 인물들이었고 케네디 역시 머리 좋기로는 누구한테 뒤질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데 이 사람들이 둘러앉아서는 이 작전의 긍정성과 부정성, 성과와 한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아니라 “쿠바를 공산화하게 놔 둘 거냐 훈련시킨 2506여단을 피그만에 상륙시킬 거냐”의 양자택일만 주구리장창 하고 있었다는 거지. 그보다 훨씬 지능도 떨어지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옆에서 보면 “도대체 뭘 하는 거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만큼 멍청한 짓을 아무 거리낌 없이, 심지어 도덕적 우월감과 거기에 반하는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저지르고 있었던 거야.
이런 ‘집단사고’의 예는 비단 피그만에 그치지는 않아. 오히려 지천으로 널려 있을만큼 많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때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 택한 게 바로 이 집단사고였고 한국전쟁 때 한국군 수뇌부도 그랬지. 또 한국 사람들은 특정한 사건의 찬반을 두고 이 ‘집단사고’를 형성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떤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을 논리로 격파하고 그 한계를 폭로하는 게 아니라 그 주장에 도덕적 먹칠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이 흔하니까. 무슨 말을 하면 “네 주장이 이렇게 틀렸어”가 아니라 “너는 누구 편이냐?”가 튀어나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고 하면 “너는 누구 앞잡이다.”가 칼을 번득이는 일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겠니.
이런 아우성들은 날이 갈수록 살기를 띠고 독기를 품는다. 그렇게 됐을 때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사람들이 말을 하기 무서워하게 된다는 거야.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가 돌아올 파장과 몰매를 생각하게 된다는 거지. 오늘 페친이자 방송 선배의 포스팅에 가슴이 아팠던 이유이기도 해. “중요한 건 전문가가 비판이나 비난을 무릅쓰고 솔직하게 진실을 얘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저 또한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고민하는 문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던 건 아닌 지 잠시 돌아볼 수 있었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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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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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잘 모르던 사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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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국의 대외 개입 역사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입니다. 너무 처절하게 실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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