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는 스물셋에 통신사로 일하면서 처음 쓴 소설로 일본 문단 최고로 꼽히는 아쿠타카와상을 받았다. 그는 그때까지 영화는 많이 봤지만 책은(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마도 통신사 특유의 ‘기계적’인 문장과 ‘영화적’인 묘사의 조합이 개성 있고 신선한 소설로 탄생한 것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는 영화를 뛰어넘는 영화적인 소설을 탐구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소설 ‘달에 울다’의 영상미는 엄청나다.
그가 ‘소설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기 전,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읽었던 소설이 하나 있다. 80이 된 지금도 그는 그 소설을 단연 최고로, 단 하나의 위대한 소설로 꼽는다. <모비딕>이다. 그는 이 소설 때문에 바다에 나가는 것을 꿈꿨고 20대에 통신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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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에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특권’이 되었다. 책을 살 수 있는 돈,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신만의 방, 책을 둘 수 있는 공간, 그런 돈과 공간이 없다면 공립도서관에라도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시간을 생존을 위해 써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으려면 그만큼의 ‘노동’이 필요하다. 돈이 안 되는 노동. 그런 이들에게 독서는 사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가질 수 있는 ‘권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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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역시 책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나은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참 다행스럽다. 책을 많이 읽는데도 못된 인간을 만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난다. (물론 책과 상관없이 원래 인격이 그랬겠지만)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훌륭한 인품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도한다.
사람들은 같은 책을 읽어도 관심을 갖는 부분이 다르다. <모비딕>에서 백인인 이스마엘이 ‘야만’스러운 원주민 퀴퀘크와 친구가 되는 부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