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곱단이가 한참 뒤져서 걷고 만득이는 휘적휘적 앞서 가다가 기다려주곤 했다. 부부가 같이 외출을 해도 나란히 걷지를 못하고 아내가 한참 뒤에서 걷는 걸 예절처럼 알던 시대였다.”
<그 여자네 집>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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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다가 중학교 때 생각이 났다.
어느 날 ‘국민’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국민학교 졸업 후 남자아이는 남녀공학, 여자아이는 여자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나는 남자 중학교에 갔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셋이 만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같은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만났을 것이다. 그날은 일요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은 거의 1m 정도 떨어져 걸었다. 남자아이가 약간 앞서 걸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내가 그 남자아이였다면 여자아이의 걸음걸이가 너무 갑갑했을 것 같다.
나는 그때 나이만 중학생이었지 성장이 느려 몸도 마음도 아직 국민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남자아이는 벌써 키가 훌쩍 컸고 얼굴 표정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여자아이 역시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달라졌다. 국민학교 때의 뾰족한 몸매가 아니었다. 그 둘이 조심스럽게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묘했다. 이미 둘은 나와 다른 세상을 나보다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그 둘 사이의 1m 간격은 팔짱을 끼고 꼭 붙어 걷는 어른 남녀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문득 나도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느꼈다. 예전 같으면 ‘얼레리 꼴레리’하며 그 1m 사이를 지나치며 장난을 걸었을 텐데, 지금은(그때는) 나도 발걸음을 늦추고 뒤에서 그 둘의 풋풋한 모습을 부럽게 지켜보며 따라 걷고 있었다.