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남을 욕하다가 그 욕이 고스란히 내게 되돌아오는 꿈을 꿨다. 정당한 비판이 아니었다. 나의 실수를 감추고 상대방의 실수를 과장했다. 결국 그런 찌질한 잔꾀를 들키자 나는 변명을 시작했다. 변명에 변명을 덮다 보니 점점 말이 되지 않았고 우기기에 급급했다.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욕을 먹어 더욱 쓰디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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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대체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자기 직전 최은영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일 년>이라는 단편을 몰입해서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뒤에서 했던 작은 말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 전개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내용을 묘사하는 문장 자체에 푹 빠져들었다.
문장은 기본적으로 담백하고 건조했다. 자질구레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클레어 키건이 한국말로 썼을 것 같은 느낌이다. 최은영도 클레어 키건처럼 소설 속에 이 사회에 관한 비판적 발언을 적지 않게 담는 것 같다. 차별, 계급, 노동 인권 등. 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박완서가 소설 속에 사회적 문제(특히 여성차별)를 다룰 때 ‘체념’의 비중이 약간 더 높은 인상이라면 (시대가 옛날이라 어쩔 수 없었을 듯) 최은영은 ‘체념’보다는 ‘의지’(바꿀 수 있다는)의 비중이 더 높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대의 사회 문제를 똑바로 다루면서도 문학적(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가. 최은영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